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보다 니 월급이 싸서 시키는 거야"…종이컵만 일회용일까?

[전수경의 MZ 여성 그리고 빈곤] 저항했으나 해방되지 못한 사무실의 엘

과거부터 사회학적으로 '세대론'은 자주 사용된다. 최근에는 MZ세대가 대표적이다.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조직과 자신을 분리하고 ‘워라밸’을 지키는 세대로 규정된다.

그런 의문도 든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걸까. 더 정확히는 자신의 근무조건에 적극 문제제기를 하고, 보장된 휴식시간을 반드시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같은 세대 내에도 부모의 능력과 교육, 성별, 태어난 지역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불평등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어떤 동질성'이 같은 세대라고 치부하며 그들을 MZ로 묶어버린다. 이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자칫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은폐 내지는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만난 10명의 도시 속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세대이나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MZ세대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도시 속 2030 여성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편집자

인스타그램. 모든 반짝이는 것들이 모여 있는 곳, 우리가 행복이라 믿는 것들은 2566×1178 픽셀에 4800만 화소로 담긴다. 빛나고 예쁜 것들 사이에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광고를 올린다. 인스타그램에 광고가 노출되는 시간만큼 지원 신청서가 는다. 지원을 받게 된 여성 청년을 만나러 가면 염색, 탈색한 머리에 드물지 않게 타투도 있다. 외양으로 구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노동, 산재, 빈곤의 얼굴이 따로 있지 않다. 그러나 꼭 없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성심껏 답하는 모습에서, 싹싹하고 긍정적이며 때로는 씩씩하기까지 한 태도에서, 사람을 대하는 숙련성 같은 것을 본다.

엘은 특성화고에서 외국어를 전공했다. 기초수급자 부모 아래 학창시절은 늘 도움의 손길이 있었고, 그 마음을 받아서인지 엘도 남을 돕는 일을 좋아했다.

'학력이 아니라 능력을 보는 사회잖아요.' 졸업 성적이 높았다. 그런데 일은 찾아지지 않았다. '대졸'로 지원자격을 표기하지 않은 구인공고를 찾지 못했다. 엘은 단순 입력 사무직, 마케팅회사, 콜센터를 전전했다. 마케팅은 온라인에 제품사용 후기, 병원이용 후기 같은 것을 올리는 것이었는데 성과가 신통치 않았는지 수습기간이라고 한 석 달을 채우고는 잘렸다. 휴대폰요금을 미납한 신용불량자들에게 전화해 요금을 받아내는 콜센터에서 일한 일 년여의 시간을 엘은, 화장실에 갈 새가 없어서 생리기간에 바지가 젖던 축축하고 불쾌한 느낌으로 기억한다. 헤드셋 너머 거친 말과 욕설이 그 다음이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온 사람들 아니냐?' 회의 때 팀장이 하는 말을 나이든 상담사들과 스무 살 엘이 같이 들었다. 엘이 들을 말은 아니었지만, 엘이 미래가 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콜센터를 나왔다. 그냥 쉬는 게 좀 그래서 전단지 붙이는 알바를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잘 해보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전단지 알바의 효험이었을까. 인터넷 구인사이트에서 학력제한이 없는 외국계 회사의 구인공고를 찾았다. 유럽에 본사가 있는, 국내에 원료와 제품을 판매하는 중견기업이었다. 서류심사와 세 차례의 외국어 프리젠테이션을 통과했다. 콜센터를 나온 건 잘한 결정이었고 운이 좋았다. 영업지원팀 사원 엘의 자리에 듀얼모니터와 노트북이 놓였다. 견적서를 보내고 구매를 권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일이 영업일 텐데, 이 영업을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로 하는 것이 엘의 일이었다. 이메일 결과, 통화 과정은 건건이 엑셀에 입력되어야 하고 문서로 보고되어야 했다.

세 개의 모니터가 동시에 엘의 손을 기다렸다. 하루 50통 정도의 이메일을 발송하고, 기업이나 연구소에 전화를 돌린다. 퇴근은 늦고 휴가는 쓰기 어려운 시간이 쌓이면 다음 순서는 정해져 있다. 허리와 목과 손목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같은 자세로 이메일을 하루 수십 건 보내고 전화 받고, 입력하는데 목, 허리, 골반에 병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정형외과에 들러 엑스레이만 찍고 병원을 나왔다. 허리 통증이 심해 앉아있는 일이 고통이었지만 병원에서 권하는 '도수치료'를 거절했다. 일회 10만 원이 넘어가는 치료비는 감당할 수 없었다. 동전 파스, 네모난 파소, 뿌리는 파스를 샀다. 손목 보호대도 샀다. 키보드도 마우스도 변함없이 제자리에 있었다. 이메일이 줄지 않았고 전화가 줄지 않았다. 100개의 이메일이 와 있던 월요일이었을까. 불안이 시작되었다. 회사에 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루 24시간의 절반을 앉아있으니까 몸이 안 좋아 지는구나. 아픈 원인도 진단이 되고, 자가 처방도 없지 않았지만 어려웠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허리가 펴지고 두 팔을 올려 어깨와 목을 늘려주는, 기지개일 수도 있고 스트레칭일 수도 있는 그 단순한 움직임이 가능하지 않았다. 허락되지 않았다. 일하는 누군가에게 피해가 될까봐 눈치를 봤다. 한 번 일어서서 움직여보려고 시도한 날이 있었다. ‘정신없게 뭐하는 거지?’ 팀장이 제지했다. 스트레칭 시도도 반란이라면 반란이 될 수 있었지만 팀장 역시 조기 진압으로 대응했다.

엘의 직장에서 막내의 연차는 모두 쉬고 남은 날로 정하기로, 누구도 말한 적 없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무실을 지키는 게 막내의 일이니까 엘이 그렇게 했다. 병원 가는 일도 그저 쉬고 싶은 날도 남은 날을 기다렸다. 팀 회식비가 내려오면 메뉴 선정, 투표, 배달, 또는 포장해 오기를 엘이 했다. 커피도 그렇게 했다. 코로나 시기여서 음식점으로 나가는 회식은 없었고 사무실로 음식이 와야 하는 건 당연한데, 어떤 회사의 코로나에는 '막내'들이 더 바빴을 수도 있겠다. 음식이 오면 세팅까지 다 해 놓아야 팀원들이 모였다. 탕비실 과자도 물도 엘이 해 놓아야 떨어지지 않았다. 무릇 막내란 할 일이 없어 보일 때조차 짜장면에 딸려 온 단무지 물이라도 따라야 한다, 고 팀장이 가르쳐 주었다. 사무실 사람들의 머리위로 ‘막내 뭐 하니?’ 물음표가 동동 떠 있는 것을 안 이상 엘은 스스로를 점검했다. 막내의 의무를 떠올리기 전에 미리 해 놓으면 막내를 찾지 않을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막내'라는 계급에 배치되어 고통스러워 하지만, '막내' 서열화는 한국 직장 문화유산에 손꼽힐 전통이라 할 만하다.

ⓒ연합뉴스

적을 때 하루 50개의 메일을 발송해야 한다면 누구라도 그 소리를 들을 것이다. 컴퓨터에 전원이 들어가면, 수십 개의 메일이 견적서를 달라고 소리를 친다. 그 아우성을 견디면서 견적을 '네고'하고 수화기를 붙잡고 있고 입력을 하다 보면 의문의 순간이 온다. '이메일을 다 치지 않아도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데이터화할 방법을 찾으면, 늘기만 하는 키보드 작업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엘은 부장 앞에 섰다. '그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보다 네 월급이 싸서 너한테 시키는 거야' 엘은 깊은 충격을 받았다. 부장은 그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걸 모르다니 이상하구나', 엘의 도전에 대한 조롱이자 응징이라고 해도 되었다. 복사기 옆 A4용지만 소모품일까, 탕비실의 종이컵만 일회용일까. 자신이 사물이 되고 도구가 된 순간 엘은 각성했고 아팠다. 외국계 회사이지 않냐, 좀 더 견뎌보자는 가난한 부모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콜센터에서 이미 한 번의 교훈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대학교에 등록을 한 엘이 무심코 회사에 말을 했었다. 엘이 고객정보를 잘못 입력한 실수를 한 날, 팀장이 말했다. '너 공부한다고 거기 정신 팔려서 실수한 거 아니니?' 그 후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공부 생각한다고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조심했다. 공부를 하는 존재이거나 의문을 품는 존재여서는 안 되는데, 엘이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나이가 어렸으며 유일한 고졸 직원이었던 엘은 그렇게, 좀 더 버티길 바라는 가족들의 염원을 뒤로 하고 외국계 회사를 나왔다.

의문이 든다. 그 회사는 엘을 왜 고용한 것일까. 엘의 외국어 실력은 정말 필요했던 것일까. 부장이 말한 그 시스템이라는 것은 엘의 인건비보다 비쌌던 것일까. 다른 계급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부장은 엘에게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영업부 직원이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비품이나 소모품처럼 다루어져도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했을 수 있다. 엘은 시스템보다 구매 비용이 더 적은 자신이 시스템의 대체재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지만, 부장은 그 시스템의 가격에는 관심이 없었을 수 있다. 대신 회사는 다른 효용을 얻었다. 20대 초반의 여성에게 회사가 기대한 어떤 분위기, 역할이 있었을 수 있다. 의식하지 않았어도, 의도하지 않았어도 누렸다면 회사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다. 학력을 제한하지 않으며 능력을 존중한다는 이미지도 챙겼다.

엘의 저항은 용기 있는 일이었고, 그에 따른 각성도 그 자체로 의미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해방될 수 없다. 엘의 성실성, 엘이 가진 노동의 윤리가 어떻게 이용되어 왔는지 볼 수 있을 때 해방도 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회사를 나온 엘은 AI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단기 알바를 잡았다. 도로의 자동차 사진을 찍어 오면 자동차 모양을 컴퓨터로 따서 그리는 작업이었다. 세상에 차가 이렇게 많은가, 손목이 뭉개질 것 같았다. 3개월 계약 알바였지만 3개월 연장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6개월 동안 자동차 윤곽을 그리고 다시 직장을 찾았다.

엘은 이제 혼자 일하는 직장을 잡았다. 외국인과 대화해야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잘하는 외국어를 활용하며 업무시간에 한국인 관리자를 거의 만나지 않는다는 점이 엘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다. 아쉬운 건 창문이 없는 사각의 부스가 일터라는 점이다. 바깥 바람이 오지 않는 부스에 앉아있다. 햇빛을 못 받아서인지 기분이 가라앉는다. 억울한 게 자꾸 올라온다. 하늘을 보고 싶고 지는 해를 보고 싶다. 학교 다니고, 운동도 배우고, 병원도 가고. 그럴 걸 하고 싶다.

* 이 연재는 2022년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한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서 만난 여성들, 노동건강연대가 활동하면서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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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언제나 감탄하고 감사하고 존경한다. 할 수 있는 건 말, 쓸 수 있는 건 글, 고마운 마음을 글로 전하고 싶다. 달리기는 못 해도 걷는 건 조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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