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아 불출마 선언한 롬니 "트럼프·바이든도 물러나길"

"다음 세대 지도자 필요" 상원 재선 불출마 선언…미 정계서 고령 정치인 직무능력 연일 도마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조 바이든(80)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정계에서 연일 고령 관련 구설이 터지는 가운데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76) 미 상원의원이 다음 세대에 자리를 양보할 때라며 정계 은퇴를 예고해 이목을 끈다.

13일(현지시각) 롬니 의원은 소셜미디어(SNS) 및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상원 재선 계획과 관련해 지역구 유타 주민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를 게시해 2024년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영상에서 "다음 임기가 끝나면 나는 80대 중반이 된다. 솔직히 다음 세대 지도자가 필요한 때다. 그들이 향후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 갈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들"이라고 불출마 선언 이유를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롬니 의원이 이후 의사당에서 기자들에게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둘 다 물러난다면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조지 롬니 전 미시간 주지사를 아버지로 둔 롬니 의원은 1994년 정계에 입문해 2003년부터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냈고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2018년 유타주 연방상원의원으로 당선돼 임기를 수행 중이다. 재선에 도전하진 않지만 2025년 1월로 예정된 상원의원 임기는 마칠 예정이다.

전통적 보수를 표방하는 롬니 의원은 당내 대표적 도널드 트럼프(77) 전 대통령 저격수다. 그는 2020년 트럼프가 바이든 및 그의 아들을 조사하라고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과 관련한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안 상원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권력남용 혐의를 유죄로 보고 찬성표를 던졌다. 이어 2021년 1월6일 미 의사당 폭동이 일어난지 몇 주 뒤에 열린 두 번째 탄핵 표결에서도 다른 6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함께 트럼프 탄핵에 찬성했다.

불출마 공식 발표 전 가진 <워싱턴포스트>(WP)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롬니 의원은 현재의 공화당이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던 2012년의 공화당과 매우 달라졌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닌 다른 이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을 돕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줄임말) 세계 일원들"은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다수는 아마도 민주당에 표를 줄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고령을 이유로 한 롬니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이 '너무 나이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터라 더 주목을 받았다. 이달 초 공개된 <월스트리트저널>(WSJ) 여론조사에선 유권자 73%가 바이든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기에 너무 늙었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거듭된 말 실수 탓에 나이 및 건강 우려가 더욱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의 세계적 관광지 그랜드캐니언을 "세계 9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잘못 말한 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라크전에도 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라크전으로 바꿔 말했다. 지난 4월 연설에선 한국(South Korea·사우스 코리아)을 "남미(South America·사우스 아메리카)"로 잘못 언급해 정정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보다 세 살 어릴 뿐이지만 상대적으로 연령이 덜 조명되는 편이다. <월스트리트저널> 조사에서 47%의 유권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음 대선에 출마하기에 너무 나이 들었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이미지가 워낙 강한 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전·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 기소되며 법적 문제에 끊임 없이 직면한 탓에 연령보다 다른 영역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공개된 <AP> 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 공동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을 생각할 '늙었다'(26%)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렸고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선 '부패한, 범죄적'(15%), '거짓말쟁이, 신뢰할 수 없는'(8%) 등의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렸다. 같은 조사에서 24%만이 바이든 대통령의 차기 대선 출마를 원한다고 답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마를 원하는 비율도 30%에 그쳤다.

차기 대선 후보들 외에도 미국 정계에선 고령 관련 구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치 매코널(81)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3월 넘어져 뇌진탕을 겪은 뒤 4월 복귀했지만 지난 7~8월 두 차례에 걸쳐 기자들과의 소통 도중 20~30초 가량 말을 멈추고 그대로 얼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여 고령 탓에 회복이 완전하지 않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올해 대상포진을 겪은 민주당 소속 다이앤 파인스타인(90) 상원의원도 지난 7월 청문회에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건강 상태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고령 정치인의 직무수행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표출되고 있지만 미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83) 하원의원은 지난주 내년 총선에 재출마할 뜻을 밝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롬니 의원은 매코널 원내대표의 경우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내가 상원 다수당 지도자였다면 나도 다른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며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롬니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공화당이 트럼프 지지자 일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운데 정통 보수 의원들이 밀려나는 흐름 중 가장 최근의 것이다. 2021년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공화당 상원의원 중 리처드 버, 패트릭 투미 등이 은퇴 의사를 밝혔고 1·6 폭동 진상조사 청문회를 맡았던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은 지난해 중간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에서 패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롬니 의원의 은퇴 예고로 "남은 것은 진정 (트럼프 외의) 다른 길을 제시할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결여된 정당"이라고 꼬집었다.

▲ 밋 롬니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13일(현지시각) 상원 불출마 선언을 한 뒤 워싱턴DC에 있는 자신의 의원실에서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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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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