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캐나다·인도 갈등 '뒷짐' 논란에 "이간질 말라"

인도 중시해 동맹국 적극 지원 않는다는 의혹 해명 수순…인도, 캐나다인 비자 발급 중단

미국 등 서방이 시크교도 살해 관련 캐나다와 인도 갈등에서 인도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의혹을 해명하려 나서는 분위기다. 인도가 캐나다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등 양국 관계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21일(현지시각)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6월 캐나다 시민인 시크교도 분리주의 운동 지도자 하디프 싱 니자르 살해 배후에 인도 정부가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캐나다 총리의 공개적 의혹 제기를 듣자마자 우리는 공개적으로 이 사안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와 더불어 법 집행 절차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답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캐나다 정부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조사 수행 노력을 지지하며 긴밀히 협의하고 있으며 인도 정부와도 접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사안에 대해 미국과 캐나다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일부 언론의 노력을 봤다"며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분열이 있다는 발상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도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서방 지도자들이 이달 초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났을 때 이 사안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사안에 정통한 세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구성된 정보 동맹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여러 구성원들이 모디 총리에게 니자르 피살 사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이 중 한 명의 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이 인도 쪽에 이 문제를 직접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AP> 통신은 21일 사안에 정통한 한 캐나다 당국자가 니자르 피살 사건 배후로 인도를 지목한 것은 캐나다 주재 인도 외교관 감시 및 파이브 아이즈 동맹국에서 제공된 정보를 기반으로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앞서 18일 트뤼도 총리가 6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서리 지역에서 니자르가 살해당한 것에 인도가 관여했다는 "신뢰할 만한 혐의"가 있다며 "용납할 수 없는 주권 침해"라고 문제를 제기하자 19일 인도가 "터무니없다"고 반발하며 양국의 갈등이 촉발됐다.

이후 양국이 각기 상대국 외교관을 추방하며 골이 깊어졌고 21일 인도 정부가 캐나다인에 대한 신규 비자 발급을 돌연 중단하며 외교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캐나다 쪽은 인도를 배후로 지목한 구체적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영미권 외신들은 이번 주 내내 양국 간 공방이 벌어졌지만 미국을 포함한 파이브 아이즈 동맹국들이 캐나다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다소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봤다. "우려"를 표하고 조사를 촉구할 뿐 트뤼도 총리의 주장에 대한 명백한 동의를 표명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AP>는 현 지정학적 상황에서 "인도는 소외시키기엔 너무나 강력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1위 인구 대국으로 올라선 인도는 미국 및 서방에 중국을 대체할 생산 기지이자 주요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BBC 방송은 서구 외교관들이 인도가 개발도상국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시점에서 국가들이 한 쪽 편을 들기 시작할 경우 결국 선진국 대 개발도상국 간의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도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를 포함해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가운데 서방은 이들의 설득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영국은 인도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영국은 캐나다의 문제 제기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인도와의 협상은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국, 미국, 호주 모두 캐나다와 함께 각 수십 만에 이르는 대규모 시크교 공동체를 보유한 국가들로 국내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탓에 대응에 더욱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캐나다는 인도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크교 인구(약 77만 명)를 보유하고 있다. 시크교 분리주의 운동은 인도 내에선 잦아들었지만 국외로 이주한 공동체 사이에선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인도 쪽은 캐나다가 시크교 분리주의 운동에 대해서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별도 국가 설립을 원했던 시크교도들의 분리주의 운동은 1980년대 들어 활발해졌다. 1984년 6월 시크교도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펀자브주 암리차르에 위치한 시크교 성전인 황금사원을 점거하자 인디라 간디 당시 인도 총리는 전차(탱크)를 동원해 강경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500명 가량이 숨졌다.

4달 뒤 시크교도 경호원 2명이 간디 전 총리를 보복 살해했고 이후 시크교도들은 힌두교도들의 무차별 보복 대상이 돼 적게는 3천 명, 많게는 2만 명 가량이 학살당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크교도들이 국외로 이주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6월18일 서리 지역 시크교 사원 앞에서 두 명의 괴한에 의해 총에 맞아 살해된 니자르는 시크교도가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는 펀자브 출신으로 1990년대 중반 캐나다로 이주해 2015년 캐나다 시민권을 얻었다.

배관공으로 일하던 그는 피격 당시 브리티시컬럼비아에 거주하는 시크교도를 대상으로 인도에서 독립한 별도의 국가 설립에 관한 구속력 없는 투표를 준비 중이었다. 인도 정부는 2020년 니자르를 테러리스트로 선언했지만 편자브 현지에선 니자르의 분리주의 운동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고 매체는 전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왼쪽)가 9월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 참석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뒤를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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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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