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故채 상병 수사 재검토? 박정훈 대령 압박이 목적"

군인권센터, 해병대수사단 '원안' 혐의자 8명 국수본에 고발

국방부가 '외압' 논란 속에서 고(故)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를 재검토하는 가운데, 군인권센터가 해병대수사단의 수사 '원안'에 명시된 8명의 혐의자들을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이들은 국방부검찰단 요구에 따라 해병대수사단이 이첩한 수사 원안을 국방부에 인계한 경북경찰청장 또한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과 김형남 사무국장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조사본부가 해병대수사단의 수사원안을 재검토하는 것은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박정훈 전 수사단장 압박 목적"이라며 "국방부장관이 사건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위법 명령을 자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당초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8인을 업무상과실치사로 국수본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앞서 해병대수사단 수사단장으로서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박정훈 대령은 지난 2일 사단장 등 8명의 혐의가 적시된 수사자료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범죄사실인지통보)했다가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형사입건됐다.

당시 국방부는 국방부검찰단을 통해 이첩된 수사자료를 즉시 회수했고, 이후 박 대령은 '국방부 수뇌부가 사단장, 여단장 등 지휘부 혐의를 제외하고자 수사결과 조정을 압박했다'는 취지로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더해 자료이첩 직전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안보실이 박 대령에게 수사자료 등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사에 대통령실 등 국방부보다 윗선의 개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관련기사 ☞ 석연치 않은 故 채수근 상병 조사보고서 변경…국방부 '윗선' 개입 의혹 제기)

이 같은 외압 의혹이 불거지자 국방부는 '국방부가 수사자료에서 사단장 혐의를 제외하고자 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단장 등이 아닌 하급 관리관들의 혐의 적시에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국가안보실 등 외부기관 개입에 대해서는 "외교·안보부처의 경우 통상적으로 안보실과 언론 설명자료를 공유하고 있어 '외압 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국방부는 해병대수사단이 맡고 있던 채 상병 사건 수사를 국방부조사본부로 이관, 사건을 전면 재검토한 후 그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다시 이첩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군 소식통 등에 따르면 국방부조사본부는 해병대수사단이 원안에서 적시한 혐의자 8명 중 '사망과 과실 간 직접적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일부 초급간부'를 제외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당초 문제가 된 '사단장 혐의' 대신, 국방부의 해명대로 '초급간부'가 혐의 선상에서 빠지게 되는 셈이다.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임태훈 소장(오른쪽)과 김형남 사무국장(왼쪽)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다만 이날 군인권센터는 국방부의 이 같은 조치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외압 문제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혐의 선상에서 빠지는 주체가 사단장이든 초급간부이든 간에, 애초 국방부장관이 "위법한 명령으로 적법하게 이첩된 8인의 업무상과실치사 사건에 대해 이첩 대상자와 범죄사실을 변조할 것을 지시한 것"이 사안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게 센터 측의 지적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수사는 수사기관이 하는 것이다. 군사경찰이 범죄인지통보(수사자료 이첩)를 하면 경찰이 사건을 수사해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그런데 왜 국방부장관이 그 사이에 끼어들어서 보고를 받고, 범죄 성립 여부를 예단하며 사건 이첩에 개입하는가" 물으며 "장관은 수사 결과를 왜곡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중단하고 사건에서 손을 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임 소장은 애초 '사단장의 혐의를 제외'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였던 국방부 측이 재검토 과정에서 사단장이 아닌 '초급간부들의 혐의를 제외'하는 것으로 갈래를 잡았다는 소식을 두고선 "당초 국방부 수뇌부가 사단장의 혐의를 제외하려 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로 파악되며, 이번 조치는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박정훈 대령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사단장 혐의 적시가 아닌 수색에 동참했던 초급간부들의 혐의 적시에 문제의식이 있었다'는 국방부의 앞선 해명에 힘을 싣는 동시에, '사단장 혐의 제외를 위한 외압설'을 제기한 박 대령을 당위적 측면에서 고립시키기 위한 조처라는 것이다.

임 소장은 이날 기자와의 질의응답에서 "초급간부 등 하급자의 혐의가 사단장의 혐의보다 덜 중대할 순 있지만, 이는 경찰 수사와 재판장에서 양형 수위 등으로 가려야 할 문제다. 수사단 입장에선 (사고현장의) 실무를 진행한 하급자들의 혐의를 아예 제외해야 할 이유가 없다"라며 "이미 적법하게 끝난 수사에 국방부 수뇌부가 개입해 지금 단계에서 혐의자를 빼고 더하는 건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 소장은 "애초 외압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국방부가 (윗선의 개입 등으로) 사단장의 혐의를 빼려고 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로 파악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하면 군인권센터 측은 전현직 해병대 장성급 간부 등의 제보를 통해 △수사단이 수사 원안을 확정했을 당시엔 과실치사 혐의가 확정된 임성근 해병1사단장에 대한 보직심사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며 △이를 인식한 임 사단장은 군 내에서 불만을 표했고 △이후 '사단장 혐의 적시'를 둘러싼 일련의 외압이 시작됐다는 정황을 파악했다.

센터 측은 "지난 2일 경찰 측으로 이첩됐다가 국방부검찰단으로 회수된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결과는 법적으로 그 자체로 종결성을 가진다. 별도의 수사기관인 국방부검찰단, 조사본부 등이 이를 재조사하는 것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덮으려 하는 범죄행위"라며 "국방부의 이 같은 위법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국가수사본부에 고발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이날 고발의 취지를 밝혔다.

▲고(故) 채수근 상병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군 검찰단 출석이 예정됐던 박 전 수사단장은

이날 이들이 고발한 8명은 해병1사단장 임성근 소장을 위시해 7여단장과 대대장 2명, 중대장 1명, 현장안전통제간부 3명으로 구성된다. 센터 측은 지난 2일 해병대수사단으로부터 사건을 이첩 받은 직후 이를 회수하겠다는 국방부검찰단의 요구에 응해 사건을 다시 군 측으로 넘겨준 경북경찰청 또한 고발 대상이라고 밝혔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채 상병 사망 원인이 된 8인의 과실치사 혐의는 2일 오전 10시 40분경 해병대수사단의 '범죄인지통보'로 적법하게 이첩 완료된 것"이라며 "경북경찰청은 범죄인지통보를 접수해놓고도 수사를 개시하지 않았으며, 경북경찰청장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회수) 요구를 받고 부하 직원에게 이러한 인계요청에 응하게끔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지난 14일 관련 사건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제기하면서도 "법령에 따라 정당하게 이첩된 수사자료를, 이첩 주체인 해병대 수사단도 아닌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해 왔다. 이는 명백히 위법적인 상황"이라며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넘겼는데 행정안전부 장관이 개입해 사건자료를 회수해왔다고 생각해보라. 경찰청이 자료를 순순히 넘겨준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대통령령인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7조에 따르면 군검사 또는 군사법경찰관은 범죄 의심 정황을 인지했을 경우 "지체 없이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시행령 규정상 "범죄정황을 인지한 군 경찰의 사건이첩 행위에는 '이첩중단' 지시를 포함한 어떤 개입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게 김 국장의 지적이다.

한편 이날 18일 국방부는 지난 11일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관련 의혹을 발표하며 KBS 생방송 인터뷰에 응한 박정훈 대령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고 징계심사에 돌입했다.

군인권센터는 "(국방부는) 어떻게든 박 대령을 조직에서 고립시킴으로써 ‘집단항명수괴죄’를 적용한 본인들의 무리수를 희석하고자 매일 같이 거짓말을 새로운 거짓말로 갱신하고 있다"라며 "더 이상의 꼼수를 부리지 말고 조속히 사건에서 손을 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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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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