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약속…"제주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제1호 지정"

[함께 사는 길] 생태 중심적 사회체제로의 대전환 '생태법인'이 의미하는 것

독일의 현대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인간의 사고행위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의 집'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면서 인간의 이성 영역과 도덕적 수준을 높여 왔다. 과학과 철학,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의 선구자들의 역할이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영감을 창조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는 총 13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 <기하학 원론>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수학 고전이다. 그의 책 첫 문장에는 '점이란 부분이 없는 것이다'라는 정의가 등장한다. 부분이 없다는 것은 물리적 실체가 없는 존재를 이른다. 그러나 유클리드는 수학적 사고와 활용에 꼭 필요한 '점'을 오직 언어만으로 세상 속에 존재할 수 있게 했다.

생태법인의 등장

새로운 '언어'의 탄생은 또 하나의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의미한다. 새로운 언어를 통해서 인간의 사고는 더 확장되고 세상의 존재는 더 넓어진다. 그 새로운 언어가 법률적 용어라면 새로운 사회 질서를 창조하고 인류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생태법인(Eco Legal Person)'은 자연 존재에 법적 권리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창안한 법률 용어다. 예전에 생태학이나 법학에 등장하지 않았던 언어다. 지난 2020년 필자가 국내 한 철학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미래세대는 물론 인간 이외의 존재들 가운데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대하여 법적 권리를 갖게 하는 제도"의 뜻으로 처음 사용하였다. 자연을 대하는 인류의 윤리적 수준과 사회체제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에 조응하고 미래세대의 생태적 권리를 법(Law)으로 담아내기 위한 목적이다. 이후 후속 논문을 통해 생태법인 제도를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최근 남미 국가들에서 자연의 권리가 선언적 의미로 헌법에 수록되거나 입법된 사례가 있고 뉴질랜드나 스페인에서는 각각 강과 석호에 법인격을 부여한 사례가 있다. 그 이전 1997년에 유네스코는 야생동물들이 그들의 자연환경에서 생명과 자유를 누리고 번식할 권리 '세계 동물권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Animal Rights)'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생태법인은 선언적 수준을 뛰어넘을 뿐 아니라 자연계의 특정 동물이든 종이든 혹은 생태계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으로 자연의 권리를 확대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개념의 제도라는 점에서 다르다. 이는 생태법인이라는 용어가 학문이 발전한 서구에서 차입한 용어가 아닌, 온전히 우리 스스로 내재적 사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를 지닌다.

오랜 기간 인간은 생태계에 존재하는 요소들, 예를 들어 대지나 숲, 강과 바다, 다양한 생명 존재들을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대상으로만 취급해 왔다.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자연 자원을 남용하거나 변형하는 일을 가속해 왔다.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도 소홀했다. 하지만 자연 자원은 무한하지 않으며 무분별한 남용과 훼손으로 이제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지구의 자연은 인간에게 가장 취약하고, 그 자연의 변화에 가장 취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이제 지구의 자연이 인간의 무지와 오만을 꾸짖는 엄중한 경고장을 인류에게 보냈다. 인류세(Anthropocene)의 등장이 그것이다.

생태법인은 자연을 더 이상 착취의 대상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에서 도출된 용어다.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에는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이 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이 자연을 대하는 인간 중심적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성찰한다면 생태 위기 극복도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찾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인간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선택할 줄 아는 도덕적 존재다. 만일 현세대가 생태 위기 대응에 실패한다면 이는 곧 미래 세대에게 재앙을 물려주는 무책임한 행위가 된다. 이런 이유로 현세대는 미래세대의 생태적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지닌다.

▲ 제주 남방큰돌고래. ⓒ함께사는길(이성수)

제주 남방큰돌고래

인간은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와 제도를 창조해 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법(Law)이고 법은 인간의 행동이나 사회체제 작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 제도이다. 법 제도 가운데 법인(legal person)이 있다. 법인 제도는 근대 법치주의 체제를 원활하게 운영하는 데 있어 인간 이외의 존재에 법인격 부여 필요성에서 생겼다.

근대 법치주의는 인간 평등사상에 기반하지만, 법이 공동체의 작동 원리를 초 권력자의 권력이 아니라 오로지 법에 근거하려고 할 때 자연인의 권리만으로는 완벽한 작동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자연인 이외의 존재인 회사나 사단법인, 재단법인 같은 형태의 법인격 주체들이다.

이후 법인 제도는 사회 환경 변화나 주권자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발전해 왔다. 그렇다면 인간 이외의 자연 존재가 영원히 법인격 주체가 되지 말라는 절대 원칙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원래 법이란 하나의 명제일 뿐이다. 그리고 법인은 하나의 법 기술적 산물이다. 따라서 새로운 법, 즉 생태법인 또한 오직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차원의 문제이고 공동체의 입법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생태 위기가 인류의 존망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라면 우리는 생태 위기에 조응하는 새로운 법적, 사회적, 윤리적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제주 해안 가까이서 정착하여 살아가는 해양 생물이다. 오랜 기간 제주도민의 벗이자 삶의 동반자였다. 50여 년 가까이 제주시 탑동 바다에서 물질을 해온 해녀분은 "돌고래가 말을 알아듣는지 우리가 일하는 가까이 올 때 물 알로(물 아래로)! 물 알로(물 아래로)! 하면 바다 밑으로 피해 가고 뛰라고 하면 바다 위로 뛰는가 하면 뒤로 몰래 등 쪽으로 다가와 장난을 치기도 한다"라고 전한다. 그리고 돌고래들은 해녀가 물질할 때 상어의 접근을 막아 주는 안전지킴이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군집 생활을 하는 돌고래가 먹이 사슬 경쟁에서 상어보다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선박 교통량 증가, 어구 설치, 수중 구조물에 의해 서식지 교란, 특히 최근 돌고래 관광선이 급증하면서 생존 위협에 놓여 있다. 해양수산부가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하고 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가까운 장래에 야생에서 멸종 우려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적색목록의 준위협 단계(Near Threatened, NT) 종으로 등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만으로 실효적인 보호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재 120여 마리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어쩌면 다시는 제주 바다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영원히 보지 못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제주도 "제주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제1호로 지정할 것"

어떤 존재가 보호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것과 법적 지위를 갖고 그의 이익을 스스로 실현 시킬 수 있는 권리주체가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처지에 속한다. 자비로운 노예주 밑에 사는 노예와 자유를 찾은 해방된 노예의 처지가 다른 것과 같다. 만일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생태법인 제도를 통해 법적 권리의 주체가 되면 불법 포획되었을 때 긴급 구제신청을 할 수도 있고 중요한 돌고래 서식지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 또한 공동체의 새로운 가치 판단 기준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해상풍력 설치 지역과 돌고래 중요 서식지가 충돌한다면 돌고래 서식지를 우선 고려하게 된다. 특정 중요 서식지가 종의 보존을 위해 대체 불가능한 필수지역이라면 해상풍력 설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새로운 국회가 열리면 생태법인을 여·야 합의 1호 법안으로 제주특별법을 개정해 법제화하고, 2025년에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 제1호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제주특별법은 제주 지역에 한정해 적용하는 법이다. 아직은 자연의 권리가 기존의 법체계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여건임을 고려할 때 세계적인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제주가 생태법인을 제주특별법 개정으로 실현하려는 방향 설정은 바람직한 입법 전략으로 보인다.

기자회견 자리에는 최재천 이화여대 명예교수도 함께했다. 10년 전 서울대공원 수족관에 갇혔던 제주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주는 일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었다. 최재천 명예교수는 제주도의 요청으로 지난해 3월부터 철학, 인문학, 법학, 해양 생태 보호단체와 연구소 전문가들로 구성된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을 이끌어 제주특별법 개정 법률 자문 작업을 수행하였다. 강원대 박태현 교수가 만든 세부적인 법률 조항 초안이 4차례의 전체 회의를 통해 최종안이 마련되어 발표에 이른 것이다.

제주도가 발표한 생태법인 법률은 두 개의 안으로 제시되었다. 첫 번째 안은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멸종 위기의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권리능력을 갖도록 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안은 도지사가 도의회 동의를 얻어 제주 지역에 특정 자연 존재 대상을 핵심종 또는 핵심 생태계로 지정하고 이를 생태법인으로 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 안이 다른 나라의 사례와 유사한 방식이라면 두 번째 안은 예전에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온전히 새로운 안이다. 제주도는 두 개의 안이 국회에서 병합 심사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보고 있다. 그리고 위 두 개 안에는 각각 '생태후견위원회'를 두어 제주 남방큰돌고래 권리 행사를 담당하게 하였다. 생태후견위원회에는 돌고래의 습성이나 생활환경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우선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문명을 바꿀 수 있는 법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생태법인 입법에 대한 방향과 일정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자연은 인간과의 공존의 대상이며, (중략) 제주가 국내 최초로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해 대한민국 생태환경 정책의 새로운 표준을 세우겠습니다. 제주의 생태법인 제도 도입은 단순한 법적 제도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인류 공통 과제를 해결하고, 인간 중심의 문명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문명으로 대전환하는 사회 혁신입니다"라는 담대한 포부를 밝혔다. 제주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법 '생태법인'은 이제 인간과 자연의 행복을 위한 제주 미래의 비전이며 새로운 실천의 약속이 되었다.

어떤 법은 문명을 바꿀 수 있다.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하고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첫 번째 주역이 되는 현실은 단지 멸종 위기에 처한 긴급한 생명체를 보호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을 주체로 하고 자연을 객체로 하는 근대 법치국가 체제의 인간 중심적 규범 체계에 금이 가는 것이다. 인류는 지금 '공동 대응이냐? 아니면 집단 자살이냐?' 선택을 요구받는 절박한 상황에 몰려있다. 인류사회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생태 중심적 사회체제로의 대전환을 모색한다면, 생태법인 도입이 이를 위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 제주 대정읍 앞바다에 남방큰돌고래 무리들이 활동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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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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