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벌이 능사 아니다? 그럼 법은 왜 '신림 강간살인' 막지 못했나

[이은의 변호사의 예민한 상담소] 엄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들에 부쳐

일상공간에서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영문 모를 해코지를 당한다는 건 한없이 두렵고 불안한 일이다. 물리적인 대항력이 갖춰진 성인 남성도 물론 그렇겠지만 여성이나 노인, 장애인처럼 통상 가해자보다 물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비열하고 잔혹한 범죄들이 연이어 발생했다는 소식은 취약한 이들의 마음을 궁지로 몰아간다.

매일 오가는 출퇴근길이며 산책로, 마트, 미장원, 혹은 집 현관문을 열 때마다, 아니 집 안에서조차 불안을 쉴 수가 없다. 비열하고 잔혹한 가해자들은 그 불안이 성취라 착각하고, 꿈틀거린다. 언론에선 어떻게 하면 피해자들이 조금 덜 다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안심할 수 있겠는지 묻는다. 그 답은 피해자들에게 구할 수 없다. 피해자가 무엇을 하면 비열하고 못된 가해자들로부터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겠나. 비열하고 비뚤어진 욕망을 거세할 수 있는 주체는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다. 그 선두에 필벌이 있다.

'칼로 여럿 쑤셔봐야 사형은 안 당해', '죽든지 말든지... 사람 죽여 봐야 20년만 살면 가석방 돼서 나올 텐데 뭐', '나도 이런 사연이 있어', '심신이 미약해서 그랬다고', '무기징역은 뭐 쉽게 나오나...'

범죄 전후로 가해자의 머릿속에 오갔을 생각들을 생각하니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넘어 사회에 대한 분노가 인다. 이번에 법무부 장관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도입'이란 말을 하기 전까지 상당수의 국민들은 무기징역을 받은 범죄자가 가석방되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유명무실해졌을지언정 사형이 구형된 사건에,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일은 현실의 반영일지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만들어지는 현실은 가석방이 적용되는 사실상의 유기징역이다. 이뿐인가, 어떤 재판부는 강간죄에 2년에서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는 이를 중형이라 표현한다. 그런데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에게도 이것이 중형이라고 여겨질 것인가.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에서 우리 사법부는 살인미수를 강간살인미수로 변경하는 무리수를 두며 가해자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그나마 응분의 대가가 치러졌다는 생각 때문인지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급격히 식어갔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사법기관과 사법부가 가진 문제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애초부터 그 사건은 '강간치상이냐, 강간살인미수냐'를 고민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피해자에 대한 초동수사가 부실했고 검찰은 소극적이었다. 검찰은 '강간의 고의나 실행의 착수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지레 판단하고 가해자를 강간치상죄로 기소하지 못했다. (1심 당시 검찰은 강간 혐의를 제외하고 폭행에 의한 살인미수 혐의만을 적용했다. 검찰은 이후 2심에서 피해자의 청바지에서 피고인의 DNA가 검출됐다며 강간살인미수 혐의를 다시 적용했다. 편집자 주.)

그런데 이것이 검찰의 무능 때문인가? 실은 사법부가 이상하리만치 '강간의 고의나 실행의 착수'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실무자 입장에선 아예 무죄가 나올 것을 걱정해서 생긴 폐해다.

올해 선고받은 다른 피해 사건을 살펴보자. 피해자는 항거불능 상태에서 레깅스가 벗겨졌고, 위기감에 본능적으로 도망치다가 추락해 중상해를 입었다. 그 사건은 강간치상도 아닌 강제추행으로 기소가 되었는데, 이유는 '가해자가 실제 피해자를 따라가지는 않았는데 피해자가 추락해서 다쳤기 때문'이었다.

이런 범죄명의 적용은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이 사건 재판부는 '강간의 고의가 입증되지 않았다'고도 판단했다. 피해자는 호텔 방 안에서 가해자에 의해 레깅스와 속옷이 벗겨졌는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강간의 고의'란 피해자 몸에서 가해자의 DNA가 검출 되거나 가해자가 자백이라도 하지 않으면 입증 자체가 어려운, 이른바 안드로메다의 일에 가깝다.

부산서면돌려차기사건에서 가해자가 폭행치상이나 상해죄 정도를 노리며 강간의 고의를 부정한 것은, 오랜 세월 강간의 고의나 실행의 착수 입증을 ‘좁게’ 해석해온 우리 사법부가 범죄자들에게 심어준 이상한 상식과 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러니 우리가 그 사건을 통해 돌아봐야 했던 것도 사법부의 문제였다. 대체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 따져봐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법원이 가해자에게 강간살인미수 20년을 선고하면서 우리는 그 사건에서 멀어졌다. 그 20년은 그 피해자를 만족시키지도 못했지만, 그와 유사한 사건들에서의 유사한 (양형수위) 적용이나 사건의 예방에도 기여하지 못했다.

그럼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의 변명은 어떤가. 이번 가해자는 강간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대신 살해하려고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너클을 끼고 모르는 여성의 얼굴 등을 가격하였고 그 결과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살인의 고의가 부정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스스로 강간의 고의를 인정했고 실제 피해자를 성폭행했다는 점에서 강간살인의 적용에 별반 다툼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가해자가 왜 쉽게 '강간의 고의'를 인정했는가 하는 것이다. 예상컨대 신림동 둘레길 강간살인 가해자는 '강간을 하려했을 뿐 살인을 하려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법률용어로 보면 '강간살인이 아니라 강간치사'라는 변명으로 귀결된다. 즉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가 강간치사로 의율되는 것이 더 '가볍다'고 인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가해자는 그런 인식을 가지고 더 쉽게 강간살인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강간살인이 강간치사보다 죄질이 더 중한 범죄임은 사실이지만, 실체적 진실이나 양형은 기계적으로 적용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법부와 사법기관에서 (강간치사를 강간살인보다) 기계적으로 경미하게 적용해온 결과, 꽤 많은 사람들 사이엔 이미 '강간치사는 살인죄보다 경미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니 신림동 둘레길 강간살인 가해자의 행태 또한 놀랍지도 않다. 그저 서글프다.

누군가는 엄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은 이미 필벌을 하고 있거나, 이를 넘어 엄벌 비슷한 것이라도 적용하고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현재 한국의 성범죄 성립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여전히 가해자에게 기울어져 있고, 이들에 대한 처벌은 국민 법감정과 상이하다.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최모씨가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관악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은의 변호사의 예민한 상담소'는 '성폭력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은의 변호사가 직접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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