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이 한국 축구 망친다고? 그를 임명한 건 정몽규다

[정희준의 어퍼컷] 축구협회가 외국인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대한축구협회가 아수라장이다. 클린스만 국가대표팀 감독의 경질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정작 당사자는 아시안컵 참패의 평가도 외면하고 입국 이틀만에 거주지 미국으로 가버렸다. 축구팬들은 협회 앞에서 시위하고, 한 시민단체는 정몽규 회장을 강요, 업무방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감독 경질을 놓고 벌이던 논쟁이 14일부터는 선수들 간 물리적 충돌 문제로 전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아수라장의 핵심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모든 문제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한 사람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선수들 간 불화와 충돌 역시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감독은 선수 한 명 한 명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팀으로서의 선수단 전체를 다뤄야 한다.

그런데 그 감독도 결국 피고용인이다. 그 감독은 누가 임명했나? 축구협회장이다. 클린스만 선임 당시 전력강화위원회는 다양한 인물을 놓고 고민했으나 결국 개인적 친분이 있는 클린스만을 "회장이 꽂았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고로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야 할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정몽규 회장이다.

그는 작년 3월 '프로축구 승부조작 선수들 포함 축구인 100인 사면'을 밀어붙이려다 여론과 정치권의 역풍을 받자 스스로 결정을 뒤집은 장본인이다. 사실 젊은 승부조작 축구인들 사면은 대외적 명분일 뿐 12년째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그가 내년 협회장 4선을 염두에 두고 비리 축구인들을 포섭하기 위해 기습작전하듯 몰래 사면을 강행하려다 사달이 난 것이다. 한국 축구를 망치는 인물은 그래서 클린스만이 아니라 클린스만을 임명한 정몽규인 것이다.

클린스만에게 배울 게 있나?

2001년 1월 거스 히딩크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올 때의 반응은 한마디로 "레알?"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등 유럽의 명문구단 감독을 지냈고 특히 1998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을 무참하게 짓밟으며 5대0 승리를 거둔 바로 그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서로 대표팀 코치로 들어가려 한 것이다. 당시 부산 아이콘스의 김호곤 감독은 "빽을 써서라도 코치로 가려고 했다. 배울 게 많으니까"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런데 협회가 "왜 이러십니까. 감독을 하셔야 할 분이"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결국 후배 박항서 등이 코치로 가게 됐고 당시 훈련방식과 전술을 기록한 노트들은 이후 한국축구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클린스만은 선임 당시부터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자질 논란이 심했다. 국제무대에서 이미 평가가 끝난 인물이라는 평이었다. 그에 대한 호불호가 극에서 극으로 갈리는데 특히 감독 경력 후반부는 불성실한 근무태도가 문제가 되기 일쑤였고 자신의 사퇴를 팀과의 논의도 없이 SNS에 일방적으로 올리는 기행을 보이기까지 했다. 독일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2014월드컵 우승 주역인 필립 람은 자서전을 통해 '바이에른 뮌헨 시절 클린스만 밑에서 체력 훈련만 했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실제 그는 한국 대표팀 감독 취임 후 아시안컵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전술, 전략, 작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선수 기용도 언제나 예상 가능한 수준이었다. 손흥민 등 해외파 선수들에게 의존한다는 혹평은 오래됐다. 1980년대 최순호, 허정무, 박창선 등이 뛰던 축구가 훨씬 조직력과 전술이 있어 보였다.

재택근무 국가대표팀 감독? 한국 국가대표 감독은 '꿀알바'인가?

연장전과 승부차기 끝 무승부와 역전승 때문에 국민이 열광을 한 것이지 사실 쉽게 이겼어야 할 경기들이었다. 한국의 피파랭킹이 23위다. 그런데 130위 말레이시아에 3대3 무승부, 87위 요르단에 예선 무승부에 이은 준결승 2대0 완패, 역대 아시안컵 조별리그 최다 실점, 준결승전 유효슈팅 0은 한국축구가 클린스만 밑에서 퇴보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특히 그는 이전에도 잦은 외유와 소속팀보다는 거주지 미국에 머무르는 기간이 많아 문제가 됐었는데 이는 한국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전임 벤투 감독만 해도 훈련장인 파주NFC에서 가까운 일산에 숙소를 두고 선수들을 훈련시켰다. 클린스만은 국가대표팀을 원격 화상회의로 지휘하는 초유의 '재택근무 감독'이다. 미국에서 ESPN 등과의 계약도 병행 수행하고 있는 그에게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은 그야말로 '꿀알바'다.

'매우 불성실한 지도자' 클린스만과 히딩크가 다른 점

과거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 하나 하나의 성격과 심리를 파악해 팀전술을 운영했다. 우선 콧대가 하늘을 찌르던 대표팀 선수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네덜란드의 '토털사커'에 어울리지 않는 이동국을 탈락시켰다. 당시 대표팀 선발은 이동국 먼저 뽑아놓고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테리우스' 안정환은 그 긴 머리를 잘라 볶아 올리고 나타났다.

수직적 위계질서가 팀워크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 아래 그라운드에서 존댓말을 못 쓰게 했다. 그래서 이천수는 "명보, 명보"를 신나게 외쳤다. 식당에서도 나이 순서 없이 섞어 앉게 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앞두고 히딩크는 수비수들에게 다혈질로 유명한 토티를 계속 건드리라고 지시해 결국 퇴장시켰다. 김태영이 비에리의 팔꿈치에 코를 심하게 맞아 휴식시간 엑스레이 촬영 결과 코뼈가 내려앉았다. 히딩크는 이를 보고하는 팀닥터에게 김태영에게 알리지 말 것을 지시했다. 김태영의 성격상 후반에 보복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연장전 끝 역전승했고 김태영은 경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경기 초반 주심이 한국 선수에게 휘슬을 불면 야유를 세게 해달라고 협회를 통해 붉은악마에게 요청했다. 심판도 사람이다. 영향 받는다.

이렇듯 히딩크는 심리전의 달인이다. 우리 선수뿐 아니라 상대 선수는 물론 심판에 대한 성격과 심리상태까지 분석하고 활용한다. 좋은 감독은 그래서 심리학과 카운슬링에 대한 식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심리나 성격 파악은 재택근무나 원격회의로 가능하지 않다.

이번에 준결승전 직전 저녁에 선수들 간 물리적 충돌이 있었고 그 결과 손흥민이 손가락이 탈구된 채 경기에 출전해야 했음이 드러났다. 후배 선수들의 하극상 파문이다. 이것 역시 감독의 관리 책임이다. 감독은 선수들의 훈련시간 뿐 아니라 쉬는 시간, 잠자는 시간, 식사 시간도 관리해야 한다. 결국 문제가 발생했고 결과는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목표 달성 실패다. 클린스만은 한마디로 '매우 불성실한 지도자'라 해야 할 것이다.

축구협회가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는 또다른 이유

우리나라 프로구단이나 주요 종목 협회가 유명 감독,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 어쩌면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책임 떠넘기기에 좋기 때문이다. 만약 실력이 있는 감독이긴 한데 유명하지 않거나 신인 감독을 임명하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협회가 그 책임을 모두 떠안게 된다. 그러니까 협회가 유명,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책임 떠넘기기용의, 꽤나 비겁한 결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참 공교롭다. 이번 클린스만 경질 논란과 선수들의 물리적 충돌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뒤에 숨어있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대한축구협회, 그리고 그 수장인 정몽규 회장이다. 오래 전부터 자질 논란이 있었고 한국보다는 미국 등 외국에 주로 체류하며 무성의로 일관하는 자를, 벤투 감독 보다도 11억 원이나 더 많은 29억 원(추정)에 영입하기로 결정한 이가 바로 정 회장이다.

언론에서는 마치 정 회장에게 클린스만 감독 경질 관련 '결단의 순간'이 다가온 듯 말한다. 아니다. 클린스만 감독이 아닌 본인이 '책임져야 할 순간'이다. 과연 정 회장 12년 동안 한국축구는 발전했나? HDC 회장인 그가 가는 곳은 모두 허물어지는 것인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마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인터뷰를 하고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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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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