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의장, 불과 8명 강경파에 밀려 234년 의회 사상 첫 해임

공화당 강경파 예산안 트집 잡아 해임결의안 민주당 찬성해 가결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불과 8명의 당내 강경파에 밀려 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해임됐다. 후임에 대한 논의 없이 의장석이 공석이 됨에 따라 셧다운(정부 공무원들의 급여 지급 및 일부 업무 중단) 시한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채 의회 마비가 불가피해졌다.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도 표류하게 됐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미 CNN 방송 등을 보면 3일(현지시각) 미 하원 전체 회의에서 실시된 매카시 의장 해임결의안 투표 결과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해임결의안이 가결됐다. 의장 해임안 가결은 1789년 하원 설립 이래 234년 만에 처음이다. 해임안 가결에 따라 지난 1월 취임한 매카시 의장은 9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하원 다수당은 공화당(221석)이 차지하고 있지만 당내 강경파 8명이 민주당(208명 찬성·4명 불참)과 함께 해임 찬성표를 던지며 해임이 확정됐다. 이번 해임결의안을 낸 쪽도 공화당 강경파 맷 게이츠 의원이다. 공화당 의원 대다수(210명 반대·3명 불참)가 해임에 반대한 가운데 소수 강경파에 결정권이 넘어간 꼴이다.

전날 게이츠 의원은 매카시 의장이 셧다운을 피하고자 지난달 30일 단행한 임시예산안 처리에 반발해 의장 해임결의안을 제출했다. 미 의회는 회계연도가 시작하는 10월1일까지 연방정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지만 공화당 강경파의 예산 대폭 삭감 주장에 막혀 셧다운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지난달 30일 매카시 의장이 제안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제외하고 11월 중순까지 연방 정부 예산을 동결하는 내용의 45일짜리 임시 예산안이 가결되며 의회는 셧다운을 피한 채 예산을 논의할 시간을 벌었다.

게이츠 의원은 임시 예산안에 공화당 강경파들이 주장해 온 삭감안이 반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카시 의장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이면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매카시 의장 해임을 요구했다. 매카시 의원은 해임안 가결 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관한 백악관과의 이면 합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의회 마비를 피하기 위해 매카시 의장 해임에 반대할 것이라는 기대도 일부 있었지만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날 투표에 앞서 동료들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당 지도부 회의 결과 해임 찬성이 당론으로 정해졌음을 알렸다. 그는 서한에서 "공화당 내분을 종식시키는 것은 공화당원들의 책임"이라고 선을 그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매카시 의장이 5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부채 한도 증액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등 강경파의 눈치를 살피는 일들이 이어지며 민주당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제프리스 원내대표는 매카시 의장이 지난달 증거 없이 바이든 대통령 탄핵 조사를 개시한 점도 지적했다.

민주당이 이번 해임안을 주도한 공화당 강경파를 "마가(MAGA·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표적 선거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줄임말) 극단주의자"로 칭하는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조차 이번 공화당 내분 사태에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왜 공화당원들은 나라를 파괴하는 급진 좌파 민주당원과 싸우지 않고 자기들끼리 싸우는가"라고 비판했다.

매카시 의장은 해임안 가결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해임 도화선이 된 임시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협상을 후회하지 않는다. 정부는 타협점을 찾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의장직에 다시 출마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그는 게이츠 의원이 해임안을 제출한 것은 "개인적인 일"이며 "예산안에 관한 것이 아니"고 단지 "여러분(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후임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없이 의장석이 돌연 공석이 되며 의회 마비가 불가피해졌다. 공화당 패트릭 맥헨리 금융위원장이 임시 하원의장에 지명됐지만 권한이 휴회 및 새 의장 인준 등으로 제한돼 사실상 하원의 모든 정상 업무가 중단된다.

공화당 내에서 공개 출마 선언이 아직 나오지 않은 가운데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대표, 톰 에머 원내총무 등이 차기 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앞서 지난 1월 매카시 의장도 15차례 투표 끝에 강경파와 타협해 어렵게 의장직을 거머쥔 것을 고려하면 공백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하원 소수당인 민주당에서 의장이 배출될 가능성은 낮다. 의장 선출 투표는 다음주에 이뤄질 예정이다.

다만 이번 사태로 공화당 의원들이 강경파에 "진저리"를 냄에 따라 게이츠 의원 등 강경파가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이 메이츠 의원을 당에서 내보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화당 돈 베이컨 의원은 3일 기자들에게 "그(게이츠 의원)는 공화당에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화당 저명인사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도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게이츠 의원이 "보수 운동을 파괴하고 있다"며 "공화당은 맷 게이츠를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원이 언제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가늠할 수 없는 가운데 11월 중순 셧다운 시한은 다가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예산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국가가 직면한 긴급한 문제들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하원이 빨리 새 의장을 선출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각) 해임결의안이 가결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 하원은 이날 매카시 하원의장 해임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가결 처리했다. 해임결의안 가결은 미 하원 역사상 처음이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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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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