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 콜센터에 부는 '공정한 해고' 바람

[건보고객센터 파업 장기화의 원인과 해법 ②] 공정담론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갈라치기'와 '길들이기'

11월1일 시작된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의 파업과 집단 단식이 곧 한 달에 접어든다. 장기 파업의 쟁점은 '해고 없는 소속기관 전환' 여부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021년 외부전문가가 포함된 사무논의협의회를 통해 고객센터 업무를 공단 소속기관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채용승계를 권고했다. 이미 이뤄진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해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세 편의 기고를 싣는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공공성 강화를 위해 추진되었던 건강보험 콜센터 노동자들의 소속기관 전환(별도 공공기관 설립과 정규직 전환)이 되레 '공정한 해고'의 빌미가 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외주 위탁업체 소속인 고객센터 상담사를 소속기관으로 직접 고용하도록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업무 중인 40퍼센트(%)가량의 인원 700여명을 '정리'하고 나머지 60% 인원만 별도 공공기관 소속으로 전환시킨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공단 측의 700여명 분의 일자리를 공개 경쟁채용을 통해 충원한다는 방침의 근거에는 '공정한 채용'이라는 주장이 자리한다. 이러한 근거는 과연 타당할까.

첫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남용을 해결하기 위한 가치는 차별해소에 있는 것이지 공정한 채용에 있지 않다. 공단은 의도적으로 두 가치를 충돌시키면서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려는 기존의 취지를 불공정 행위로 몰고 간다.

애초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공공기관이 비정규직 사용을 남용하면서 공공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조차 비정규직 노동으로 대체하던 문제를 바로잡으려던 것이었다.

반면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는 2016년도부터 본격적인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특히 강원랜드의 경우 2012~2013년 합격자 518명 전원이 채용 청탁 대상자임이 밝혀졌다. 공공기관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엉뚱하게 정규직 전환에 대한 공정 시비가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제기되었다. 공공기관, 보수여당을 비롯해 비정규직 정책을 추진하던 문재인 정부조차 차별해소라는 가치와 공정이라는 가치를 의도적으로 섞으며 채용비리에 따른 공공기관과 정부의 불신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싸움판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대책들은 후퇴되고, 축소되었다.

그 결과 역설적이게도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정당하지 않은 차별과 불이익을 낳는 기이한 불공정 구조가 고착되고, 이는 마치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이인 것인 듯 차별이 정당화되는 세계가 더욱 공고해졌다.

둘째, 공정 채용을 훼손하는 채용비리가 만연할 만큼, 공공기관으로 설립될 콜센터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인가?

공단 측이 공정 채용을 위해 정규직 대상에서 제외한 700명이 산출된 근거는 2019년 2월 27일 이후의 입사자 전체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관련 민간위탁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한 뒤 입사한 노동자는 잠재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목적하고 불법적인 채용비리를 통한 입사자가 된 셈이다. 정규직 전환을 위한 무임승차의 불순한 의도로 고객센터에서 5년 동안 하루 100~200콜을 받고, 방광염에 걸릴 정도로 화장실에 제대로 다니지 몰할 정도로 콜 경쟁에 내몰리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각종 콜경쟁을 부추기는 프로모션 등으로 인한 과잉노동을 감수하고 있다는 말인가? 무임승차를 노리기에는 너무 가혹한 노동강도이다.

또 하나. 2019년 이후의 입사자라는 말은 틀렸다. 2019년 이후 입사자 전체는 몇 명이고 퇴사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채용비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입사한 사람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꿰차고 있어야 이런 구분이 가능하다. 2019년 이후 700명의 근속자는 이보다 더 많은 퇴사율을 전제한 것이고, 매월, 매일, 매시간 단위로 평가하는 실적평가시스템에서 낙오되거나 방출되지 않은 채 업무상 중대한 실수나 손해를 끼친 적이 없는 업무능력이 검증된 인력들이다. 이들을 잠재적 채용비리 집단으로 매도한다는 것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공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모욕감을 준다. 이 모욕감이 700명의 싸움이 아니라 고객센터 전체 노동자들의 싸움으로 확대되고 장기화되는 원천이다.

공단측의 채용비리 주장을 뒷받침 하려면 별도의 공공기관으로 전환될 노동조건이나 임금이 지금보다는 획기적으로 나아져야 한다. 무늬만 정규직 일자리가 아니라, 기존의 건보공단 정규직의 처우와 비슷한 수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단이 능률협회를 통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정원 인력은 오히려 축소되고, 임금 설계역시 최저임금 수준을 밑돌고 있으며, 승진해봤자 1년에 1만 원 정도 오르는 임금설계임에 반해 콜수와 통화 품질에 대한 평가는 더욱 강화되어 있다.

다시 말해 채용비리 운운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허구적 설정에 불과하다. 공단이 발표하는 퇴사율은 평균 3%이지만, 3개월 수습 기간 중에 90%의 인원이 퇴사하는 게 현실이다. 이 현실에서 지난 5년간 업무를 수행한 인력의 능력과 도덕성을 훼손하면서까지 700명을 해고하겠다는 것은 노동자 갈라치기와 노조 길들이기라는 기이한 목표 말고 달리 이해할 길이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연 '금융권 콜센터 최대 규모 총파업 돌입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금융권 콜센터 직원들이 금융 관련 정보를 다루는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데도 성과급 지급 대상에서 배제됐다며 시정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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