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봉, 쿠데타로 56년 父子 집권 몰아냈지만, 민주주의 위기 여전

가봉인들, 쿠데타 환영하면서도 권력 민간 이양 가능성엔 의문

지난달 니제르 쿠데타에 이어 가봉에서 30일(현지시각) 쿠데타가 일며 서아프리카 지역이 3년 새 8번째 쿠데타에 직면하게 됐다. 가봉의 경우 군부가 56년 간 대를 이어 집권한 대통령을 축출해 앞선 쿠데타들과 배경이 다르지만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옅어지고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AP> 통신을 보면 30일(현지시각) 오전 가봉 국영 방송을 통해 쿠데타를 선언한 가봉 군부는 이날 저녁 과도 상황의 지도자로 브라이스 올리귀 은구마 장군을 내세웠다. 대통령을 지키는 공화국 수비대를 이끌어 온 은구마 장군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가택 연금된 알리 봉고 온딤바 가봉 대통령의 아버지인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 시절 경호실장을 맡기도 했다.

쿠데타 지도부는 국영 방송에서 "과도 지도자는 평온과 평화를 원한다. 우리는 가봉의 평화, 안정, 존엄을 보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날 앞서 군 장교, 공화국 수비대원 등으로 이뤄진 12명의 쿠데타 지도자들은 지난 26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봉고 대통령이 64.27%의 득표율로 3선이 확정됐다는 발표가 난 직후 국영 방송에 출연해 선거 결과를 취소하고 "가봉 국민의 이름으로 현 정권을 종식시켜 평화를 수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봉고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하고 무책임한 통치"가 나라를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후 대통령 주변인들을 공적 자금 횡령 등을 이유로 체포했다고 알렸다.

이번 쿠데타는 2020년 이후 말리, 기니, 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 지역이 직면한 8번째 쿠데타다. 지난달엔 니제르에서 쿠데타가 일며 사하라 이남 경계 지대인 사헬 지역의 이른바 '쿠데타 벨트'가 확장되기도 했다.

다만 가봉의 경우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에 대한 민주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구실 중 하나가 된 사헬 지역과 쿠데타 배경엔 다소 차이가 있다. 가봉은 1967년 이후 지금까지 56년간 봉고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통치해 왔다. 아버지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이 1967년부터 2009년까지 42년간 대통령직을 놓지 않았고 그의 사망 뒤 2009년부턴 아들 알리 봉고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선거 때마다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이번 대선에서도 30%를 득표한 야권 통합 후보 알버트 온도 오사는 선거 부정을 주장했다.

때문에 봉고 가문의 오랜 통치에 염증이 난 국민들이 이번 쿠데타를 지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프랑스 방송 프랑스24는 이날 쿠데타 선언 뒤 수천 명의 가봉인이 거리로 나와 이를 환영했다고 전했다.

수도 리브르빌에 거주하는 한 교사는 방송에 대선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군은 알리 봉고를 당선자로 선언한 퇴출 정부가 조직한 '선거 쿠데타'에 대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가봉 남동부 프랑스빌의 한 주민은 "대통령직에서 봉고의 이름을 다시 보지 않길 바랐다"면서도 군부가 오사에게 바로 권력을 넘기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군이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줄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로이터> 통신은 국제 사회가 일제히 쿠데타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마드 바줌 대통령을 복권 시키라고 명시했던 니제르 쿠데타 때와는 달리 봉고 대통령의 재집권을 촉구하고 있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은 30일 브리핑에서 "유엔 사무총장은 선거 이후 위기를 해결하려는 수단으로 쿠데타 시도를 벌인 것을 단호히 규탄한다. 군사 쿠데타에 대한 강한 반대를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쿠데타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민주적 통치에 대한 가봉 국민의 지지자로 남아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가봉 상황이 "확정된다면 이 지역 전체 불안정을 증가시키는 또 다른 군사 쿠데타"라고 우려했다.

일부 국민들은 쿠데타에서 봉고 정권의 부패를 끝낼 희망을 보고 있지만 <AP>는 "분석가들은 이번 사태가 불안정을 야기할 위험이 있으며 일반 가봉인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보단 지배 엘리트들 사이의 분열과 더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며 선을 그었다.

봉고 가문은 산유국인 가봉에서 자신들의 조력자들과 함께 석유로 인한 부를 독점하고 일반 국민들은 빈곤 속에 내버려 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가봉의 15~24살 젊은층 중 40%는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봉과 사헬 지역과 쿠데타의 배경엔 차이가 있지만 아프리카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옅어지고 다른 나라로 쿠데타가 '전염'될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영향력 면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통신은 이웃 카메룬과 콩고 공화국 또한 장기 집권에 시달리고 있다고 짚었다.

서아프리카를 취재하는 독립 언론인 브람 포스트허머스는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에 "연이은 쿠데타가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적어도 사헬에서 서구식 민주주의 실험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폭력, 빈곤, 경제적 기회 부족 등 사람들이 가진 기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장기간 빈곤이 이어지며 이 지역 주민들이 관련해 오랜 불만을 키우며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인내심과 신뢰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쿠데타 또한 아프리카의 옛 프랑스 식민지에서 일어났다. 도이체벨레는 반프랑스 정서가 만연한 상황에서 프랑스와 친밀한 기존 권력자들에 대한 반감이 니제르,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쿠데타 정권을 안착시키는 데 일부 기여했다고 봤다. 방송은 아프리카 전문가이자 가나에 기반을 둔 비정부기구(NGO) 아프리카자유무역지대(AfCFTA) 정책 네트워크 사무차장인 임마누엘 벤사를 인용해 영어권 아프리카 국가들은 빈곤국임에도 언론과 시민사회가 작동하며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는 반면 이 지역 옛 프랑스 식민지들은 "오랜 기간 많은 일들이 프랑스에 의해 지시되며 시민사회가 성장할 여지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가봉 현지 우리 교민 44명은 안전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중서부 가봉에서 군부가 권력 접수를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30일(현지시각) 수도 리브르빌에서 주민들이 군인들을 향해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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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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