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간 대치가 극심했던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과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방송3법)이 예상과 달리 큰 진통 없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당초 국민의힘은 이들 법안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예고했으나,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검사 2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 국민의힘이 탄핵 표결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포기한 것.
김진표 국회의장은 9일 오후 국회에서 본회의를 열고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표결을 진행했다. 김 의장은 그간 여야 간 합의 처리를 주문하며 법안 상정을 미뤄왔으나 민주당의 거센 요구에 따라 이날 상정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결 결과, 노란봉투법은 재석 174명 중 찬성 173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고 국민의힘은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 방송법(재석 176인·찬성 176인)·방송문화진흥법(재석 175인·찬성 175인)·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재석 176인·찬성 176인)도 각각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시도에 맞서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기로 계획했다.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발언자 60여 명의 명단을 확정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본회의에 앞서 민주당이 의원총회를 통해 이동관 위원장과 손준성·이정섭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결의해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하자 기류가 달라졌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당 소속 의원들과 긴급 회의를 거쳐 "우리 당은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기로 했다"며 "필리버스터라는 소수당의 반대토론 기회마저도 국무위원 탄핵에 활용하겠다는 정치적 악의적 의도를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윤 원내대표는 "네 가지 악법에 대해 국민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을 탄핵해 국가기관인 방통위를 장시간 무력화하겠다는 나쁜 정치적 의도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윤 원내대표는 "오늘 아침부터 (필리버스터 포기를) 생각하고 있었다"며 "제가 민주당, (국회)의장께 오늘 점심시간 직전까지 '필리버스터는 상당히 양당 간에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일정인데 거기에 탄핵을 얹어서 하겠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읍소에 가까운 사정을 했는데 안 받아들여졌다"고 전했다.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경우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이내 표결하지 않으면 폐기된다. 필리버스터를 할 경우 본회의가 계속 진행되는 셈이기 때문에, 필리버스터를 포기함으로써 해당 시간 내에 본회의 자체가 열리지 않게 하겠다는 판단인 셈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초 이 법안(노란봉투법, 방송3법)의 반대토론을 하려 했다가 이동관 위원장과 검사 2인 탄핵안이 올라오자 필리버스터를 전격 철회한 것에 유감스럽다"며 "얼마나 방송 장악이 시급하면 방통위원장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꼼수까지 쓰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저는 탄핵안 처리를 위해 본회의 개최를 의장께 요청할 생각이고 의장이 수용하지 않으면 정기국회 안에 여러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동관 위원장과 검사 2인 탄핵안을 정기국회 내 꼭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노란봉투법, 방송3법에 대해선 "매우 의미있는 법안"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있어선 안 된다. 다시 한 번 노조법 포함 방송3법에 대해서 정부 여당이 열린 자세로 임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지칭하는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와 노동자 범위를 확대하고, 하도급 노조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아울러 '방송3법'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말한다.
이들 법안의 강행 처리를 결사 반대해 온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민주당이 탄핵 소추 대상으로 지목한 이 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이나 법률에 관해 중대한 위반 행위를 한 게 없다"며 "민심의 탄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판단하실 것이고, 물론 궁극적으로는 탄핵이 의결되면 헌재가 판단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방통위를 기형적으로 구성해 운영한 점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이사와 이사장을 정당한 근거 없이 무더기 해임한 점 △가짜뉴스 근절을 명분 삼아 언론사의 편성권을 침해하려 한 점 등이 법률 위반으로 명백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이 위원장과 함께 탄핵소추 대상에 오른 손준성 대구지검 차장검사는 '고발 사주' 의혹을 받고 있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이정섭 수원지검 차장검사는 위장 전입, 범죄기록 무단 조회, 세금 체납 등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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