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도 장혜영도 '이준석 비판' 한목소리, 공통 키워드는?

金 "혐오 언어로는 지지 못 얻어"…張 "여성혐오 빈성·사과부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이준석 신당'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 중심 인물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과거 혐오 발언 등 우려되는 언동에 대해서는 진보·보수진영을 막론하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9일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나란히 "혐오"라는 열쇳말을 언급하며 이 전 대표를 겨냥해 눈길을 끌었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조정훈 의원이 소속된 '시대전환'과의 흡수합당 의결을 위한 당 전국위원회 인사말에서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오랜 속설처럼 정계개편 등에 관한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다"면서 "혐오와 비난, 분열의 언어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구체적 비판 대상을 거명하지 않고 이렇게만 말했으나, 정치권에서는 과거의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 언행에 이어 최근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대한 인종차별 내지 귀화인 배제 논란 등을 일으킨 이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 대표는 "집안의 대소사를 앞두고는 이모, 고모, 숙모, 삼촌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며 "외가 쪽, 친가 쪽 구분짓기보다 우리 모두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당을 위한 진지한 고민, 나라를 위한 진정성 있는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런가 하면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이날 SNS에 올린 글에서 "이 전 대표는 지금까지 본인이 일삼아온 여성혐오, 장애혐오 정치에 대한 반성과 사과부터 하기 바란다"고 그를 정면 비판했다.

장 의원은 "이 전 대표가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본인 신당을 언급하며 '노회찬에 가까운 아젠다를 넓게 가져갈 것'이라고 했지만, 정작 그게 뭔지는 잘 모르는 듯하다"며 "성별 갈라치고, 장애와 비장애를 갈라치고, 이제는 노회찬 의원의 정치까지 갈라치려 드는 그 모습은 조금도 노회찬 의원의 정치와 닮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장 의원의 이같은 비판은 이날 오전 이 전 대표가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당의 스펙트럼과 관련해 "보수·진보의 순수성이라는 것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상식적인 사람들이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저는 보수 정치인으로의 정체성을 유지하지만, 예를 들어 노회찬 의원의 정의당 정도와도 당연히 대화할 수 있다"고 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장 의원은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의 △2004년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 대표발의 △2005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최초 발의 및 통과 △2006년 수술 없이 법적 성별 변경을 가능케 한 '성별정정법' 대표발의 △2008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대표 발의 △2016년 성폭력범죄 재판이 끝날 때까지 피해자에 대한 무고 혐의를 수사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성폭력범죄처벌법 개정안 발의 등 여성주의적 의정활동 이력을 언급했다. 노 전 의원은 생전에는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이 되면 여성 당직자·기자 및 청소노동자들에게 성평등의 의미를 담은 장미 한 송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반면 이 전 대표는 일부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백래시' 바람이 불었던 2021년 이후 꾸준히 안티-페미니즘 정치의 선두에 서왔다. 그는 2021년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다면' 당연히 보정해야 한다. (그러나) 일각의 문제제기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면서 전혀 공감이 안 됐다. 해당 책 작가는 자신이 걷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는데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 주장했다.

"85년생 여성이 변호사가 되는 데 있어서 어떤 제도적 불평등과 차별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보증 못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여성혐오·성착취 범죄 문제에 대해 "개별 범죄를 끌어들여서 특정 범죄의 주체가 남자니까 남성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억압·혐오하거나 차별한다는 주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지난 대선 당시 성범죄 엄벌주의를 주장한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와 페미니스트 정치인 신지예 씨가 윤석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게 되자 이를 집요하게 반대해 결국 무산시켰다.

최근에도 불과 전날 인요한 당 혁신위원장이 라디오에 나와 "OECD 국가(중)에서는 (한국이) 여성 지도자가 형편없이 낮다. 그거 올라가야 된다", "우리 똑똑한 여성들, 우리 어머님들 때문에 이 나라가 발전했다. 남자들이 발전시킨 나라가 아니다"라고 하자 바로 SNS에 글을 올려 "당이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젠더 담론'을 제발 냉탕 온탕으로 가져가지 않아야 한다. 일관된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 2021년 12월 당무거부 사태 와중에도 김병준 당시 상임선대위원장이 "나는 딸만 둘 가진 페미니스트"라고 하자 곧바로 방송에 출연해 이를 반박한 일을 상기시킨다.

김 대표와 장 의원이 모두 '혐오'라는 키워드로 이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은, 최근 이 전 대표가 신당론 등을 띄우며 정치권 안팎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음에도 그의 꾸준한 반여성주의 언동이 시민사회 일각의 심각한 우려를 사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이 둘이 현재 이 전 대표와 맞닿아 있는 정치적 맥락도 주목을 끈다.

김 대표는 현재 이 전 대표와 같은 국민의힘 소속이며, 인요한 당 혁신위원장은 이 전 대표에게 "돌아와서 화합하고 (총선에서) 중책을 맡아야 한다"고 계속 손을 내밀고 있다. 장 의원은 정의당 내 의견그룹 '세 번째 권력'에 속해 있는데, 이 그룹은 향후 이 전 대표와 제3지대 신당을 같이 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세 번째 권력'은 지난 7일 민주당 이상민 의원, 금태섭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장 등과 함께 '금요연석회의'를 결성하고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했고, 이들 금요연석회의 구성원 5자는 이 전 대표와 각각 접촉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요한 위원장이나 조성주 운영위원장 등 국민의힘·세번째권력 내에서 '이 전 대표와 같이 해보자'는 쪽에 선 입장이 있는 반면, 각 정치집단 내에 이에 대한 반대 입장도 여전히 있고, 그 반대 의견에 핵심적인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혐오"라는 얘기다. 이원욱 ·김종민 의원 등 민주당 비명계 의원들도, 민주당 비주류 의원들이 탈당해 신당을 만들더라도 이 전 대표와 정치를 같이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으며 그 이유로 "혐오에 기반한 정치를 한다"(이원욱, 8일 불교방송)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국민의힘의 경우, 윤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사실상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는 등 이 전 대표를 '혐오의 언어'라고 단죄할 자격이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 간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이 전 대표는 이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당의 진로와 관련 "영남 출마도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된다"며 "편한 곳만 찾아다니면 안 되지 않느냐. 신당이 생긴다면 가장 어려운 과제가 기성 정당의 아성을 깨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당연히 영남 출마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내부를 겨냥한 메시지로 풀이됐다.

그는 이날 동대구역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어제 제가 '만약 탈당을 하게 된다면 대구에서 가장 어려운 곳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해서 관심들이 많으신 거 같다"며 "그런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가 있을 때 어렵다는 이유로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대구 어느 지역구냐는 재질문에는 "대구 12개 지역구 다 신당으로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어려운 도전"이라며 "가장 반개혁적인 인물과 승부를 보겠다"고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정의당 장혜영 의원. ⓒ연합뉴스(좌), 프레시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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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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