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김해사직단' 터 발굴

"대성동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시점 확인...의의가 크다"

조선시대의 풍요를 기원하는 '김해사직단' 터가 발굴돼 눈길을 끌고 있다.

김해시 대성동고분박물관은 10일 김해 봉황동유적 내 사직단 추정지 에서 학술자문회의를 열고 "김해사직단으로 추정되는 석축단과 유, 계단시설 등이 확인됐다"며 "제단과 신실은 후대 삭평으로 유실되어 확인 할 수 없었다"고 이같이 밝혔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석축단은 남-북 길이 19.5~6m, 동-서 길이 18.3~19.5m 가량으로 방형에 가까우며 원형을 잘 이루고 있다"면서 "석축단 남쪽은 석축이 2열로 나타나는데 축조 수법에 차이가 있고 주축 방향이 맞지 않아 수축 혹은 개축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해시 대성동고분박물관이 학술자문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프레시안(조민규)

그러면서 "석축단 내부에서 지진구로 이용된 청자발이 출토되고 석축단 북서쪽에서 출토된 기와 역시 14~15세기대 유행 한 것으로 초축 시기는 조선전기로 추정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동쪽에서 확인된 유는 잔존 길이 22.5m로 석축단과 160~180cm 가량 이격되어 너비 90~100cm 가량으로 양벽을 쌓아올리면서 내부에 암갈색 사질점토와 길이 10cm 가량의 할석과 기와편 등을 다량으로 채워 넣어 축조했다"고 밝혔다.

또 "유 내부에서 출토된 기와편은 초축 된 사직단 또는 고읍성에 사용된 기와를 재활용 한 것으로 동쪽 유의 경우 수축 또는 개축시 축조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제단부는 후대 삭평으로 유실되었고 식재된 나무와 벤치 등으로 전면 조사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김해사직단’의 축조 시기·규모·평면형태·축조 방법 등을 확인 할 수 있었고 향후 복원 정비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자문회의에서는 "가야시대 유적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 비교적 고려와 조선시대 유적에 대한 보존 노력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사직단은 풍요와 번영, 백성의 평안을 기원히는 시설로 대성동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등 김해에 중요한 이슈가 있는 시점에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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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규

경남취재본부 조민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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