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6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이 황폐화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 '자연복원법(Nature Restroration Law)'을 제안했다. 자연복원법이라는 법안 명칭은 단순히 습지 등의 생태계 복원 사업만을 다루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영역에서 담대한 목표를 담고 있다.
기존 생물다양성 정책의 판도를 바꾸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지난 7월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갈등도 첨예했다. 인류는 첫 출현 이후 동식물과의 서식처 경쟁에서 늘 압도적인 위치에 있었는데, 이를 반전시켜서 처음으로 생태계와의 공존을 위한 목표를 법적으로 수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복원법은 2030년까지 EU 육지와 바다의 최소 30%를 복원하고 2050년까지 복원이 필요한 모든 생태계를 복구할 것을 핵심 목표로 한다. 또한 △유럽연합 전체 농지의 10% 이탄지 복원, △2030년까지 화학살충제 사용 50% 감소, △벌과 같은 수분매개자에 감소 역전, △2030년까지 도시 공간의 녹지 순손실 중단(No net loss), △하천의 연결성을 방해하는 보나 댐을 철거하여 2030까지 2만5000km의 강을 자유롭게 흐르도록 복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자연복원법은 유럽 그린딜의 핵심 기둥
유럽연합은 왜 생태계와 공존하기 위한 자연복원법을 제정했을까.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유럽의 자연은 기후변화와 도시 확장, 지속불가능한 농업과 임업, 오염으로 인해 서식지의 81% 이상이 열악한 상태에 처해있다. 생물다양성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기존의 자연 손실 추세를 반전시켜야 한다. 도시의 확장을 막고, 농업과 임업을 지속가능하게 전환시키고, 또한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강을 막은 보나 댐 중에서 노후하거나 더 이상 유용하지 않는 시설을 철거해서 자유롭게 흐르도록 해야 한다.
자연복원법은 강력한 목표를 제시하는 규제의 측면이 크지만, EU 기후법(European Climate Law)과 함께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의 핵심 기둥이다. 유럽 그린딜은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유럽연합의 로드맵이며, 2030년까지 총 1조 유로를 투자하는 경제 정책이다. EU의 2030 생물다양성 전략은 유럽 그린딜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즉, 자연 복원을 선의나 규제로만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정책으로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훼손해서 얻던 경제적 이득을 자연을 보전해서 얻을 수 있도록 돈의 흐름을 바꿔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연 복원에 투자하면 1유로마다 8~38유로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전통적 맥락에서 생태 보전은 경제 발전과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생물다양성 붕괴가 한계상황에 와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기존의 관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인간은 생태계와 무관하게 콘크리트 건물과 도로, 카드와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인간의 경제 활동 역시 생태계의 토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유럽연합 의회에서 자연복원법이 좌초 위기에 처했을 때 네슬레 등 100개 이상의 기업이 앞장서서 법안의 통과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기업의 활동이 자연에 의존하고 있고, 현재는 자연 손실이 한계에 와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위기를 넘은 자연복원법
변화에 저항하는 강력한 갈등은 농업부문에서 터져나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인 폰데어라이언이 속한 유럽인민당이 법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유럽인민당은 이 법이 통과되면 식량 안보를 해치고, 전염병과 에너지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의원 로잔나 콘테(Rosanna Conte)는 화요일 열띤 토론에서 "농민을 위한 토지가 줄어들고, 어부들의 바다가 줄어들고, 기업 활동이 줄어들고, 시민을 위한 유럽 제품과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며 자연복원법이 기존 경제 체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선명히 드러냈다.
이 같은 우파 정당의 주장에 대해서 6000명의 과학자가 조목조목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과학자들은 자연을 보호하고 복원하며, 오염물질을 줄이는 것은 장기적인 식량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반박했다. 식량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은 기후변화이며, 수분매개자와 같은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의 손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해양보호구역은 어업을 증진시킨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지속불가능한 수준으로 어획되는 조업의 비율이 1970년대에는 10%였지만, 2017년 기준 35%까지 증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호구역을 통해 남획을 제어할 경우 오히려 어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자연복원법은 지난 7월 폐기될 위기에서 협상을 통해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농업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제안은 삭제되었고, 유럽의 식량 안보에 대한 공식 평가가 완료될 때까지 법의 전체 시행을 연기하는 안이 추가되었다. 육상과 해양 훼손지의 30%를 복원하는 목표도 20%로 조정되었다. 통과된 법안은 초안에 비해서 후퇴했지만, 주요 시민사회는 자연보호 노력이 구속력 있는 목표를 통해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며 환영했다. 물론 법안을 더욱 강력하게 보완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도 필요하다, 자연복원법
유럽 자연복원법이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아. 유럽도 별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안을 들여다볼수록 ‘유럽이라서 저런 논의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유럽은 아시아보다 먼저 산업화와 도시화를 이루면서 다른 대륙에 비해 생물다양성 붕괴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마치 한국에서 공원일몰제가 이슈가 되었을 서울에서 공원을 지키기 위한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친 것도 같은 맥락일지 모르겠다. 이미 많은 공원을 잃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공원을 지키는 것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유럽 시민사회의 역량도 눈부셨다. 오랫동안 쌓인 시민과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촘촘하고 정량화된 서식지 평가가 가능했고, 자연복원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서명운동에 100만 명 이상의 유럽연합 시민들이 참여했다. 기업과 과학자들의 법안 통과 요구 역시 이 같은 인식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12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이하 ‘쿤밍몬트리올GBF’) 채택 이후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 전략을 수립 중이다. 쿤밍몬트리올 GBF는 자연을 위한 파리협약이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적인 생물다양성 목표를 채택했지만, 한국에서는 정부와 언론은 물론 시민사회조차도 관심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치열한 토론을 통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또 재정적 지원 등의 대안을 만들어가야 할 국가생물다양성 전략이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자연복원법이 필요하다. 더 많은 자연을 보전하고, 또 복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훌륭한 법안이 사회적 토론과 합의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도 없다. 한국의 자연 손실은 최소한의 합의된 진단조차 없다. 한국의 자연이 얼마나 훼손되었는지, 얼마나 복원할 수 있을지, 복원할 때 드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이것이 시민들과 기업에 어떤 혜택이 되어 돌아가는지 등 논의의 기초가 될 만한 정보가 부재한 것이다. 과학적으로 합의된 최소한의 토대가 없다면 이를 바탕으로 투입할 수 있는 재정의 근거도 없다.
한국 정부가 힘없는 국가생물다양성 전략을 수립했다고 해서 한 발짝 물러서 팔짱 끼고 마냥 비판만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환경 현안도 중요하지만 지금 수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더 대안을 토론하고, 정부에 요구하고, 또 시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유럽 자연복원법 통과 과정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해보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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