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 선수들이 이강인 출전 제외 요청한 '진짜' 이유는?

[정희준의 어퍼컷] 축구협회, 선수들에게 책임 떠넘기기 하나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고 이강인은 손흥민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신체적 충돌 끝에 주장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 그는 부상 상태에서 아시안컵 준결승에 출전해야 했다. 피파랭킹 23위 한국이 87위 요르단에 '유효슈팅 제로'를 기록하며 2대0으로 참패했다. 예선 무승부에 이은 충격패였다. 논란이 여럿이다. 우선 사건의 발단인 탁구 문제.

탁구 친 게 뭐가 문제?

운동선수가 휴식시간에 당연히 탁구 칠 수 있다. 그러나 대회 기간 중에, 그것도 준결승 전날 저녁 식사시간에, 그리고 식사 직후 팀미팅이 예정된 상황에서, 친한 선수들 몇몇이 자기들끼리 이탈해 탁구를 쳤다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게다가 상대팀이 누구인가. 예선전에서 졸전 끝에 무승부를 기록한 요르단 아닌가.

"손흥민의 꼰대질"이라는 이도 있고 "술 마시러 가는 것도 아니고 탁구 치러 간다는데 시비"냐는 사람도 있다. '프로선수'라면 알아서 하는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다. 프로선수는 대회 기간 경기장과 숙소에서 훈련시간 뿐 아니라 쉬는 시간, 자는 시간, 식사 시간 모두 관리 하에 있다. 국가대표 선수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과거 롯데 자이언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전지훈련을 가면 선수들이 밤에 개인훈련하는 것을 금지했다. 휴식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몰래 배트를 들고 주차장 가로등 밑을 찾아 스윙을 하는 선수들이 생기자 코치와 직원들로 하여금 호텔 로비와 엘리베이터를 지키게 했다. 그의 지론이다. "그렇게 쓸 에너지가 있으면 훈련 때 쏟아부어라."

젊은 선수들 관리는 언제나 힘들다. 선수들끼리 다투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들끼리 장난치고 까불다 다치는 경우도 꽤 많다. 탁구란 운동은 축구와 쓰는 근육도 다르다. 예선전에서 이기지 못한 팀과의 준결승 바로 전날 밤이다. 책임 있는 국가대표라면 어떻게 처신해야 했을까.

고참 선수들은 패배를 직감했다

손흥민과 이강인과의 물리적 충돌이 있을 당시 클린스만 감독은 이를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이후 고참 선수들이 클린스만에게 이강인의 출전 제외를 요청했다. 클린스만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유효슈팅 제로'의 무기력한 졸전 끝에 2대0으로 참패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클린스만에게 준결승 선수명단에서 이강인을 빼달라고 했을까. 인간 관계 파탄 날 각오까지 하고서 말이다. 패배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길 자신이 있었다면 감독이 아끼는 선수를 빼달라는, 서로에게 난감하고도 위험천만한 요청은 할 이유가 없다. 이들 머릿속에 요르단전 패배가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에 나선 것이다.

단체경기에서 팀워크는 중요하다. 그런데 야구 같은 종목과는 달리 축구는 팀워크가 너무나 중요한 종목이다. 사이 안 좋으면 패스 안 한다. 패스만 봐도 선수들 간 사이가 어떤지 알 수 있다. 감독이 뭐라 해도 신경 안 쓴다. 농구는 나 빼고 네 명뿐이지만 축구는 드넓은 그라운드에 열 명이나 있다. 스루패스 한 번에 골키퍼와의 1대1 대결이 가능한 순간에도 못 본 척 공 돌린다. 지면 졌지 패스 안 한다.

고참 선수들은 주장 손흥민에 욕설과 주먹질을 한 이강인이 선발 출전하면 팀의 근간이 흔들리고 패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이강인의 포지션이 볼 배급하는 위치이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이들의 위기감은 경고 누적으로 출전 불가능했던 수비수 김민재까지 여기에 동참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단순히 "쟤가 나한테 패스 안 할 거 같아요" 수준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클린스만은 이 요청을 무시하고 이강인 선발출전을 강행했다. 결과는? 선수들이 맞았다. '유효슈팅 제로'에 빛나는 2대0 참패.

무능한 감독 임명, 누구의 책임인가

과거 히딩크는 팀워크 강화를 위해 그라운드에서 존댓말 금지, 식당에서 선후배 없이 섞어 앉기, 숙소 재배정 등 일상에서부터 선수들간 단합과 소통을 위한 지침을 마련했고 선수들은 뭉쳤다. 이번에 클린스만은 손흥민-이강인의 충돌을 보고 보고도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고참 선수들의 이강인 출전 제외 요청은 무시했고.

아시안컵 준결승전 요르단과의 경기 참패는 선수관리에도 실패하고, 전술 변화에 무지한 클린스만의 책임이다. 선수들도 예감한 패배를 감독이 몰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대한축구협회는 선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유명 선수들 간 충돌을 열심히 언론에 알리고 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클린스만 감독, 그리고 그를 감독에 임명한 정몽규 회장에 있다. 이번 파문의 총책임자는 정 회장이다.

▲영국 대중지 더선이 14일(한국시간) 손흥민이 아시안컵 준결승 전날 저녁 후배들과 언쟁 과정에서 손가락이 탈구됐다고 보도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회 기간에 선수들이 다툼을 벌였다는 보고를 받았다"라며 "일부 어린 선수들이 탁구를 치러 가려는 과정에서 손흥민과 마찰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손가락을 다쳤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지난 7일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요르단과의 준결승전 당시 손흥민과 이강인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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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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