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해제가 지방소멸 막는다? 오래된 적금은 깨는 게 아니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아쉬울 때마다 그린벨트 빼먹는다? 부작용 생각해야

국가 정책 수립과 집행에서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지만, 현실에서 일관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공간이나 국토 관련 정책은, 좋게 말하면 패러다임의 변화도 있고 나쁘게 말하면 유행을 타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상당한 일관성을 보인 국토 정책이 있는데 개발제한구역, 바로 그린벨트이다. 1971년 도시의 무분별하고 급속한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그린벨트는 급조된 정책이 가지는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기간 동안 잘 지켜졌다.

몇 차례의 해제를 거쳐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최초 전 국토의 5.4%가 지정된 그린벨트는 현재 서울과 광역시, 창원특례시에 남아있다. 정확히 말하면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절대 해제하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이 작용해왔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전광석화로 추진된 정책인 그린벨트는 역설적이게도 지도자의 사후에 일종의 유훈이 되어,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금기가 작동해온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단녹지' 즉 현재의 분당과 판교 신도시 지역을 둘러보며 "앞으로 중요하게 사용될 땅이니 개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라는 도시계획계의 야사는 인터넷에 널리 퍼져있고, 필자 역시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목소리를 통해 여러 차례 듣기도 했다.

이러한 '남단녹지' 이야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놀라운 '혜안', '예지력'과 그린벨트의 필요성이 결합되어 있으며, 적어도 왜 그린벨트를 해제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데 있어 학술적 평가보다 더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 같아도 그린벨트의 필요성을 설득하라고 하면 숫자나 표보다는 '남단녹지' 일화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린벨트 해제, 정확히는 대폭 해제라는 기사를 접했다. 아직 문서화된 발표는 찾지 못했지만, 여러 언론에서 소위 '단독 보도'의 형태로 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대적인 그린벨트 해제', '50년만의 규제개혁'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되는 기사는 대체로 지방소멸을 걱정해야하는 시대에 그린벨트라는 오래된 규제가 적절하지 않다는 내용이 많고,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형 산업단지 개발을 위해 그린벨트가 대폭 해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가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가?

그린벨트 해제가 필요하다는 기사에서 강조하는 첫 번째 해제 이유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실 춘천, 청주, 전주, 진주 등 도청소재지급 도시의 그린벨트는 이미 IMF 금융위기 직후 해제되었다. 그러므로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그린벨트 해제의 정책 대상은 정확히 말해 광역시와 창원특례시가 된다.

최근 지방 광역시의 인구도 정체하거나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과연 그린벨트 해제가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지 다시 말해 인구의 유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는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그린벨트 해제로 도시 외곽에 대규모의 주거지역이 조성되면 인구가 늘어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그린벨트의 대폭 해제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린벨트는 지속적으로 해제되어왔다. 도시 외곽의 그린벨트는 지가가 낮고, 인구 밀도가 낮아 대규모 신도시로 개발되어왔다. 주택 가격이 폭등할 때마다, 주택 공급물량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대한 대책은 늘 대도시 외곽의 대규모 신도시 개발이었다.

물론 이러한 신도시는 대부분은 그린벨트 해제지역에 위치해있다. 빠른 시일 내에 엄청난 양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개발이 유보된 대규모의 토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부동산 가격 폭등 때마다 곶감 빼먹듯 그린벨트를 주거지역으로 바꾸어온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지방 광역시에 그린벨트의 대규모 해제로 인한 신도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둘째, 이러한 대규모 신도시 개발은 지방이 아니라 주로 수도권에서 이루어져왔다. 현재 지방 광역시 중에 주택 가격의 급등으로 도시 외곽에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해서 주택 공급을 단기간에 대폭 늘려야 하는 곳이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원도심 쇠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고, 1980~90년대 완공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이 논의되는 와중에 도시 외곽에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할 정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며, 현재의 건설경기가 공기업이나 건설회사가 해제된 그린벨트에 대규모 택지지구를 조성할만한 상황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구역 전경. 그린벨트 규제가 허물어지며 도시가 생겼다. ⓒ연합뉴스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해 있지도 않은 그린벨트를 해제하라니

그린벨트 대폭 해제의 필요성에 대한 기사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이유는 대규모 산업단지 개발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첨단산업단지 정책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가 필요하며,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서도 그린벨트 해제가 필요하다는 언론보도가 많다.

필자는 이 기사를 읽고 자료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야 했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지역에는 그린벨트가 없기 때문이었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용인시 남부는 그린벨트 지역이 아니다. 용인시 그린벨트는 의왕시와 인접한 서북쪽 백운산 광교산 지역 4㎢에 불과하다. 따라서 해발 500m가 넘는 백운산과 광교산을 산업단지나 공단 배후지역으로 개발할 것이 아니라면 반도체 클러스터와 그린벨트 대폭 해제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그렇다면 지방 대도시는 산업단지 개발을 위해 그린벨트의 대폭 해제가 필요한 것일까? 안타깝게도 현재 산업단지의 미분양률은 상당한 수준이다. 올해 3분기 기준으로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전국산업단지현황에 따르면 전국에 1000개 정도의 산업단지가 이미 조성되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150곳이 넘는 산업단지에 미분양이 발생했다.

물론 지자체의 일반산업단지와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는 국가 산업단지의 선호도는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각 도시별로 수요와 개발계획을 개별 검토하면 될 일이다. 즉 전국의 그린벨트 대폭 해제와 같은 '소 잡는 칼' 보다는 개별 사안을 검토하고 해제하는 '닭 잡는 칼'이 필요하다.

필요한 만큼만 꺼내쓰는 지혜

그린벨트 제도의 개선방안이나 해제 지역의 토지 이용 등 그린벨트에 대한 연구는 많다. 즉, 어떻게 하면 그린벨트를 잘 관리할 것인가? 어떻게 이용해왔고 이용할 것인가? 그린벨트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에 대한 질문에 전문가들은 계속 답해왔다.

그럼에도 주기적으로 그린벨트 대폭 해제, 제도 철폐 등에 대한 논의가 발생하는 것은 그린벨트가 개발에 용이하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이미 개발된 지역과 인접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개발 압력이 큰 지역, 개발하면 큰 이익이 나는 지역이다. 그래서 IMF 직후에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지방 중소도시 그린벨트 전면 해제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린벨트 대폭 해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설득력있는 답이 없다. 지방소멸과 반도체 클러스터 이야기를 하는데, 지방 광역시 외곽 지역에 대규모의 아파트 건설이 지방소멸의 대안인지 의문이며, 그린벨트가 없는 반도체 클러스터 대상지 이야기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그린벨트 해제가 필요한 지역이 있다.

광역시는 기존 대도시 외측의 농촌지역을 통합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울산이나 부산은 도시 중앙부에 그린벨트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며, 대구는 군위를 통합하면서 군위와 대구 사이에 그린벨트가 위치하게 되었다.

대전과 세종 사이에도 그린벨트가 있어 메가시티로 발전하려면 그린벨트가 장애물이 되기는 한다. 또한 광주와 대구는 군공항 이전과 그린벨트 문제가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든 사안에 대해 그린벨트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우 각 도시의 그린벨트 해제 요구나 개발 수요에 대해서는 개별 사안으로 접근하면 된다. 그린벨트 해제 조건은 지속적으로 완화되어 왔다.

국책사업이 필요한 경우, 이미 보존가치를 상실한 경우, 주민 편의시설의 설치 등 해제 조건은 다양하며, 해제의 권한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많이 이전되었다. 지자체의 권한을 벗어나는 규모에 대해서 중앙정부가 심의하고 해제해주면 될 일이며, 이전에도 그렇게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심의·검토의 과정 없이 규제가 대폭 해제되면 누구에게는 큰 편익을 제공해주지만 그 부작용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아쉬울 때마다 그린벨트를 조금씩 해제하여 이용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린벨트 대폭 해제의 기사를 읽으면서,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내용보다는 인생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잔소리를 생각하게 된다. 오래된 적금과 보험은 깨지 말라고. 요긴하게 쓸 일이 있으니 조금만 참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볼 때다.

■ 필자 소개

지상현 교수는 정치지리와 지정학을 전공하였고, 지정학과 공간을 둘러싼 불평등과 갈등에 관심이 많다. 최근의 연구와 활동은 선거구, 접경지역, 영토문제, 에너지 전환에 대한 질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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