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취한 롤스로이스 운전자, 그가 투약한 마약은 어디서 왔나

[프레시안 books]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

마약류에 취한 운전자가 차를 몰다 행인을 치어 중상을 입힌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으로 인해 다시금 국내에 무서운 속도로 번지는 마약의 해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작년 한해 마약류를 투약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러 체포된 이들이 214명에 달했다. 교통 범죄가 많았지만, 이 가운데는 살인 및 살인미수 4건, 강도 및 강간 21건이 포함돼 있다.

한국의 마약 남용 현황을 잠시 확인해 보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8년 89만1434건이던 펜타닐 처방건수가 작년에는 133만7087건으로 증가했다. 증가율이 50.0%에 달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마약류 감정 건수는 2018년 4만3000건에서 작년 8만9000건으로 급증했다. 증가율이 100%를 넘었다. 급속도로 번지는 마약 오남용 피해로 인해 정부는 국과수 내에 마약대응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의학 전문가인 의사라고 마약의 유혹 앞에 강하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5월까지 의료용 마약류를 셀프처방한 이력이 확인된 의사는 1만5505명에 이르렀다. 작년말 기준 전체 활동 의사 11만2121명과 치과의사 2만8015명의 11.0%에 달하는 숫자다.

가장 끔찍한 통계는 여성가족부가 지난 6월 23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실려 있다. 전국 초중고교생 청소년 1만71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펜타닐 패치를 한 번 이상 사용한 청소년 비중이 무려 10.4%에 달했다. 청소년 10명 중 한 명 꼴로 현재 알려진 가장 위험한 마약인 펜타닐을 사용한 셈이다. 이는 현재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니코틴(담배)의 청소년 경험률 4.6%(2020년)의 두 배가 넘고, 음주(알코올) 경험률 11.6%와 비슷한 수준이다. 법무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제 '마약 팬데믹 시대'다. 인류는 그간 경험상 마약을 뿌리뽑기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전 예방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 마약의 해로움을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 마약이 아무리 위험하다 한들, 젊은 혈기의 청소년과 청년은 위험과 금지된 것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중독된다. 중독된 이들을 단순 처벌하는데 그치지 않고 제대로 치료하는 데도 국가의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은 당연히도 의료 전문가가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양성관 지음, 히포크라테스)가 딱 그 책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의사가 한국어로 쓴 최초의 마약 해설서다.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양성관 지음) ⓒ히포크라테스

한국의 밤거리 곳곳은 이미 마약류를 향해 열린 관문이다. 오늘밤에도 전국 각지의 대형 클럽에서 엑스터시(환각제)와 마리화나,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이 거래된다. 텔레그램으로 누구나 쉽게 마약 거래자와 연결된다. 전자화폐로 마약을 구입한 이들은 '던지기'(주택가, 공원 등 외진 곳에 마약을 은닉한 후 이를 구매자가 찾아가는 거래 방식)로 마약을 손에 넣는다.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라던 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세계 곳곳의 마약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온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 국경지대의 이른바 '황금 초승달지대'와 태국-미얀마-라오스 국경지대의 '황금 삼각지대'에서 생산된 아편이 헤로인으로 정제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소비처로 흘러 들어간다.

콜롬비아에서 재배된 코카 잎은 '월스트리트의 마약'으로 잘 알려진 코카인으로 제조돼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는 코카인을 다룬 콜롬비아 카르텔과 멕시코 카르텔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했다.

한국과 인접한 북한은 아예 국가 차원에서 메스암페타민을 생산한다. 세계적 불량국가인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 바로 이 '빙두'(얼음과자, 메스암페타민을 가리키는 은어)다. 북한이 생산한 최고급 메스암페타민은 당연히 한국으로도 들어온다. 의료시설이 붕괴한 북한 여러 가정에서는 상비약으로 아편을 기른다. 북한 사람 상당수가 아편과 메스암페타민을 오남용할 것으로 추정된다.

시대에 따라 마약은 유행을 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이 메스암페타민을 개발해 이를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강력한 각성 작용을 하는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한 병사들은 피로와 공포를 잊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일제가 전쟁 말기 최후의 발버둥으로 채택한 자살특공대 작전인 카미카제(かみかぜ , 신의 바람)에 투입된 항공기 조종사들도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했다. 현재 유통되는 메스암페타민은 이 당시 제조된 약의 100배가 넘는 효과를 보인다. 그만큼 인체를 빨리 망가뜨린다. 도파민을 과다 분비하게 하는 이 약의 특성상 마치 오버클럭을 자주한 CPU가 망가지듯, 인간 뇌도 망가진다.

메스암페타민은 쉽게 제조 가능하다. 감기약의 일종인 슈도에페드린을 변형하면 에페드린이 되고, 여기서 몇 단계 더 거치면 메스암페타민이 나온다. 미드 <브레이킹 배드>가 다룬 약물이 바로 이 약이다.

종전 후 일제가 물러난 한국에 메스암페타민이 남았다. 이 약을 개발한 일본 다이닛폰제약이 '노동을 사랑한다'는 그리스어 '필로포누스(Philoponus)'에서 어원을 따 상표명으로 '필로폰'을 정했고, 이는 이후 한국에서 '히로뽕'이란 단어로 변형됐다.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약사범이 마리화나 흡연자인데 반해, 유독 한국에서는 메스암페타민 사범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경이다.

1960년대 히피 무브먼트 시대를 상징한 마약은 LSD와 마리화나, 그리고 헤로인이다. LSD와 마리화나는 당시 미군은 물론, '플라워 무브먼트'를 이끈 영미권 청년층에서도 대중적으로 유통됐다. 이 당시 유행한 전위적 음악스타일인 사이키델릭은 LSD와 떼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The Beatles) 멤버들은 미국을 방문해 역시 전설적 뮤지션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Bob Dylan)으로부터 LSD를 배웠다. 이후 비틀스가 발표한 여러 곡이 마약을 다룬 곡으로 확실시됐다.

헤로인은 펜타닐 이전까지 가장 위험한 마약으로 분류됐다. 전설적인 록 밴드 니르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보컬이었던 레인 스테일리 등 유명인들이 헤로인, 헤로인과 코카인을 섞은 스피드볼 등에 중독돼 사망했다. 펜타닐과 마찬가지로 진정계 역할을 하는 마약인 헤로인은 끊을 때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금단증상을 보인다. 헤로인 중독자는 이 증상을 없애기 위해 다시금 마약을 찾는다. 처음에는 마약의 효과에 취하려던 목적이 어느새 고통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변형된다.

코카인은 위험성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유명인과 부자들에게서 유행했다. 19세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들 -지그문트 프로이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토머스 에디슨, 교황 레오 13세 등-이 코카의 각성 효과를 즐겼다. 코카인의 위험성이 알려진 후 코카콜라는 코카 성분을 제품에서 제거했다. 1970년대 이후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이 본격적으로 세를 불리면서 코카인은 더 질 낮은 크랙으로 만들어져 미국 전역에 확산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골칫거리인 마약은 바로 펜타닐이다. 미국 전역에서 이른바 '펜타닐 좀비'들이 급증하고 있다. 미국 20대 사망률 1위가 바로 총기사고도, 교통사고도 아닌 펜타닐이다.

지금도 새로운 마약이 계속 제조되고 있다. 더 강력한 중독성과 의존성과 금단현상을 가진 채. 아편성 진통제 니타젠(nitazene)이 펜타닐보다 10배 더 위험한 마약임이 알려졌다. 생활용품점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먼지제거 스프레이가 국내에서 대체 마약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비단 이 약물들뿐만이 아니다. 프로포폴 주사가 논란을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졸피뎀과 같은 수면제도 강력한 의존성과 내성을 지닌 위험 약물이다. 이른바 '몸짱'을 꿈꾸는 청년들이 오늘날에도 몸을 망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제를 남용한다. 이 모든 현상이 개인과 사회를 망가뜨린다.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는 마약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한편 마약 치료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저자의 임상 경험을 통해 소개하는 사례는 생생한 경고 효과가 된다. 대중교양서로 더 알려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다만 책을 덮으며 몇 가지 의문점도 든다. 책에서도 그래프로 제시됐듯, 그리고 이미 여러 의학적 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정리됐듯,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약물인 알코올(다운 효과)과 니코틴(각성 효과)은 의존성과 독성 면에서 마리화나, GHB, 엑스터시, LSD보다 더 위험한 약물이다. 한국은 유달리 알코올에 관대한 나라다. 밤이 되면 술 구입도 제재하고 공공장소에서 음주도 제재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알코올에 취해 문제를 일으킨 범죄자를 오히려 정상참작해준다.

반면 실질적으로 술과 담배보다 중독성과 의존성 모두 약한 것으로 알려진 마리화나에는 유독 강력한 처벌 잣대를 가진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서서히 마리화나 비범죄화 길에 들어서고 있다. 저자는 마리화나가 다른 마약으로 들어가는 입구임을 강조하고 있다. 태국 등 오락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나라에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실증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실제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여러 나라에서 환각 성분인 THC를 인위적으로 크게 끌어올린 마리화나가 유행하는 등 부작용이 가시화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강력히 단속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같은 논리라면 술과 담배도 마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마리화나와 술담배의 차이는 불법이냐 합법이냐일 뿐인 듯한데, 불법으로 마리화나를 거래하던 사람이 불법으로 다른 약물에 손을 대는 현실과 마리화나를 합법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이 불법적인 마약에 손을 댈 가능성은 구분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울러 또 하나 꼭 짚어야 할 사안이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마약 하는 마음'을 품게 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사회에 있지 않을까. 저자가 책에서 강조해 지적한 사안 중 하나는 마약 남용자의 대부분이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사회 상류층이 아닌, 저소득층이라는 점이다. 사회가 사람들에게 절망을 준다면, 절망에 빠진 사람이 현실을 잊으려 더 마약에 가까이 가지 않을까. 저소득층일수록 술과 담배를 더 애용한다는 실증 사례가 이미 우리 손에 있다.

인류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줄곧 패배해 왔다. 어쩌면 모두가 전쟁에 이길 필승법을 알고 있지만, 애써 눈을 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 마약을 하지 않아도 괴롭지 않을 현실을 만든다면, 어쩌면 마약 남용으로 인한 피해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마약을 공격하는 한편으로 중요한 건, 마약이 자라나는 썩은 토양을 기름진 땅으로 일궈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약 사용과 중독을 다룬 &lt;Rush Minute&gt;. 영국 브리스틀의 트립합 그룹 Massive Attack의 2010년 발매작 [Heligoland]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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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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