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이 그려진 다음 세기에, 과학자들은 잠복성 간질 발작이 뇌 속 전기적 자극의 불꽃놀이와 유사함을 발견할 것이다. 이를 윌리엄 제임스는 '신경 폭풍'이라고 일컬었다. 수백 억 신경 세포로 이루어진 뇌 속에서 소수의 간질 신경 세포가 촉발하는 신경 방전의 비정상적 폭발이라는 것이다."
스티븐 네이페 ·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공동으로 저술한 (2016년 최준영 번역 출간) 문제적 평전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는 그림 속에서 정신과적 징후를 발견해낸다. (참고로 판 호흐는 네덜란드어 발음이다.)
책의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신화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자주 인용하곤 했다. 왜냐하면 고흐란 인간은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리는 것을 느끼고 싶다"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받아들이며 나만의 '고흐 예술관'을 구축하고 살았다.
최근 스스로 벽을 허물어야만 하는 책이 출간됐다. <코스미그래픽_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마이클 벤슨 저, 지웅배 역)다. 억지로 설명하기보다 때론 빌려오는 게 편하다. 오언 깅거리치 하버드 천체물리학센터 교수의 규정이다.
"하늘의 아름다움과 신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특별한 모음집!"
우주에 대한 그림, 별에 대한 그림이나 사진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굳이 창조론이나 진화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인류의 탄생 이래 궁극적 호기심이었을 테니까.
1845년 영국 과학진흥회는 로즈 백작이 관측하고 그림으로 남겼던 나선은하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미지는 얼마 뒤, 프랑스 책에도 실리게 됐고 1889년 반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천문학자들은 이 작품을 '소용돌이 성운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 당시 이미지를 접했고 이것이 작품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모르겠다. 무언가 상실한 느낌이지만 고흐에 대한 또다른 해석을 만난다는 건 이 또한 고마운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무것도 그것을 거스르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수많은 다른 행성과 별들에도 선과 형태, 그리고 색깔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우월하고 변화한 조건들의 존재 아래에서도 그림을 그려나가는 가능성들에 대해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칭찬할만한 일로 남아있을 것이다."(Emile Bernard에게 보낸 편지, 최서연 번역)
그렇다. 평온함이다. 가능한 한 해석들에 대해서도 평온함을 유지해야한다. 그럼에도 고흐는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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