제주가 좋아서, 이곳에 정착한 이주민인 나는, 유독 제주의 풍경이 변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자연뿐만 아니라 내가 매일 걷고, 머물고,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자주 살펴본다. 한 번 밀린 나무들은 다시 회복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 번 개발하기로 한 공간은 개발 전 공간으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도시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있는 큰 변화가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2025년 6월 27일, 제주 도심에 25층 건물의 건축이 가능해지는 도시계획일부개정조례안이 도의회를 통과됐다. 현재 제2종 일반주거지역의 층수 제한은 15층이었지만, 이번 조례안 통과로 그 상한선이 25층으로 상향됐다. 이는 오영훈 도정의 '제주형 압축 도시' 정책의 일환이다. 도정은 더 이상 옆으로 확장할 수 없는 도시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며, 고도 제한 완화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례안 통과는 시작일 뿐이다. 언론에서는 이미 30년간 유지되어 온 제주 고도지구 역시 완화가 예정되어 있으며, 상업지역의 경우, 최대 160m까지 허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금 제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노형동에 있는 드림타워로 169m에 달한다.
도는 이번 결정으로 제주도의 경제 활성화를 기대한다고 했다. 경제 활성화는 중요한 과제이지만, 개발과 경기 부양 중심만으로 도시를 해석하는 건 도시를 구성하는 수많은 층위를 놓친 채, 모든 것을 '자본'이라는 단어 하나로 압축해 버리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은 도시가 품고 있던 복잡하고 섬세한 감각들을 지워버리고, 도시를 오직 '효율성'으로만 보게 만든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본질을 흐리며, 도시를 납작하게 만들 뿐이다. 그런 도시에서 도민들의 삶 또한 효율성만 쫓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조례 통과 이후 가장 크게 제기된 우려는 제주의 스카이라인이 무너지고, 한라산 조망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제주는 어디서든 한라산을 볼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경관을 간직한 곳이다. 이 풍경은 일부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공재이기도 했다. 고도 제한이 완화되면, '모두의 한라산'은 특정 고층 아파트에서만 누릴 수 있는 뷰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경관이 무너지는 문제를 넘어, 모두가 누리던 공공재가 자본에 의해 독점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이 문제는 공공재로 모두에게 공유된 것을 자본에 의해 누가 독점하고 그 사이에서 누가 배제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낸다. 한라산을 보며 출근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도민의 일상이, 이제는 특정 평형대, 특정 동, 특정 높이에 배정된 이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된다면, 불균형한 풍경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도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이제 되물어야 할 때이다.
몇 해 전, 프로그램 진행 차 춘천에서 시민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도시와 정원,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한 시민이 춘천에 들어서는 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헤치는 점에 대한 부분을 꽤나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결국 춘천도 고도 완화 이후 경관 훼손과 시민 반발이라는 부작용을 겪었고, 결국 고층 건물의 난립을 우려하며, 봉의산 주변의 조망권을 지키기 위한 규제를 다시 마련하게 되었다. 제주가 지금 선택하려고 하는 길은, 춘천이 실패한 사례이기도 하다. 춘천의 사례를 토대로 제주도정 역시 압축 도시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이번 결정으로 사라지게 될 제주의 풍경은 무엇이 될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이번 조치가 도민 다수에게 실질적 혜택을 줄지도 의문이다. 개발의 논리 뒷편에는 언제나 이익이라는 실체가 있다. 그 이익은 대부분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자본의 몫이 된다. 도정에서는 외연 확장을 방지하고 자연 환경을 보전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이번 결정이 개발 사업의 도구 정도로만 보인다. 재개발 시행사 등이 가져가는 이익만 커지고, 일조권 침해, 경관 훼손, 교통 혼잡, 소음, 인프라 부족 등의 부작용은 오로지 평범한 일상을 사는 도민들의 몫이 된다.
제주의 현실은 더욱 냉정하다. 제주도를 떠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공실률은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층 건물을 짓는 건 수요 없는 공급일뿐이다.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한 고도 완화는 실질적인 도시 문제를 외면한 처방일 뿐이다. 도는 도민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목소리가 반영되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공청회 이전, 의견 접수 기간은 연장되었지만 홍보는 거의 없었고, 실제 접수 건수는 고작 6건뿐이었다. 이처럼 절차적 정당성이 미비한 상황에서 이 결정이 ‘도민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주의 경관은 모두의 것이다. 결코 사유화될 수 없다.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고도 제한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정책을 뒤집고 이 조례안이 통과된 데는 시민들의 의견을 대신 받아든 도의원들이 찬성한 것도 한몫했다. 재석 의원 40명 중 33인의 도의원이 찬성 표를 던졌다. 반대 표를 던진 도의원은 고작 5명에 불과했다. 나는 과연 누가 어떤 이유로 이를 찬성했는지가 궁금했다. 아무리 기사를 찾아보아도 투표 결과만 나올 뿐 해당 조례안 통과를 시킨 도의원의 명단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주변 도움을 받아 당시 진행한 회의 영상을 보았고 제주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여당과 2번째로 의석을 지닌 야당 모두 제주의 '난개발' 이슈에서는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개발, 즉 '난개발'은 지속적으로 개발의 논리를 내세우며 제주 곳곳에 자리를 잡아왔다. 제주의 경관은 도시냐 자연이냐를 떠나, 모두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파헤쳐지고 있다. 비자림로, 제2공항, 숱한 관광단지, 그리고 압축 도시의 고도 제한 완화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더 높게 세워야, 더 많이 세운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민의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해 왔다. 사유화된 경관, 밀려나는 일상, 납작해지는 삶을 부추기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제라도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움직이기로 했다. 도시와 난개발에 문제의식이 있는 지인들과 함께 '제주 난개발 악당 퇴치단'이라는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제주의 난개발 사례들을 살펴보고, 그 결정에 찬성한 도의원들이 누구인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기록하고 되묻는 작업을 해 보기로 했다. 우리의 도시이지만, 정작 중요한 결정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누가 찬성했고, 누가 침묵했고, 누가 반대했는지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틈을 밝혀 보기로 했다. 이제, 그 희미했던 민낯을 확인하러 간다.
본 글은 제주녹색당에서 2025년 6월 30일에 쓴 논평 <한라산 조망권은 사유화될 수 없다!>에 기초하여 쓴 글입니다.필자
이 글은 생태적지혜연구소와 <제주투데이>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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