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없어 생존자 죽어가도, 국제 요청 망설이는 모로코, 대체 왜?

각국 도움 약속에도 스페인 등 4개국에만 요청…지진 당시 국왕 프랑스 체류에 18시간 만에 첫 성명 등 늦은 대응도 도마

지난 8일(현지시각) 발생한 모로코 강진 실종자 수색의 '골든타임'이 끝나가는 가운데 모로코 정부가 국제 사회에 지원을 요청하는 데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산간 지역을 비롯한 많은 마을에 구조의 손길이 닿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10일 <로이터> 통신,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모로코 국영 방송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가 지진 구호를 제공한 스페인, 카타르, 영국, 아랍에미리트(UAE)에 감사를 표했다고 밝혔다.

이날 스페인군은 실종자 수색 및 구조를 위해 파견한 56명의 군인과 4마리의 수색견이 모로코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구조 인원 30명과 4마리의 개로 구성된 추가 구조팀도 모로코로 향했다.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교장관은 모로코로부터 정식 도움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영국도 이날 모로코에 수색 및 구조 전문가 60명, 의료팀 2명, 수색견 4마리를 배치했다. 튀니지도 50명의 구조대원, 수색견, 첨단 열감지 장비 및 무인기(드론), 야전 병원 등을 지원했고 카타르도 구조 및 의료 인력을 파견했다.

이들 국가 외에도 프랑스,미국, 튀르키예(터키), 대만 등 세계 각국이 모로코 쪽이 요청한다면 즉시 지원팀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0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 뉴델리에서 "프랑스는 모로코에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라며 "지원을 요청하는 즉시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모로코는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다. 프랑스어가 널리 사용되고 많은 모로코인들이 프랑스로 이주하기도 했다.

지난 2월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는 9일 재난위기관리청(AFAD), 튀르키예 적신월사 및 비정부기구(NGO) 등이 국제 지원을 요청할 경우 파견할 265명의 지원 인력을 꾸렸다. 같은 날 대만도 외교부의 지시가 떨어질 경우 즉시 모로코로 이동할 수 있는 120명의 구조대원이 대기 중이라고 밝혔고 이스라엘도 모로코 적신월사와 접촉해 지원 제공 의사를 표명했다. 상황 파악을 위한 미국의 소규모 재난 전문가팀도 10일 모로코 현지에 도착했다.

서사하라 영토 문제 등으로 2021년 모로코와 단교하고 영공을 폐쇄한 알제리까지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영공을 개방했다. 쿠웨이트, 오만 등도 지원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모로코 쪽은 감사를 표한 4개국 외 다른 국가의 공개 구호 제안을 수락하지 않으며 국제 지원 요청을 꺼리는 분위기다. 인명 구조의 골든 타임으로 여겨지는 재해 발생 뒤 72시간이 임박하며 현지인들이 정부가 국제 구조대를 불러 들이는 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이 전했다.

국제 인도주의 단체 기아대책행동에서 활동했던 파리 소르본대 지리학 교수 실비 브루넬은 프랑스 매체 <르피가로>에 "아프리카 지역의 강자를 꿈꾸고 스스로를 유럽과의 교섭 담당자로 보고 있는 신흥 국가로서, 모로코 정부는 스스로 수색과 구조를 주도할 수 있는 주권 국가임을 드러내고자 한다"며 "전세계의 자선을 바라는 가난한 국가처럼 행동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국 구호대를 요청하더라도 거리 탓에 생존자가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24~48시간 이내에 도착하기 어려운 현실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모로코 내무부는 4개국에만 지원을 요청한 데 대해 "이러한 상황에서 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지진에 대한 국가의 공식 반응이 느리고 불투명한 데 대한 "사회적 분노"가 증폭되고 있다고 짚었다. 모하메드 6세는 지진 발생 뒤 18시간이 지나서야 첫 공개 성명을 냈다.

상황 전달도 지체됐다. 모로코 정부는 9일 저녁 지진 사망자가 2000명이 넘는다고 발표한 뒤 거의 만 하루 가까이 침묵하다 10일 오후에야 국영 방송을 통해 사망자 수가 최소 2122명으로 늘었고 2421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발견된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인 1351명이 진앙이 위치한 알하우즈주에서 나왔고 인근 타루다트주에서 492명, 치차우아주에서 201명이 숨졌다. 고대 유적지인 마라케시에서도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 언론 <르몽드>가 모하메드 6세가 지진 발생 당일 모로코가 아닌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고 보도한 가운데 일부에선 입헌군주제를 표방하지만 여전히 왕실에 권력이 집중된 구조가 의사 결정을 늦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북아프리카 전문가인 스탠포드대 역사학 연구원 사미아 에라주키는 <가디언>에 모로코에선 "궁극적으로 왕궁의 승인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권의주의적 구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로코 통치가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모하메드 6세는 지난해 프랑스, 가봉 등 국외에 200일 가량 체류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외신은 이런 상황에서 재난 지역 주민들이 정부 구조대 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지진 이틀 뒤인 10일에도 "아틀라스 산맥 인근 마을들은 물론이고 마라케시에서 한 두 시간 떨어진 마을들에서조차 공식 지원을 거의 받고 있지 못했다"며 "구급차는 드물게 볼 수 있었고 잔해에서 끌어 올려진 대부분의 부상자들은 개인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통해 마라케시 병원으로 이동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10일 자사 기자들이 찾은 아틀라스 산맥 고지대 두아르 투니르 마을 등에 여전히 구조 인력과 지원 물자가 전혀 도착하지 않은 상태로 주민들이 맨손, 삽, 곡괭이 등으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마을 주민들은 어디에도 구급차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9일 어렵게 구조된 몇몇 생존자들이 마라케시 병원으로 갈 교통수단을 찾지 못해 사망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주민들이 주검이 심하게 훼손돼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망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라며 이슬람 장례의 필수 의식인 주검을 씻기는 일을 생략하고 구덩이도 파지 않은 채 그저 빨리 흙을 덮어 묻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지진이 발생한지 40시간이 지난 10일 오후에도 아틀라스 산맥 기슭에 위치한 아미즈미즈 마을에선 건물이 여전히 무너지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생존자들은 텐트를 치고 생활 중이다.

매체는 이 마을에는 이제 조금씩 구호물품이 도착하기 시작했지만 구조대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고 짚었다. 진앙 근처에 위치해 큰 피해를 입은 산간 마을들의 진입로가 매우 좁고 헬기 착륙이 어려운 점도 구조대 도착이 지연되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정부가 부재한 상황에서 주민들이 서로를 돌보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를 보면 피해를 덜 입은 주민들은 창고를 열어 집이 완전히 파괴된 이웃들과 식량과 가구를 나눴다. 도이체벨레는 헌혈 센터에서 더 이상 헌혈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지원자가 넘쳐 났다고 덧붙였다.

지난 8일 오후 11시께 모로코 마라케시 남서쪽 75km 지점 아틀라스 산맥 지역에서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 깊이가 26km에 불과하고 이 지역 가옥들이 지진에 취약한 진흙 벽돌을 사용해 지어져 피해 규모가 더욱 커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3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이번 지진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8일(현지시각) 규모 6.8 강진이 덮친 모로코 알하우즈주 물라이 브라힘 마을에서 10일 사람들이 희생자 관을 옮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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