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에 빠진 3천 명, 지난 4년 동안 도대체 뭘 했나

[정희준의 어퍼컷] 한국 정치 다시 보기 (5)

국회의원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복무한다면 '제때 결정'해야 한다. 때맞춰, 적시에 결정하지 않는 정치가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서 지난 칼럼(이준석 신당, '쟤가 더 나빠요 정치' 끝낼 수 있을까?)에서 '틀린 의사 결정'이 '지연된 의사 결정'보다 낫다고 한 것이다.

지금 기득권 양대 정당은 서로를 비난하기에 바쁠 뿐 국민의 고된 처지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지난 4년 동안 도대체 뭘 했지? 싸운 거 외엔 기억에 없다. 국회의원 숫자만 300명이다. 그들이 거느린 보좌진 숫자는 무려 2700명이다. 3000명이 지난 4년간 뭘 한 건가.

결정장애에 빠진 국회

국회의원은 선출된 공직자고 국가를 대표한다. 리더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결정하는 것이다. 직원들은 부서장에게 판단해달라고 하고 부서장은 사장에게 결정해달라고 한다. 그 결정을 미루고 외면하면 그때는 무능이다. 결정을 외면하는 정치인은 자격이 없는 것이다.

21대 국회가 남긴 성과는 기억에 없고 정치를 싸움판, 투전판, 혐오의 전당으로 만들었다. 개혁은 찾아볼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개혁하겠다던 연금·노동·교육 뿐 아니라 양극화, 기후변화 대응, 플랫폼기업 등장으로 인한 여러 문제들처럼 이미 오래된 주제들도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고민해야 함에도 당의 정책과 지역 여론이 맞서게 되면 지역을 선택한다.

타다금지법 입법 사례에서 보듯 수구적이고 비겁한 결정을 하기도 했고 로톡에서 보듯 중재를 외면해 10년 가까이 법적 공방만 벌이게 했다. 국민연금, 재정준칙 등 이미 오래전 국가적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들에 대해서도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반대 여론과 집단 민원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그냥 귀찮아서인지 계속해서 다음 국회, 다음 정부로 떠넘기기 중이다. 한마디로 결정장애에 걸린 국회다.

에스토니아는 이미 완벽한 전자정부

이렇듯 국회의 느린 의사결정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바로 전자투표다. 쟁점 법안, 갈등 사안, 국정과 지역이 충돌하는 정책, 정당 간 의견이 대립하는 법안 등을 전자 국민투표에 붙이는 것이다. 외국 사례도 이미 충분히 많고 용도도 다양하다. 사실 IT강국이라는 한국이 왜 이걸 아직까지도 도입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혹시 이걸 도입하면 일을 해야 하니까? 아니길 빈다.

완벽한 전자정부를 구현한 것으로 알려진 나라가 에스토니아다. 1991년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했지만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국토면적은 대한민국의 5분의1인데 인구는 고작 130만으로 인구밀도가 낮다. 관공서를 지을 예산도 부족해 선택한 것이 바로 디지털 정부. 1997년 모든 것이 원격으로 처리 가능한 전자정부를 추진하기 시작했고 의회, 법원, 경찰, 의료를 온라인화했다. 법인 등기 완료까지 최단 시간이 18분. 경제성, 효율성, 투명성까지 잡았다.

정치도 마찬가지. 2005년 지방선거, 2007년 총선거를 시작으로 성공적인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를 구현했다. 오프라인 투표도 가능하고 자신의 선택을 번복할 수도 있다. 이제 47%가 온라인으로 투표한다.

이 좋은 걸 왜 안 할까?

그런데 전자투표의 또 다른 미덕은 용도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스페인은 당내 의사 결정, 호주는 정책 이슈에 대한 판단, 러시아는 당내 결정 및 주민투표, 덴마크는 당내 투표, 미국은 부재자투표와 당내 대선 후보 및 선거인단 선정, 우크라이나는 청원 및 자문 투표, 인도는 총선, 스위스는 국민투표 및 주민투표.

물론 찬성이나 반대 어느 한쪽이 높게 나왔다고 해서 바로 결정하기보다는 이를 참고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여론정치만큼 위험한 게 없다. 그러나 이렇듯 전자투표는 정책결정의 근거가 되고 소모적 정쟁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국정의 순발력이 높아진다. 선별적이어야 하겠으나 전자 국민투표는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가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의 새로운 정치를 가능케 할 것이다.

정치가 빠른 결정을 해주면 국민이 편안해진다. 경제도 잘 돌아가고 당연히 민생도 나아질 것이다. 정치인은 칭찬받을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남들 다 하는 이 좋은 걸, 도대체 왜 안 하고 있는 걸까요? 정말 일해야 될까봐 그런 걸까요? 아니길 바랍니다.

▲국회의원 숫자만 300명이다. 그들이 거느린 보좌진 숫자는 무려 2700명이다. 3000명이 지난 4년간 뭘 한 건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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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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