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고 소금물 먹여 죽이고, 쌍둥이 250명 생체실험한 '죽음의 의사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2]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①

"항일 독립군인가요?" 2009년 11월6일, 여의도 국회에 나온 정운찬 국무총리에게 '731부대가 무엇인지요?’라고 한 야당 의원이 물었다. 그때 정총리가 되물어 본 말이 '731부대가 항일 독립군인가’였다. 경제학박사에다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국무총리의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이다. 정총리가 지닌 이른바 '역사인식의 수준’을 의심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이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어이 없어했다.

초등학생이라도 알만한 731부대를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잘 몰라 엉뚱한 대꾸를 했다. 그바로 뒤 어느 중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됐다. 필자의 졸저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미지북스, 2021년 개정증보판)을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원인을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총리의 '항일 독립군’이 메아리처럼 울림이 남아 있던 터라,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이며, 731부대가 무엇인지 네 글자로 설명할 수 있다면 손을 들어보라 했다. 여러 학생들이 손을 들었고, '세균부대'또는 '생체실험’이라는 답변이 금세 돌아왔다.

정 전총리는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를 지냈고 프로야구 보는 게 취미로 알려져 있다. 일본 프로야구와 미국 메이저 리그의 역사나 타율·출루율·방어율 같은 선수의 개인기록들을 꿰고 있지만,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이 끌려가 '마루타’(통나무) 생체실험으로 숨져갔던 아픈 과거사는 잘 모르는 것일까. 국회에 불려나가 야당의원들의 공세에 시달리며 긴장을 한 나머지 잠시 착각을 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래도 안타깝다는 생각은 지우기 어렵다.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시신들을 태우는 모습을 몰래 찍은 사진. ⓒAlberto Errera

얼려 죽이고, 소금물만 먹여 죽이고...

[높은 고도(高度)에 관련한 연구는 희생자들이 죽을 때까지 산소를 결핍시켰다. 사람들은 서서히 얼어 죽었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감염 당했고 각종 실험적인 약으로 치료를 받았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었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약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백신을 개발하는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황달, 티푸스, 콜레라, 천연두, 그리고 디프테리아에 감염 당했다](앨버트 존슨, <의료윤리의 역사>, 로도스, 2014, 190쪽).

[전투에서 입은 부상과 관련한 모의실험에서는 희생자들을 인위적으로 감염시킨 다음, 설폰아마이드로 치료할 사람과 치료하지 않을 사람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그 결과를 비교하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일부는 염분이 없는 물을 마시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요소중독 현상이 나타날 때까지 소금물을 마시게 하는 실험에 동원되었다. 다양한 독극물이 치사량을 관찰하기 위해 투여되었다. 광범위하게 주민들을 거세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남성들과 여성들이 각종 방법으로 거세되었다](앨버트 존슨, 190-191쪽).

아마도 독자들은 위 인용문을 읽으면서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은 일본군 731부대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위 글은 731부대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나치 독일의 의사들이 저질렀던 악행을 고발한 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의사 20명과 의료행정관 3명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넘긴 미 검찰관이 법정에서 소리 높여 읽었던 기소문 내용이다.

위 글이 들어 있는 <의료윤리의 역사>를 쓴 앨버트 존슨(워싱턴대 의학과 명예교수)은 1세대 생명윤리학자로 일컬어진다. 샌프란시스코대 총장을 지냈고 캘리포니아 퍼시픽 메디컬센터의 '의학과 인간가치 프로그램'공동대표로 활동해왔다. 가톨릭 신부이기도 한 존슨은 자신의 책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국·인도·영국·미국 등의 의료윤리 역사를 살펴보면서, 나치 독일의 의사들이 의료윤리를 어기며 저질렀던 끔찍한 전쟁범죄를 고발했다.

닮은꼴로 생체실험 했던 일·독 의사들

아시아·태평양전쟁 무렵 세균전을 펼치기도 했던 731부대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생체실험’의 도구로 희생시킨 것으로 악명 높다.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힌 조선의 투사들이 731부대로 끌려가 '마루타’(통나무) 취급을 받고 고통 속에 죽었음은 (일본 극우들이 아무리 아니라 우겨도)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독자 분들이 위의 두 인용문을 읽으면서 731부대원들이 저지른 전쟁범죄 행위로 짐작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731부대에서는 나치 의사들이 저질렀던 가학행위와 똑같거나 더 심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를테면 위 인용문에 나오듯이 소금 성분(염분)이 없는 증류수만을 마시며 며칠 동안 살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도 했다.

"나는 군속 스가와라 사토시 밑에서 물만 먹고 며칠 동안 사는가를 (도고부대로 잡혀온 중국인들을 상대로) 실험했다. 그 결과 보통 물로는 45일, 증류수로는 33일 살았습니다. 증류수만 먹은 사람은 죽음이 가까워오자 '맛있는 물을 달라’고 호소했다. 45일간 산 사람은 즈옥완이란 이름의 의사로, 비적(匪賊)은 아니었다”(전쟁과 의료윤리 검증추진회, <731부대와 의사들>,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4, 23쪽).

위 글은 1935년부터 1년 동안 731부대에 있었던 일본인 구리하라 요시오가 남겼던 양심적 증언이다. 일본의 보수 우경화 흐름 속에서도 (소수이긴 하지만) 전쟁범죄로 얼룩진 과거사를 반성적으로 돌아보자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없지 않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겸허히 돌아보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닌 이들 가운데는 의료인들도 있다. 2006년에 출범한 '전쟁과 의료윤리 검증추진회’는 일본의 더러운 과거사를 자성적으로 돌아보자는 사람들의 모임 가운데 하나다.

'전쟁과 의료윤리 검증추진회’를 비롯한 일본의 양심적 의료인들은 이른바 '15년 전쟁’(1931년 만주침략부터 1945년 패전까지의 기간 동안의 전쟁)에서 일본 의학계가 저지른 잔혹한 생체실험을 비롯한 전쟁범죄를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위에 실은 요시오의 증언은 2007년 이 단체에서 펴낸 책(원제목은 戦争と医の倫理)에 실린 글 가운데 하나다.

▲ 아우슈비츠에서 쌍둥이들을 생체실험했던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 대위(왼쪽), 적어도 3000명을 생체실험으로 죽인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 중장. 이들은 '악마의 의사'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독일 의사들은 처형되고, 일본 의사들은 멀쩡

731부대의 군의관들은 나치 독일의 의사들보다 훨씬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생체실험에 머물지 않고 세균전쟁을 위해 페스트균을 비롯한 여러 독극물을 만들어냈고. 이를 실제로 중국 땅에다 퍼트려 많은 피해자를 냈다(731부대에 대해선 다시 살펴볼 예정임). 문제는 나치독일의 의사들보다 더 악질적인 생체실험을 했을 뿐 아니라 세균폭탄까지 만들어 중국인들을 죽게 만들었던 일본 '죽음의 의사’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치독일 의사들 가운데 고위직에 있던 자들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헤르만 괴링을 비롯한 주요 전범자들을 처벌한 본 재판에 이어 후속재판으로 벌어졌던 '의사전범재판’)에서 처벌받았다. 글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7명이 교수형을 받고 죽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너무 달랐다. 1945년 8월9일 소련군의 대규모 공세로 일본 관동군이 급속도로 무너지자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1892-1959. 최종계급은 중장)를 비롯한 핵심 간부들은 재빨리 도망쳤다. 국경 가까이 파견 나가 있던 731부대원들만 러시아 하바롭스크 전범재판에서 (교수형이 아닌 유기징역으로) 처벌받았을 뿐이다.

물론 일본에서 붙잡아 도쿄 전범재판에 넘겨 처벌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시이 시로는 교활하게도 미국과의 비밀협상을 거쳐 전범재판을 비껴갔다. 731부대 핵심 간부들을 전쟁범죄자로 기소하지 않는 조건으로, 만주에서 생체실험으로 얻어낸 '피 묻은'세균전 자료들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이 '더러운 거래’는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와 진실은 '눈앞의 이득'앞에선 휴지처럼 가볍게 버려진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극단적인 보기다(이시이와 미국과의 비밀거래에 대해선 다시 살펴볼 예정임).

히틀러, "독일 국민의 암을 제거하라”

20세기 중반의 유럽 땅을 참혹한 전쟁으로 몰아갔던 아돌프 히틀러는 정치 집회에서 의학적인 비유를 즐겨 사용했다. 이를테면 유대인을 가리켜 '독일 국민의 암'또는 '암적 존재’라고 말하곤 했다. 암이 발견되면 빨리 도려내야 한다. 히틀러는 그 자신을 '독일의 정치적 의사’로 여겼다. 히틀러는 한 정치집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변호사, 엔지니어, 건축가 없이도 일할 수 있지만, 그대들, 국가사회주의 의사들 없이는 한 시도 일을 할 수 없다. 그대들이 나를 돕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실패할 것이다”(김옥주·황상익,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윤리의 발전’, 「뉴래디컬리뷰」2005년 12월).

나치 정권 아래서 많은 의사들은 히틀러의 선전 선동에 공감을 나타내며 적극적으로 자발적인 범죄자가 됐다. 나치 정권의 폭력적 성향을 못 마땅하게 여겼던 소수의 가톨릭계와 사회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뺀 대다수의 독일 의료인들이 적극적, 자발적으로 나치 정권을 지지하고 당원이 됐다(이를테면, 독일 쾰른에 가까운 작은 도시 본에서는 의사 112명 가운데 102명이 나치 당원이었다. 연재 33 참조).

나치 독일이 내걸었던 이념적 바탕에는 '국가사회주의’(사회주의는 허울뿐이고 실제로는 전체주의)와 더불어 문제의 가짜과학인 우생학이 있다. 널리 알려졌듯이 우생학이란 '나쁜 유전자’를 없애고 '좋은 유전자’로 종족을 개량해간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지녔다. 그런 목표를 평화적으로 이루려 노력한다면 탓할 것까진 없다. 나치독일의 우생학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시켜 매우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나치의 인종학살은 히틀러 식으로 변질된 우생학이 낳은 끔찍한 결과로 비판받는다.

▲ 1945년 1월 소련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접수했을 때 그곳에 있던 어린 수감자들.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강제 불임, 안락사에 이은 대학살

나치는 정신질환자나 신체장애자, 알콜중독자들을 '밥이나 축내는 무익한 식충들’로 멸시했다. '살 가치가 없는 인생’들은 나치독일 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오히려 짐이니까 제거해야 마땅하다는 논리였다. 제거는 3단계(불임시술→안락사→대량학살)로 이뤄졌다. 뒤로 갈수록 희생 규모가 커졌다. 김옥주·황상익(서울대 의대 의사학교실) 두 연구자의 글을 참고로, 3단계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치 집권 초기엔 강제 불임 시술을 했다. 1933년 나치당이 집권한 첫해에 독일 의회는 '유전질환이 있는 자손 방지에 관한 법’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은 정신질환자와 알콜중독자는 40만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안락사(euthanasia)를 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던 해인 1939년부터 1941년까지 2년 동안 정신질환자 7만 명이 안락사로 숨졌고, 남은 정신질환자들의 절반쯤은 굶어 죽었다.

△전쟁 막판엔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나치의 대량학살이 벌어졌다. '홀로코스트'(holocaust)라고 알려진 그 끔찍한 전쟁범죄는 정신질환자나 정신박약아, 알콜중독자, 동성애자들과 더불어 수백만 유대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학살 과정에 독일 의사들이 깊이 개입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이와 관련된 글을 읽어보자.

[1941년 가을, 독일 전역의 정신병원에서 (안락사를 해오던) 가스실이 해체되고 그곳의 시설과 장비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몇 군데의 수용소로 집중되면서, (정신질환자) 살해에 관여하던 의사, 간호사, 기술자들도 수용소로 이동하였다. '살 가치가 없는 인생들인 정신병자’들을 죽이던 논리에 근거하여 유대인, 동성애자, 공산주의자, 반(反)나치주의자, 집시(로마족), 슬라브족, 그리고 일부 전쟁포로들이 가스로 살해당했다.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강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나치에 의해 학살되었다](김옥주·황상익, 위의 글).

쌍둥이 250명 생체실험한 '죽음의 천사'

전쟁포로나 유대인들을 의학실험으로 희생시켰던 나치 의사들이 모두 뉘른베르크 의사재판을 통해 그들이 저질렀던 죄에 걸맞은 형벌을 받은 것은 물론 아니다. 많은 '죽음의 의사’들이 패전 뒤 도망쳤다. 나치 의사들 가운데서도 특히 악명이 높았던 요제프 멩겔레(1911-1979)도 도망자 가운데 하나다. 1942년 러시아전선에서 부상을 입은 뒤 철십자훈장과 함께 대위로 승진해 1943년 봄부터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의무관으로 일했다(의무관은 가스실로 보낼 사람과 강제노역에 동원할 사람을 나누는, 그야말로 생사를 가르는 절대 권한을 지녔다).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였다. 물론 그가 '천사’는 아니었다. 쌍둥이로 태어난 사람들을 몹쓸 생체실험으로 괴롭혔던 '악마의 의사’였다.

냉혹한 성격을 지녔던 멩겔레는 독일민족이 인종적으로 특별하다는 히틀러의 사이비 우생학에 미쳐있었다. 30대 초반 나이에 아우슈비츠로 발령을 받은 뒤 유전학과 세균학 실험에 집중했다. '의학 연구’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노인 쌍둥이부터 어린이 쌍둥이까지 적어도 250명의 쌍둥이를 온갖 가학적인 방법으로 실험을 하곤 끝내 죽음으로 내몰았다.

어떤 쌍둥이들은 죽을 때까지 얼마만큼 피를 뽑을 수 있는지를 알아내려는 실험에 희생됐다. 그들은 끝내 온몸이 하얗게 되어 쓰러져 죽었다. 약물의 효능을 알아낸다면서 쌍둥이 하나에게 세균을 주입한 뒤 그가 죽으면, 남은 쌍둥이마저 죽였다. 쌍둥이의 시신들을 해부해서 둘의 신체 기관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멩겔레의 조수로 일했던 나이스즐리는 하룻밤 사이에 14명의 집시 쌍둥이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법정에서 증언했다.

"해부실 옆에는 일하는 방이 있었는데 14명의 집시 쌍둥이들이 심하게 울며 대기하고 있었다. 멩겔레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10cc와 5cc 주사기를 준비하였다. 한 상자에서는 에비팔, 다른 상자에서는 클로로포름을 꺼내어 수술대 위에 놓았다. 첫 번째 쌍둥이가 들어왔다. 14세 소녀였다. 멩겔레는 나에게 그 소녀의 옷을 벗기고 머리를 해부대 위에 올려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소녀의 오른팔 정맥에 에비팔을 주입했다. 그 애가 잠들자 멩겔레는 좌심실을 만져 확인한 다음 10cc의 클로로포름을 주입하였다. 잠깐 움찔하더니 그 아이는 죽었고 멩겔레는 시체실로 데려갔다. 이런 방법으로 그날 밤 쌍둥이 14명을 모두 죽였다”(김옥주·황상익, 위의 글)

아이히만처럼 남미로 도망쳐 숨어

멩겔레는 쌍둥이의 생식기를 비롯한 장기들을 떼어 내어 이식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19살의 남자 쌍둥이는 '소년을 소녀로 만들고 소녀를 소년으로 만들려는'실험에서 혈액을 교차 수혈을 받고 죽었다. 소년들은 거세되기도 했다. 멩겔레가 했던 생체실험은 근본적으로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와 비과학적 우생학에 집착한 나머지 저질러졌던 광기 어린 전쟁범죄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멩겔레는 강제수용소의 쌍생아 아이들을 모아 신체적 특징을 측정하고, 교차수혈을 시도하고, 생식기 및 기타 장기들을 이식하였으며, 심지어는 '인공 샴쌍생아’까지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모집한 쌍생아집단을 약물의 비교연구를 위해 양쪽 모두를 살해했다] (앨버트 존슨, 191쪽).

'인공 샴쌍생아’라니 무슨 말인가. 멩겔레는 한 집시 쌍둥이 소년들을 붙잡아 등이 서로 붙도록 꿰맸다. 그는 쌍둥이의 혈관과 기관들을 붙여 샴쌍둥이를 만들어 보려 했다. 이 쌍둥이는 엄청난 고통 속에 밤낮으로 울부짖다가 상처가 곪아 사흘 만에 죽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한 나치의사의 어이없는 '의학적'호기심은 어린 두 생명을 그렇게 앗아갔다.

1945년 1월 소련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접수했을 때 멩겔레는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독일에서 이름을 바꾸고 숨어살던 그는 다른 나치전범들(이를테면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남미 아르헨티나로 갔다가 1959년 브라질로 옮겨갔다. 20년 뒤인 1979년 상파울루 해변에서 수영을 하다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 뒤로도 살아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1993년 조사단이 무덤을 파헤쳐 유골의 사진과 이빨 DNA 등으로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법과 정의의 심판을 비껴가며 30년 넘게 도망자로 살았던 '죽음의 천사'멩겔레는 같은 나치 친위대 출신인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될까봐 늘 조심하며 살았다. 그래서 불면증에 시달렸다 하니, 그나마 벌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아이히만은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들에게 납치돼 예루살렘 재판 끝에 1962년 처형됐다. '악의 평범성'등 아이히만 재판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 대해선 따로 살펴볼 예정임).

히틀러와 히믈러의 주치의에게 교수형

흔히 '뉘른베르크 재판’(정식 이름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Nuremberg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이라 알려진 전범재판(1945년 11월~1946년 10월)은 나치 독일의 정치군사지도자들을 처벌한 재판이다. 24명의 피고 가운데 자살 또는 병사한 2명을 뺀 22명이 재판을 받았고, 헤르만 괴링을 비롯한 19명에게 유죄가 선고됐다(교수형 12명, 종신형 3명, 징역 20년 2명, 징역 15년 1명, 징역 10년 1명. 연재 31~33 참조).

이 재판 뒤에 미국의 주도 아래 이른바 '뉘른베르크 후속재판’들이 열렸다. 의사 전범재판, 판사 전범재판 등 후속재판은 모두 12개였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열리고 세계 언론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던 것이 의사 전범재판이다. 1946년 12월9일 뉘른베르크 군사재판소 법정에 선 23명의 피고인(의사 20명, 의료행정관 3명)은 모두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12개 후속재판에서 모두 13명이 교수형 판결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7명이 의사재판에서 나왔다).

교수형을 언도 받은 7명의 피고는 △히틀러의 개인 주치의였던 카를 브란트(친위대 중장, 총통 직속 보건의료 고등판무관), △하인리히 히믈러(나치 친위대장이자 비밀경찰인 게슈타포 총수로, 패전 뒤 도망치다 검문에 걸려 붙잡히자 독극물로 자살)의 주치의였던 카를 게프하르트(친위대 중장, 독일적십자사 총재) △하인리히 히믈러의 측근이었던 루돌프 브란트(국가내무부 각료청장) △발데마르 호펜(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수석의사) △요아힘 므루고프스키(친위대 위생연구소장) △볼프람 지페르스(친위대 고위간부, 독일유산학술협회 국가관리관) △피크토어 브라크(친위대 고위간부) 등이다.

이들 피고들은 의학적 업적으로 이름을 날리거나 보건 행정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히틀러에 충성을 바쳤다.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끔찍한 범죄행위였다. '의학의 이름을 내세운 살인, 고문 및 기타 잔학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과학적 실험’을 한다는 핑계로, 그들의 신체 손상이나 장애에 그치지 않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끔찍하고 위험한 '의학적 처치’를 마구 저질렀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 나치 의사 전범들을 재판했던 뉘른베르크 법정. ⓒ김재명

나치 의사들의 목표는 731부대와 닮아

강제수용소 안에서 나치 의사들에게 생체실험의 도구로 쓰인 이들은 전쟁포로, 유대인, 그리고 동성애자를 비롯해 (나치의 기준으로) '비사회적’이라 낙인찍힌 이들이었다. 나치 의사들의 행위는 '생체 실험’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위반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니, 의사 윤리를 꺼내들 것도 없이 일반적인 상식의 잣대로 봐도 잘못된 행위였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런 끔찍한 일을 벌였을까. 2명의 미 법의학자가 쓴 책에서 관련 대목을 옮겨본다.

[친위대 의사가 주도한 나치의 '의학'실험은 주로 강제수용소에서 이뤄졌다. 이 범죄적인 실험이 공공연하게 내세운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치 병사가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신체적 손상이나 질병을 수용소의 건강한 수감자에게 옮긴 다음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둘째, 성인과 아동 수감자를 다양한 독극물에 노출시켜 치사량과 생존 시간이 얼마인지 관찰한다. 셋째, 이른바 열등인종의 유전적 열등성을 과학적으로 실증하고자 노력한다](조슈아 퍼퍼·스티븐 시나, <닥터 프랑켄슈타인>, 텍스트, 2013, 130쪽).

나치 의사들이 내세운 목표는 731부대의 목표와 닮았다. 검찰 측을 대표한 기소위원회 위원장 텔포드 테일러(미 육군 중장)는 나치 의사들의 행위가 "히포크라테스 이래 의료윤리의 기본인 '무엇보다도 해를 끼치지 말라(primum non nocere)’를 어긴 비윤리적이고 반인류적인 범행”이라고 질타했다(김옥주·황상익, 위의 글). 나아가 테일러는 나치의 생체실험을 가리켜 "가증스러운 범죄일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고 형편없는 실패작이다. 문명화된 의학에서 사용할만한 어떤 결과도 밝혀내지 못했다”고 못 박았다(조슈아 퍼퍼·스티븐 시나, 141쪽).

1947년 8월19일 뉘른베르크 의사재판은 피고인 7명에게 교수형, 9명은 장기 징역형을 매기고 막을 내렸다. 사형 판결을 받은 7명은 10개월쯤 뒤(1948년 6월2일) 바이에른 란츠베르크 교도소에서 교수형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형장에 들어 서기 앞서 히틀러의 개인 주치의였던 카를 브란트, 하인리히 히믈러의 개인 주치의였던 카를 게프하르트는 일부 미군 경비병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독일 유대인 출신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범죄는 너무나 끔찍해서 어떤 형벌도 그 죄를 다스리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치 전범들에 극도의 증오심을 지녔던 일부 미군 경비병들도 '나치 전범들이 저지른 죄의 무게에 견주면, 교수형은 너무 싸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렇기에 곧 교수형을 당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렀을 걸로 짐작된다. 연재 30 참조 바람).

인간이기를 포기한 '죽음의 의사’

독일에서 처벌받은 의사들은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나치 의사집단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몇몇 의사들은 전쟁이 끝난 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또는 받아야 할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한 일부 의사들은 (위에서 살펴본 멩갈레처럼) 남미 쪽으로 도망쳤다.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인 채 눈치를 보던 일부 의사들은 서독 아데나워 총리로부터 정치적 사면을 받고 의사 또는 의대교수로서 전문성을 이어간 사람들도 물론 적지 않다.

나치 의사들이 저지른 악행을 보다가 731부대의 실태를 살펴보면, 일본 의사들의 악마적 행태는 더 끔찍하다는 생각을 들기 마련이다. 적어도 3000명(일설에는 2만 명)의 피실험자들을 온갖 가학적인 방법으로 괴롭히다 끝내 죽음에 이르게 만든 일본 의사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었다. 더구나 이들이 개발해 실전에 써먹은 세균무기에 이르면, 나치 의사들은 아마추어처럼 보일 정도다.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우리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은 야만성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사람 마음속엔 짐승이 감춰져 있다. 분노의 짐승, 고문 받는 사람의 비명을 듣고자 하는 짐승, 마구 날뛰는 무법의 짐승이 (마음 속에) 숨어있다."굳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빌릴 것도 없다. 나치독일의 의사들과 일본 731부대 의사들은 전쟁의 광기에 미쳐 산 사람을 생쥐처럼 다루면서 인간성을 상실해버린 짐승 그 자체였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뒤적여 본 여러 참고서적들은 차마 읽기 힘든 끔찍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슬그머니 울적해지더니 자료를 읽을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래도 글 맨 앞에 본 것처럼, 서울대총장 출신의 국무총리마저 731부대를 잘 모른다고 하니, 그런 이들을 위해서라도 짚어볼 가치는 있겠다고 여겨진다. 다음 주에 관련 내용들을 더 들여다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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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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