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 달만에 한중 외교장관 통화…악화되는 한중관계 반영된듯

북핵 문제에도 인식차…조태열 "북한, 역내 긴장 고조"에 왕이 "각국 냉정 유지해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취임 26일 만에 중국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통화를 가졌다. 조 장관 취임 이후 미국, 일본, 호주, 베트남에 이어 5번째로 중국 외교부장과 통화한 셈인데, 경색된 한중관계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6일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상견례를 겸하여 50분 간 통화를 갖고 고위급 교류, 공급망 협력 등 한중관계 전반, 북핵‧북한 문제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논의에서 한중 양측은 적잖은 입장차를 드러냈다. 우선 공급망 협력 등 한중관계 전반에 대해 외교부는 "양 장관은 변화하는 통상 환경 속에서 양국간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 등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국간 무역투자를 심화해 새로운 발전 동력을 찾아 나가자는 데 공감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외교부는 "조 장관은 한중 양국이 갈등요소를 최소화하고 협력의 성과를 쌓아나가며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중국은 한중관계 전반에 대해 한국의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대한(對韓)국 정책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항상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삼고 있다"며 "한국 측이 적극적이고 객관적이며 우호적인 대중 정책을 시행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며 중한 관계의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고 양국 관계를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 궤도로 되돌리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 외교부는 "왕이(王毅)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강조했다"며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혀 미국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 및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인식차를 보였다. 외교부는 "조 장관은 북한이 연초부터 각종 도발을 지속하며 한반도와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안보리 결의가 금지하고 있는 핵‧미사일 개발과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지속 추진하고 있는 데 우려를 표명"했다며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의 길로 나오도록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강화해 주기를 당부"했다고 밝혀 이른바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하지만 왕이 부장은 "현재의 한반도 긴장에는 원인이 있다. 각국이 냉정을 유지하고 자제하며 긴장을 고조시키는 언행을 삼가고 대화를 통해 각자의 합리적인 관심사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말해 한반도 안보 위기의 원인이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과 한국 등에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 탈북민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외교부는 "조 장관은 탈북민 강제 북송에 대한 국내외 우려를 전달하고, 탈북민들이 강제북송 되지 않고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중국 정부의 각별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으나, 중국 외교부에는 이와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한일중 외교장관회의에서 논의된 3국 정상회의와 관련, 외교부는 "차기 정상회의 준비를 가속화해 나가기로 공감한 바 있음을 상기하고 이를 위한 후속 협의를 진전시켜 가자고 제안한 데 대해, 왕 부장은 의장국인 한국의 노력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앞서 조 장관은 취임 당일인 지난 1월 11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전화통화를 시작으로 23일 가미카와 요코(上川 陽子) 일본 외무상, 25일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과 잇따라 통화를 가지며 인사를 나눴다.

특히 1월 26일에는 부이 타잉 썬(Bui Thanh Son) 베트남 외교장관과 전화통화를 가졌는데 외교부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규칙과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 구축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북핵‧북한 문제, 남중국해 문제 등을 포함한 주요 지역‧국제 정세와 관련해서도 협력을 위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혀 중국에 공동 대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중국 외교장관과 통화가 베트남 외교장관보다 뒷순위로 밀리면서 윤석열 정부 들어 한중관계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윤 정부의 첫 외교장관인 박진 전 장관의 경우 취임 나흘만에 한중 외교장관 간 통화를 가진 바 있다.

앞서 조태열 장관이 장관 후보자로 내정됐던 지난해 12월 20일 기자들과 만나 중국과 관계도 중요하다고 밝히면서 한중관계 개선이 본격화될 것인지를 두고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당시 후보자였던 조 장관은 "중국 측도 미·중 전략경쟁 사이에서 생기는 여러 파장이 한·중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며 "그런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한·중관계를 원만하고 조화롭게 발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후 조 장관은 1월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파트너"라며 "둘의 완전한 절대적 균형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밝혀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한편 한중관계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하기도 했다.

▲ 조6일 태열(왼쪽) 외교부 장관이 취임 26일만에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통화를 가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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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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