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진정으로 윤석열 정부가 '민생'을 위한다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윤석열 정부의 사회적 경제 정책 평가: 이기려면 퇴행을 멈추어야 한다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다. 종목마다 몇 년씩 갈고닦은 기량을 겨루며, 메달을 획득해서 국위를 선양하는 태극전사들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낀다. 국민 모두를 하나 되게 하는데 스포츠는 큰 역할을 한다.

어떤 스포츠 경기이든 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지켜야 하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이 있다.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를 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만들었을 때, 핵심적인 성공요인 중 하나로 히딩크라는 외국인 감독이 아무 편견 없이 실력만으로 대표선수를 선발했다는 점이 강조된 것도 바로 이러한 원칙이 가지는 힘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는 10여 년 이상 우리 사회에서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중요 전략으로 수용되어왔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최근 수 년간 해외에서는 한국 사회적 경제의 빠른 성장 비결에 대해 궁금해 하며 배우려는 노력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에서 사회적 경제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국정 주요과제 중 하나로 삼았던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면 그 체감도가 더욱 크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2017년부터 2021년까지 16개 부처 56개 사업이 사회적 경제를 명시적으로 내걸거나 사회적 경제와 직접 관련 있는 정책으로 파악된 것에 반해(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2022), 윤석열 정부의 정부 정책에서 사회적 경제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이미 대통령 당선 직후 발표한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에서 사회적 경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청와대에 있던 사회적 경제 비서관 직제를 윤석열 대통령실에서는 폐지했고, 기획재정부는 2022년 윤석열 정부출범 이후 장기전략국 내 사회적 경제 업무를 담당하던 사회적 경제과와 협동조합과를 통폐합해서 지속가능경제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부 차원의 사회적 경제 홀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대표적인 예로 범정부적으로 개최하던 사회적 경제 박람회에 대한 정부 태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2018년부터 매년 전국 도시를 순회하며 열리던 사회적 경제 박람회는, 한국의 사회적 경제가 이룬 성취를 확인하고 사회적 경제와 시민들이 만나는 중요한 행사이다. 문재인 정부 말미에 기획, 추진됐던 2022년 제4회 사회적 경제 박람회의 경우 기획재정부를 포함하여 17개 정부부처가 공동으로 주최기관으로 참여한 반면, 2023년 제5회 박람회에서는 참여하는 정부부처가 6개로 크게 줄었다. 더구나 정부를 대표하여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사회적 경제 총괄부처인 기재부 장관 등이 참석했던 예년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관계부처 국장급이 참여하는 수준으로 정부 대표의 '체급'이 낮아져서 행사에 대해 더 이상 정부가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신호를 주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4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파독 근로 60주년 기념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출범 초기부터 사회적 경제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 탓에, 사회적 경제 현장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우려가 컸다. 이런 상황에서 2023년 들어 사회적 경제 현장을 경악시킨 사태가 연이어 일어났다. 정부의 2024년 예산안에서 사회적 경제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됐고, 15년 가까이 이어온 사회적 기업 지원정책의 골간이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한 예로,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기업 관련 예산이 2023년 2,022억 원에서 2024년 786억 원으로 약 60% 삭감되었다. 특히 새로운 창업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됐던 '사회적 기업가 육성예산'은 전년대비 88.7%가 삭감되었다(2023년 411.9억 → 2024년 46.7억).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발굴 및 육성예산'도 2023년 대비 약 60% 삭감하여 편성되었다(2023년 69.6억 → 2024년 26.9억). 압권은 기획재정부와 중소벤처기업부의 예산이다. 기획재정부의 협동조합 활성화 관련 예산은 전년대비 91%가 삭감됐고(2023년 79.6억 → 2024년 7.8억원), 소셜벤처 관련 업무의 주무부처로 적극 나서던 중소벤처기업부는 2024년 '사회적 경제 기업 성장 집중지원 예산'을 100% 삭감했다(2023년 25.7억 → 2024년 0원).

그동안 유지되어오던 사회적 경제 정책의 틀거리를 전면적으로 폐기하는 일도 발생했다. 2024년 9월 1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 (2023~2027)'은, 사회적 기업 지원정책의 핵심인 취약계층 대상 일자리에 대한 인건비와 사회보험료 지원을 2024년부터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사회적 기업의 사업개발비 지원도 2024년부터 폐지한다고 했다.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제정 이후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 유지, 확대되었던 사회적 기업 육성, 지원 정책을 갑자기 폐기한 것이다. 사회적 기업 지원정책이 지난 15년 동안 일자리 창출과 기업지원, 복지전달체계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점을 감안한다면, 갑작스러운 정책 폐기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기업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다. 특히 취약계층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노동통합형 사회적 기업에게 정부지원의 중단은 장애인, 노인 등의 안정적 일자리를 뺏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에 더해 전국 각지에서 오랫동안 사회적 경제 지원 역할을 하고 있는 민간 지원기관들의 역할을 빼앗아 ‘통합성장지원센터'라는 이름으로 중앙에서 후방지원업무를 담당하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게 운영을 맡기는 것은, 사회적 경제 기업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망각한 처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노력(?) 때문에, 지방정부에서도 사회적 경제 부서의 명칭을 바꾸거나 조직과 예산의 축소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서울시가 그렇다. 심지어 일부 정치인들은 사회적 경제에 정치적인 색깔을 근거 없이 덧입히며 사회적 경제와 종사자들을 폄훼한다. 사회적 경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특정 정당의 지지세력인 것처럼 언급하거나, 사회적 경제가 마치 진보세력의 전유물인 것처럼 묘사하며 사회적 경제 정책의 퇴행을 정당화한다.

반면 국제적으로는 사회적 경제가 국가와 지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핵심전략으로 자리 잡는 추세이다. OECD, EU, ILO 등 여러 국제기구가 이미 사회적 경제(사회연대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적 경제 활성화 전략을 수립, 발표한 바 있다. 더 나아가 UN은 2023년 4월에 정기총회에서 '지속가능한 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에 따르면 모든 UN 회원국은 사회연대경제 활성화를 중요한 정책목표로 삼고, 가용한 자원과 인력을 동원해서 각국의 사회연대경제 영역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결의안은 UN 사무총장이 이러한 회원국의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노력을 정리하여 총회에서 보고할 의무도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이미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적 경제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의 약한 고리들을 개선하고,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펼치는 경제활동이다. 기업의 경제활동에 좌우가 있을 수 없고, 경제의 체질을 혁신해서 경제활동의 성과들이 모든 이들에게 돌아가게 하자는데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지 않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도록 지원하는데 정치적 색을 입히지 않듯이, 사회적 경제 기업 육성 또한 정부가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마땅히 할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시절이던 2021년 겨울 서울에서 열린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에서, 윤석열 '후보'는 서면축사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코로나 장기화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전 세계 협동조합인과 전문가들이 대한민국에 모여 역할을 논의한다고 하니 더욱 뜻깊습니다. 앞으로 ‘자주, 자조, 자립'이라는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면서 지속가능한 운영으로 세계의 모든 협동조합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협동조합에 국한된 발언이었지만, 사회적 경제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명쾌한 발언이다. 부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자신의 발언처럼 사회적 경제의 정체성 확립과 지속가능한 운영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윤석열 정부가 민생을 위한다면, 사회적 경제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사회적 경제라는 해외에서도 검증된 우수한 선수를 적극 활용하는 감독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회적 경제는 모든 사람들이 승리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패배한 사람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경제이기 때문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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