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지인 찾아 떠나는 여행 늘어난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국내 외국인 이주민 증가와 친구·친척 방문의 잠재력

지난 여름, 유럽에 간 김에 독일 북부에 있는 하노버(Hannover)를 찾았다. 하노버는 독일 니더작센(Niedersachsen)의 주도이자 최대도시로 독일에서 제법 큰 도시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이전 목적지였던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주의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멀리 하노버까지 굳이 찾아간 것은 그곳에서 교육 연수 중인 친구가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노버에서 나는 여행은 여행이되, 뭔가 특별한 것을 하거나, 멋진 곳을 방문하는 것보단 그저 친구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틈을 타 친구 내외와 근처 맛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젤라토를 입에 물고 동네를 산책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까, 내게 하노버는 친구가 없었다면 딱히 갈 일이 없는 곳이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가 있어서' 여행 겸 들린 곳이 꽤 있다. 미국 텍사스의 '텍사캐나(Texarkana)'나 캘리포니아의 '샌 마르코스(San Marcos)'처럼 '듣도 보도 못한' 곳에 갔던 것은 그곳으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친척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파리 근교의 보헤알(Vauréal), 핀란드 헬싱키 근교의 반타(Vantaa), 독일 남부의 노이울름(Neu-Ulm), 대만 타이베이 근교의 린커우(林口), 스리랑카의 쿠루위타(Kuruwita)처럼 낯선 곳에서 며칠을 보낸 것은 그곳이 한국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내게 친구들은 훌륭한 '로컬 가이드'가 되기를 자청했다. 단골 맛집에 데려가고, 동네의 근사한 공원이나 상징물에 가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모교나 동네 친구를 소개하는 것에도 진심이었다. 한국 문화에도 익숙한 이들은 그곳 사회와 한국 사회의 문화적 차이라든지, 동네와 지역을 소개하는 것에도 열심이었다.

친구·친척 방문 관광이 지역에 미치는 다양한 효과

해외 유학이나 취업,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이민 등 일시적 혹은 영구적인 초국적 이주가 증가하면서, 이처럼 나라 밖에 사는 지인이 생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친구·친척 방문을 뜻하는 VFR(Visiting Friends and Relatives) 관광은 오늘날 국제 관광의 중요한 동기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VFR 관광은 시장 규모는 물론이고 경제적·사회문화적 영향이 과소평가 되어 왔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VFR 관광객은 지인의 집에서 먹고 자기 때문에 다른 관광객에 비해 돈을 적게 쓰고, 따라서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이 적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VFR 관광의 다양한 효과를 다룬 연구들이 등장하면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먼저, VFR 관광의 경제적 효과가 과소평가 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되고 있다.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VFR 관광객은 다른 유형의 관광객보다 목적지에 더 오래 머물고, 더 자주 방문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많은 돈을 소비한다.

비단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VFR 관광의 사회문화적 영향 역시 폭넓게 논의되고 있다. 사회문화적 영향은 이주와 VFR 관광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었다. 예를 들어 그리핀과 디망쉬(Griffin, T. and Dimanche, F.)는 이민자들이 자신을 찾아온 지인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소개하는 호스팅 과정에서 이주국 및 거주 지역에 대한 애착·소속감·자부심을 키울 수 있고, 이는 이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지역 관광에서 친구·친척 방문 관광의 역할

VFR 관광은 여러 측면에서 지역 관광에 새로운 대안이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먼저 VFR 관광은 관광객의 공간적 확산과 분산을 추동할 수 있다.

이주민(호스트)이 자신을 방문한 손님(게스트)과 지역을 즐기는 방식은 호스트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VFR 호스트는 게스트를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로 데려가고, 따라서 게스트는 현지인이 장소를 이용하는 방식을 더 가깝게 경험할 수 있다.

호스트는 현지 장소와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으므로 이들과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게스트는 다른 관광객들과 차별화된 현지 경험을 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즉, 관광객을 위해 조성된 공간, 특히 관광 명소를 방문하는 데 집중하는 여느 관광객과 달리, VFR 게스트는 덜 유명하지만 주민의 일상적 활동이 벌어지는 곳, 더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일상적이면서도 이색적인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VFR 관광은 기존 관광 개발의 폐해로 지적되는 동질성과 피상성을 피하면서, 비-관광 지역에 새로운 관광 명소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VFR 관광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적 측면에서도 분산과 확산의 가능성을 지닌다. 관광객 집중은 단지 공간적 측면의 문제만은 아니다. 주요 관광도시엔 여름 휴가철에, 단풍 명소엔 가을철에 사람이 몰리고, 축제, 스포츠 행사 등의 이벤트는 특정 시기에 방문객의 집중을 유발한다.

그러나 목적지에서 주로 호스트와 시간을 보내고, 현지의 일상적인 활동을 경험하는 VFR 관광은 다른 형태의 관광에 비해 시간적 집중의 정도가 낮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의 국경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친구, 친척을 방문하는 수요는 꾸준하다는 점에서 시기를 덜 타는 안정적인 수요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증가하고 있는 친구·친척 방문 관광

우리나라에도 노동, 유학, 결혼 이주 등 다양한 목적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외국인이 이주해 오면서 국내 거주 외국인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의 '출입국자및체류외국인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00년 약 49.1만 명에서 2022년 약 225만 명으로 4.5배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는 이 수치가 더 높아 2019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87%에 해당하는 약 253만 명에 이르렀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들은 출신국과 우리나라 양국 사회 모두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두 사회를 매개하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자로, VFR 관광의 호스트로서 이들의 인적 네트워크는 VFR 관광의 잠재적인 수요를 짐작하게 한다.

결혼 이주를 포함해 개도국 출신 이주민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제약으로 이들의 지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일이 드물다는 선입견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지인을 방문하는 관광은 비단 선진국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물리적 거리가 멀지 않은 데다 인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고, 한국에 방문할 수 있는 경제적·사회문화적 자본을 갖춘 주민이 증가하는 데 더해, 결혼이주여성 본국 가족의 한국 방문 및 체류에 필요한 비자 정책에 대한 제도적 지원 등으로 방문객이 증가하고 있다.

친구·친척 방문객은 인구 감소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최근 행정안전부는 지역에 체류하며 지역의 활력을 높이는 사람까지 지역의 인구로 보는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해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총인구가 감소하는 시대, 한쪽 인구가 늘면 다른 쪽 인구가 감소하는 제로섬 게임의 '정주인구' 늘리기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증대된 이동성과 활동성을 고려한 생활인구 개념을 통해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방안이다.

이는 마찬가지로 지방 도시의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의 '관계인구' 개념과 연계되며, '체류인구' 역시 다양한 형태의 비정주인구 개념으로 소개되고 있다. 각각의 용어는 구체적인 정의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이동성 증가와 정주패턴의 변화를 고려한, 기존의 정주인구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관광객은 지역과의 연계가 높지 않고, 방문의 계절적 편차가 크며, 지역에 미치는 효과는 주로 경제적 측면에 한정된다. 그러나 관광객이 주민과 함께 지역에 머무는 VFR 관광은 지역과의 연계 수준이 비교적 높고, 계절적 편차가 낮게 나타날 여지가 크다.

또한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이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에 도움이 되는 한편, 방문자 역시 지역에서 더욱 깊이 있는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관광을 위해 방문하는 인구에 비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다양하다.

이런 점에서 VFR 관광객은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비정주인구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특히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촌 지역 가운데 의외로 외국인 인구의 비율이 전국 평균을 훌쩍 넘는 곳들이 많다. 이런 지역에서는 외국인 이주민의 지인들이 비정주인구로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행정안전부에서 지난해 12월 지역경제 활성화 목적의 ‘생활인구 늘리기’ 시책사업으로 실시한 고향올래(GO鄕 ALL來), 생활인구 늘리기 프로젝트. ⓒ행정안전부

■ 필자 소개

김주락 박사는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다. 지역 사회에서 관광의 역할, 지역 관광에서 주민의 역할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이 글은 국내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VFR 경험을 다룬 연구(Hosting and Visiting Friends and Relatives of Vietnamese Marriage-migrant Women Living in Korea and Implications for Post-Tourism) 결과를 기초로 작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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