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부동산 정책 입안자 "민간임대사업자등록제는 실패했다"

[프레시안 books]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새 책에서 文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 원인 진단

문재인 정부 초기 부동산 정책 얼개를 잡았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이 전 정부 당시 취한 민간임대사업자등록제가 실패했다며 그 책임감을 토로했다. 직접 집필한 신간 <부동산과 정치>(오월의봄)에서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을 짚으며 과거의 공과를 진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관계자가 직접 당시 정책에 관한 입장을 낸 것은 처음이다. 정권 교체 핵심 원인이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급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론의 관심이 클 것으로 보인다.

민간임대사업자등록제는 제도 실행 당시 특히 진보진영으로부터 날선 비판을 받은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부동산 정책의 하나다. 사업자를 양성화해 임대차계약의 안정성을 높이는 등 시장 관리 능력을 키우고 적법한 과세를 실시한다는 취지로 제도가 시행됐으나, 시행 초기 등록을 독려하기 위해 면세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이 제도가 갭투기를 부추겼다는 지적이 많았다. 결국 "투기업자에게 꽃길을 열어준 정책"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김 전 실장은 이에 관해 책에서 당시 제기된 비판을 짚는 한편 관련 책임감을 토로했다.

"문재인 정부가 "170만 호에 이르는 다주택자 소유의 주택에 세금을 한 푼도 부과하지 않음으로써, 투기 이익을 보장했다. 이 주택들이 의무 가입 기간 동안 시장에 나오지 않음으로써 집값을 폭등시켰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준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포함해 여러 사람이 이 문제를 지적했다. (...)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만 회수하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181p.)

"결국 임대사업자제도의 '선한 의도', 혹은 '순진한 의도'는 실패했다. 특히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파트를 임대등록 대상에 계속 포함했던 것은 비록 공시가격 6억 원 이하라는 조건은 있었지만, 공시가격이 매매가가 오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문제가 많았다. 무엇보다 갭투자가 성행하는 상황에서 과다한 이익을 보장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 이 제도를 앞장서 추진했던 본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 아무리 방향이 옳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시장이 과열될 때는 확대 시행해서는 안 될 정책이었다. (187p.)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가해진 비판 일부는 잘못되었다고 김 전 실장은 적극 반박했다. 다만 공급 확대 시기에 문제가 있었다고 김 전 실장은 밝혔다.

우선 보수 언론이 특히 강조하는 공급 부족론에 관해 김 전 실장은 비판적 입장을 내놨다. 특히 공급부족론은 문재인 정부 초기~중기에 보수 진영으로부터 가해진 공세의 핵심이다. 집을 더 지어 수요에 맞춰야 집값이 안정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같은 압력 하에 3기 신도시 정책이 나왔다.

"노태우 정부와 노무현 정부 기간, 그리고 2015년부터 물량이 많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모두 집값이 많이 오르던 시기다. 30년 평균을 내보면 연간 53만 호 수준인데, 문재인 정부 기간은 약 54만 호에 달한다. 수도권만 놓고 보면 30년 평균 26만 호 정도인데 비해 문재인 정부 기간엔 28만 호를 공급했다." (115p.)

"문재인 정부 기간의 주택 공급량은 이전 정부에 비해 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더 많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는 공공택지도 많이 지정했다. (...) 부동산 정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수급 시차 문제이다. 게다가 과다한 수요를 모두 공급으로, 그것도 빠른 공급으로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 실제 집값 급등의 원인에서 공급이 차지하는 영향은 10~20%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모두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공급 문제를 말하는 이유는, 집값 상승의 원인을 뭔가 다른 곳으로 전가하기 좋기 때문이다. (...) 공급량을 안정적으로 늘리려는 노력과 함께 구매력을 높여주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20~30년 장기저리대출을 확대하고 주거사다리도 복원해야 한다. 집을 갖고자 하는 욕구 자체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생애주기에 따라 예측 가능한 구매 계획이 가능하도록 진정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3기 신도시나 도심 공급 확대 등을 조금 더 일찍, 더 과감하게 추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122~132p.)

보유세 논란에 관해서도 김 전 실장은 관련 입장을 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진보진영은 정부가 부동산 보유세를 조기에 강력히 매기지 않아 집값이 급등하는 단초를 마련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 전 실장은 관련해 일부 대목에서는 민주당을 비판하는 등 적극 반박했다.

"집값이 폭등할 시점에는 이렇게 부동산 세금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친다. (...) 특히 종부세를 포함한 보유세 인상을 미적댔고, 다주택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비난 지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부동산 세금은 그렇게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보유세가 가장 높은 미국·영국이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올라... 집값 잡는 대책이라고 할 수 없으며"(김정호 전 자유기업원 원장), "세금을 올려도 무주택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손재영 건국대 교수)." (134p.)

"문재인 정부가 '미적대며' 강화했다고 비판받은 세금조차 얼마 못가 낮추는 일도 벌어졌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그해 7월 보유세와 양도세를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2021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에는 민심을 반영한다는 명목으로 대폭 낮추게 된다. (...) 거꾸로 세금 낮추기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136p.)

"내가 근무했던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보유세 강화에 신중했다. 최대한 덜 시끄럽게, 이른바 '로우키(low key)'로 공시가격의 점진적 인상을 통해 보유세를 강화하려는 전략이었다. (...) 내가 그만두고 난 뒤인 2019년 하반기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집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솜방망이 세금 때문이라는 비난이 민주당 안에서부터 제기되었다. 그해 12월에는 최고세율을 3%로 올리고 공시가격도 로드맵을 정해 대폭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실상 전 국민의 부동산 세금을 올리겠다고 선포한 셈이었다." (152p.)

"세금이 중요한 부동산 정책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집값에 분노한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의 세금만 계속 높이려는 방식은 포퓰리즘일 뿐이다. 지속 가능성도 없다. 집값이 오르는 원인에 제대로 주목한다면 세금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부차적인 영역이다." (154p.)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프레시안

김 전 실장은 부동산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원인은 시중 유동성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를 거치며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풀린 유동성이 집값을 밀어올리는 핵심 원인이었던 만큼, 당시 정부로서는 한계가 있었다는 논리다. 다만 김 전 실장은 대출 규제 정책을 더 조기에 적극적으로 마련하지 않은 점에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식당, 가게, 직장이 문을 닫는 가운데 실업률은 급증했다. 이 신종 전염병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각국은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돈 풀기에 나선다. 미국은 금리 인하와 함께 다시 대대적인 양적완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4차 양적완화로만 우리 돈으로 8000조 원 이상의 돈이 풀렸다. 전 세계가 경제 파국을 막기 위해 그야말로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끌어다 푼 것이다. (...)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사정이 거꾸로 집값 폭등의 명분이자 자양분이 된 것이다. (...) 결과는 끔찍했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은 물론이고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19 시기에 집값이 이전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다. (...) 우리나라도 똑같은 길을 걸었다." (162~164p.)

"문재인 정부는 초기부터 상황의 급박함을 이해하고 이전 정부들이 대폭 완화해두었던 LTV, DTI를 노무현 정부 시기 수준으로 강화했다. 그러나 2018년 여름부터 다시 집값이 오르자 이전보다 더 강화된 조치를 취했는데,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은 물론이고 15억 원 이상 주택에 대해서도 은행 대출을 금지했다. 여기에 덧붙여 모든 부채에 대한 상환 능력을 따지는 DSR을 도입하기로 했다. (...) 그런 점에서 이런 아쉬움들이 든다. DSR을 원래 계획대로 좀 더 일찍, 좀 더 과감하게 도입했더라면, 전세대출도 인상분만 적용하고, 주택 구입 시에는 즉시 회수하고, 더 적극적으로는 고가주택 구입 시에는 대출을 금지하거나 비율을 대폭 낮췄더라면. 개인사업자 등의 변칙 주택 투기와 매집을 막았더라면. 더 나아가 금융기관의 일일 대출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총량 관리 차원에서 관리했더라면. 욕먹더라도 청년층들의 '영끌'을 더 강하게 억제했더라면. 정치권의 돈줄을 막지 말란느 압박에 더 강하게 대처했더라면. 금융기관의 안전보다 가계의 안전과 집값 안정에 좀 더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171~176p.)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집권기 "집값이 너무 올랐다"는 점을 변명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 급등은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며 김 전 실장은 실패를 인정했다. 특히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에 집값 폭등과 관련해 네 가지 잘못한 점이 있다고 밝혔다.

네 가지 문제는 △부동산 대출을 더 강하게 억제했어야 했고 △공급 불안 심리를 조기에 진정시키지 못했고 △부동산 규제 신뢰를 잃었으며 △정책 리더십이 흔들렸다는 점이라고 김 전 실장은 토로했다.

앞선 내용을 정리하면,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취한 정책의 방향성은 대체로 옳았으나 정책 도입 시기나 절차에서 잘못이 발생해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 근간이 흔들렸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련해 김 전 실장은 책을 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관해 "총체적 실패라고 하면서도 실패의 원인이나 대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며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왜 좌절했는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은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모두에게 비난을 받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먼저 말문을 열 필요가 있다"고 책을 낸 의의를 밝혔다.

▲<부동산과 정치>(김수현 지음)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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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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