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파시스트였다. 박정희는?

[파시즘의 어제와 오늘] 식민지 유산으로서의 박정희와 파시즘

파시즘에 대한 학자들이나 사람들의 정의는 민족주의에 대한 정의와 비슷할 정도로 각양각색의 특성을 보인다. 파시즘의 어원은 파스케스(fasces)로 고대 로마의 집정관이 시가행진할 때 맨 앞에 내세웠던 '나뭇가지 다발에 싸인 도끼'에서 유래했다. 파시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별개로 "나뭇가지 다발에 싸인 도끼"는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아 미국 의회, 동전 등에 사용되고 있다. 결합 혹은 연합을 뜻하는 파스케스는 다양한 사람들이 결합하여 하나를 이룬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사실 파시즘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고 2차세계대전의 원흉들인 독일, 일본, 이탈리아를 파시즘 국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2차세계대전은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두 정의는 국가라는 틀 안에서 본다면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추축국이라고 해서 모두 파시즘의 틀 안에서 이해하려 시도하기보다 이들은 구분해서 파시즘을 정의하고 파시즘 국가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분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은 현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혹은 기준을 찾아보기 위함이다.

글쓴이는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구분한다. 어떤 이념이나 체제를 정의할 때, 우리는 그것을 다루는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은 국민국가와 국민국가의 지배 체제를 구성하는 지배 집단의 조합에 있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기에는 그 이전 중세 단일한 지배 집단이 있었던 체제에서 분화되어 부르주아라는 경제 지배 집단, 종교 지도자들에서 시작한 이데올로기 지배집단, 기사 출신의 전문 군사 집단, 그리고 이들 집단으로부터 국가를 통치하는 힘을 위임 받은 정치 집단들이 통치 집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강력한 국가로 성장할 때 이들 집단은 그 이전 하나의 지배 집단이 이뤄낸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국가를 성장시켰다. 국민국가가 본격적으로 민주화되는 시기에 민주화와 경제 발전의 성숙도가 일치했던 곳에서는 시민이 지배집단이 독점하는 구조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국가의 성장이 약하고 지배 집단이 강력하지 못했으며 시민들 역시 지배 집단을 대체할만큼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도입되었을 때 파시즘이 등장하고 성장하게 되었다.

파시즘을 이해하는 기준은 국가, 시민, 체제에서 시작한다. 지배 집단 자체가 정치와 대자본가 연합 체제를 구성하면서 시민들 특히 특정한 집단을 파시즘 체제의 중요한 축으로 포섭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일본의 군국주의는 천황 중심의 국가로서 대중은 신민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이란 나라에서 천황과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국가에 비해서 크게 달랐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 집단은 피지배집단을 천황과 천황 국가의 통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다. 천황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천황이 지배하는 국가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절대자였다. 이런 체제 아래서는 권위주의 체제 혹은 국가 중심 체제가 등장한다.

파시즘은 대중이 불안에 떨거나, 불만이 가득하며, 사회 체제(특히 지배 체제)에 대해 불신이 차 있어 조그만 소란에도 쉽게 동요될 때 맹위를 떨친다. 즉 파시즘이 활동하기 좋은 토양이 파시즘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파시즘이 팽창하는 시기는 국가의 통제력 즉 사회통제력이 약화할 때와 일치한다. 대중이 정치에 동원되기 쉬운 구조를 만드는 토양이다. 이 토양에서 파시즘이 무럭무럭 자란다면 파시즘은 국가와 연결하여 정의할 수 있다. 즉 국가가 약할 때, 지배 집단은 시민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대중을 동원한다. 대중과 지배 집단이 나뭇가지가 엮이듯 연결된 것이 그리고 도끼라는 폭력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파시즘이다. 파시즘을 따라서 지배 집단이 약한 통치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대중을 집단화하고 폭력 수단을 제공하여 그들이 지배 집단의 적 시민사회에 (폭력을 포함하는) 적대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파시스트 이승만, 권위주의자 박정희

박정희는 1917년에 태어났다. 박정희가 보통학교에 입학할 때는 일본의 문화통치 시기였으며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더 많은 교육을 시키고 일본에 동화되도록 만들고자 했던 시기였다. 사회화가 진행하던 중요한 시기에 박정희는 일본식 교육을 받았다. 박정희는 파편화된 개인들이 국가가 정해 놓은 과정을 통해서 개인적인 노력에 기대어 성공을 맛보도록 구조화되었던 사회에 의해 사회화되었다. 박정희에게 혼란스러운 사회의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고 그것은 각자 자신이 맡은 사회적 임무를 다하지 않고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표출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1960년 4월 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의 혼란은 박정희에게 이승만 정권보다 더 나쁘게 그려졌다.

이승만 정권 시기의 대한민국은 약탈국가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시장에 편의를 제공하고 시장에서 이윤을 빼앗아 사적으로 정권을 강화하는 친위대인 관변단체(administered mass organizations)를 운영하는 자금으로 활용하거나 개별적으로 국회의원, 경찰, 군인 등을 관리하는 비용에 사용한 것이다. 이 시기 관변단체는 불만, 불안, 불신에 가득했던 시민들에게 그들의 불만을 시민사회에 돌리도록 유도하고 폭력을 행사하였다. 관변단체는 전위대로서 가장 선봉에서 이승만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불안을 조장하고 불신을 키우면서 대중을 위협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이승만이 무엇인가를 개탄하면 관치언론이 그대로 받아적고 관변단체는 이승만이 개탄한 내용을 확대재생산하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나 군은 동원된 이승만 계열의 집단들이 폭력 수단을 행사할 때 피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급급했다.

박정희는 이승만과 전혀 달랐다. 국가 기구를 국가와 한국 사회 근대화에 활용하고자 했다. 약탈국가에 대비되는 개념의 발전국가는 국가가 지도하여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근대화를 이루는 국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박정희는 온전하게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한국인들을 순응하게 만들려고 시도했다. 마치 군인들처럼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질서 있게 움직이도록 만들고자 했기에, 개별 시민들이나 집단들이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사회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모든 국민은 자신이 맡은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만을 하도록 강요받았고 그것이 국민으로서 신성한 의무였다. 박정희는 마치 위대한 천황의 황국신민이 되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군인이 되는 것을 선하게 여겼다.

▲이 글을 쓴 문상석 강원대 교수ⓒ필자 제공

박정희는 따라서 대한민국을 경제성장을 잘 이끄는 국가로 만들고자 했고 국민은 국가의 부르심에 호응하여 적극 참여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불안을 먹고 사는 파시즘과 다르게 박정희는 권위주의 체계를 구축하여 시민들을 말 잘 듣는 국민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는 파시스트가 아니라 권위주의 지도자였고 그가 지배하던 체계는 파시즘 체계가 아니라 권위주의 체계였던 것이다. 반명 이승만은 카리스마적 지도력은 있었지만 국가기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웠기에 독재자로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가 조직보다는 민간조직을 활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정권은 파시스트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박정희 정권은 권위주의적이었고 국가를 강력한 존재로 만들고 민족이라는 상징을 통해 시민을 지배하고자 하였다.

파시즘은 이념이나 체제 모두에 활용할 수 있다. 파시즘이 태어나고 자라는 환경을 찾기는 쉽다. 그렇지만 그것이 성장하고 자라면서 맹위를 떨치는 조건을 찾아 내면 파시즘이 도래하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파시즘을 정의할 때 우리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국가가 약한 국가인지 강한 국가인지? 국가의 지배 집단이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국가의 권리가 시민으로 이양되고 있는지?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있는지? 지배집단이 언론을 장악하고 사회불안을 조장하는지? 등이다. 국가, 지배 집단의 연합구조, 집단의 폭력 선동과 행위을 기준으로 하여 특정한 집단이 선동하고 국가가 장악한 언론이 이를 조장하며 집단이 폭력을 행사할 때 경찰과 같은 국가의 억압 기구가 침묵하여 시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파시즘이 이미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 될 것이다.

파시즘과 권위주의를 혼동해서 사용하기보다 권위주의가 파시즘으로 변질한다면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시즘이라는 개념을 체제와 이념에 마구잡이로 활용한다면 파시즘이 도래하고 사회를 위협하여 시민의 생존과 삶에 악영향을 미칠 때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나뭇가지를 하나로 묶으려면 이질적인 나뭇가지들로 인해 강력한 끈이 필요하다. 하나가 될 수 없는 나뭇가지들과 거기에 도끼를 함께 덧붙이려면 그 끈은 더 강력해야만 한다. 파시즘은 그런 상황에서 등장하고 성장했다.

박정희가 파시스트인가 아닌가는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 다른 이들의 정의와 의미에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는 않다. 단지 이 글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인과 같은 혹은 기계의 부품과 같은 한국인을 만들려고 했던 박정희가 낳은 잔재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파시즘이 자라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었는지 그 원인과 과정을 다루는 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하게 보인다.

(이 연재는 공공선 거버넌스(원장 강치원)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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