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무환 무비유환', 무례한 수사관 만났을 때 명심해야 할 것들

[류하경의 불온한 사건첩] 변호인에게는 때로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서론

수사기관에 피의자 변호인의 신분으로 출석하게 되면 잘 대응해야한다. '말싸움' 말이다. 여기서 밀리면 법에 있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하고 싶어도 컨텐츠가 없으면 할 말이 없고, 컨텐츠가 있어도 기세가 딸리면 입이 잘 안 떨어지거나 입이 떨어져도 무시당할 수 있다. 필자처럼 태생이 여려서 풀포기 하나 잘 밟지 못하는 온순 성향의 변호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적어 보는 글이다. 일반인 피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변호사의 관점이다.

입장(入場)

경찰서, 검찰청에 가면 벽돌 하나, 공기 입자 하나하나에서 조직적인 푸대접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사람이 사람을 잡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코로 맡을 수는 없다.

수사관실, 조사실 또는 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에게 가장 법적으로 적대적인 한 명의 대장 아래 서너대여서일곱명의 전사들이 버선발로 마중 나와 두 팔 벌려 나를 비(非)환대 한다. 그 중 호전적인 한 명이 "선임계" 가져왔냐고 훅 들어온다. 변호인은 선임계를 넘겨준다. 그럼 수사관 중에 가끔 "참여신청서"도 내야 된다며 갑질하는 사람이 있다. 그때 이렇게 답하면 된다.

"변호인이 선임계 가져와서 여기 서 있는 게 참여하러 온 건데 무슨 서류를 냅니까? 변호인이 구두로 참여 요청해서 수사방해, 증거인멸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피의자 옆에 동석하는 거지요. 무슨 그런 서류가 필수요건이라는 법률이 있으면 봅시다."

선임계를 못 챙겨온 경우에도 A4용지 하나 달라고 해서 내용을 손으로 쓴 후 즉석에서 의뢰인 서명을 받아서 주면 된다. 그런데 그 외에 무슨 서류를 더 달라고 갑질을 하는 그런 것은 아무 신경 쓸 게 아니다. 그러니 당황하지 마라. 당황하면 들키고 그 다음 단계가 계속 어려워진다.

부당한 대우

그제야 의뢰인을 보니 수갑을 차고 앉아있네. (이 글에서는 '수갑'을 예로 든다. 다른 부당한 대우를 대입해도 된다.)

"아, 이거 계구(수갑이나 포승 등 얽매는 기구) 좀 풀어주세요"

그러면 수사관은 더 호전적으로 눈을 부라리며 "안 됩니다. 이걸 왜 풀어요" 이렇게 달려든다. 그럼 먼저 대답하지 말고 되물어야 한다. "채우는 사람이 근거를 대야지 '왜 풀어야하는지'를 나한테 묻는 게 맞습니까? 계구를 채우는 근거가 뭔데요?" 이러면 이상한 대답을 하게 되어 있다. 그때 수갑을 풀어야 할 근거를 말해주면 된다. (나의 그날 컨디션과 수사관의 불손한 정도에 따라서 때로는 "아니 법을 집행하는 수사관이 법적근거도 모르면서 신체를 강제로 구속해요? 그런 것도 안 배웠어요? 이거 큰일 날 사람이네" 이런 말을 추가해도 괜찮다)

그리고 아래 법률 및 판례를 말하면 되는데, 대충 외워서 말하기 보다는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고 꺼내서 정확하게 다 읽어주는 게 좋다. 분위기가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100조 및 계호업무지침입니다. 이에 따르면 조사과정에서 자살, 자해, 상당한 도주 우려 등이 인정될 때만 예외적으로 인정되고 강제력의 사용은 필요최소한으로 그쳐야 합니다. 지금 이 사람이 자살, 자해, 도주 우려가 있습니까? 철문으로 저렇게 닫아놨고 지금 여기 수사관들이 몇 명이나 둘러싸고 있어요?"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2005. 5. 26. 2001헌마728 사건 결정문에서, '조사실에 소환되어 피의자신문을 받을 때 계호교도관이 포승과 수갑을 채운 상태에서 피의자조사를 받도록 한 행위'를 위헌이라고 분명히 했고, 2004 헌마 49 사건 결정은, 조사 중 수갑 채우는 근거라고 수사기관이 주장한 계호근무준칙 제298조는 법률이 아닌 수사기관 내부규칙에 불과하며 그 내용도 위헌이라고 하면서 '도주, 폭행, 소요, 자해 등 분명하고 구체적인 필요성이 있을 때 필요한 만큼만 계구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약간 움찔하는데 숨도 쉬지 말고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대법원은 2016다260660 판결에서 수갑을 채운 채 피의자 조사한 검찰 공무원이 형집행법, 계호업무지침을 위반해서 불법행위를 했으므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했고요."

"지금 저는 계구 풀어 달라고 분명히 요구했죠? 근데 지금 수사관님이 거부했습니다. 맞죠? 이거 책임 질 수 있죠? 녹음기 좀 켤게요."

그리고 그 수사관 직책과 실명을 물어보면 좀 차분해져서 한 단계 높은 사람(팀장, 과장, 검사 등)한테 물어보러 간다. 그 높은 사람도 수갑을 안 풀어주면 이제 진짜 상황이 좀 진지해지는데 이런 경우에 수갑을 안 풀어준 적이 없어서 더 설명할 말이 없다.

말싸움, 기싸움

이제 수사관이 좀 젠틀해지는데, 때로는 약이 올라서 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고 제가 변호사님을 몰라 뵀네요. 아이고~"

이러면서 소위 '야지'를 놓는다. 이 정도가 되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호구'의 경계선이다. 그 순간 바로 그 사람 팔을 잡고 "당신 지금 뭐라 그랬어? 하…. 이리 좀 따라 와보세요"라고 하면서 한 단계 높은 사람한테 가자고 끄는 시늉을 하며 실랑이를 좀 한다.

그럼 시끄러워지면서 한바탕 고성이 오가고 한 단계 높은 사람이 무슨 일이냐며 다가오게 되어 있다. 이 때다.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 한 단계 높은 사람에게 여쭙는다. "아니 00(직위)님 지금 이 사람이 저한테 이러저러 하면서 비아냥대는데, 조사 동석 참여한 변호사한테 공무원이 이렇게 하는 게 이게 맞습니까? 이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00(직위)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00(직위)님, 대한변호사협회 차원에서 이 사람 공식적으로 문제 좀 삼아도 되겠습니까? 수사기관 출입하는 변호사들한테 공무원이 이래도 되나요. 이 사람은 원래 늘 이렇습니까?"

이러면 내게 팔을 잡혀 있는 수사관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움츠러든다. 한 단계 높은 사람이 나를 진정시킨 후 수사관에게 주의를 주고 나는 조사석에 앉으면서 다른 수사관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이 수사관이 우리 조사 담당이 아닌 경우) "저기 죄송한데 저 사람 저한테 말 좀 안 걸게 해주세요", 또는 (우리 조사 담당인 경우) “저 사람이 우리 조사 담당인가요? 그럼 다른 조사관으로 교체해 주세요. 지금. 안 바꿔주면 오늘은 조사 안 받고 우리 의뢰인이랑 일단 집에 가겠습니다. 청문감사실에 오늘 일 다 써서 수사관 교체신청서 접수하고 갈게요"라고 한다.

그리고 피의자에게 귓속말로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라고 말한다. 수사관은 피의자가 없는 사이에 조용히 내게 온다. "변호사님 아까 일은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절차 관련해서 연락을 드리고 해야 하니까. 서로 좀"이라고 하면 이제 성실하게 조사를 받으면 된다.

결론

이상의 내용은 필자가 실제로 겪은 일들이다. 극단적인 사례다. 대부분의 수사관은 친절하고 합리적이다. 불필요한 기세 다툼을 할 일이 잘 없다. 다만 강력범죄나 무죄를 강하게 다퉈야 하는 경우, 피의자가 사회경제적으로 너무 약자인 경우(전과자 포함), 부당한 방법과 절차로 증거수집을 했거나 초동수사를 잘못 했거나 강압수사를 한 바가 있는 등 수사기관이 법적·윤리적으로 켕기는 게 있는 경우, 그리고 이에 더하여 변호인이 초짜처럼 보이거나 사람 좋아 보인다면 위와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질 개연성이 높다. 즉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한번 써본 글이다.

수사기관 조사가 잡히면 혹시나 싶어서 필요한 법률 조항과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표정, 자세 같은 것들을 산책할 때나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계속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소리 내어 혼잣말로 연습도 해본다. 내공이 쌓일 때까지는 그러는 수밖에….

수사관들은 훌륭한 공익적 일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대부분 공적인 사명감과 정의로운 열정이 있다. 이렇게 열정 있으면서도 섬세한 집단적 푸대접 앞에서 혼자 맞서야 하므로 디테일과 연습만이 변호인과 피의자를 숨이라도 쉴 수 있게 해준다.

디테일과 연습, 그리고 '미움 받을 용기'다. 그것이 필요하다. 착한아이 컴플렉스를 빨리 버리고 푸대접을 즐겨야 한다. 내가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이 점점 더 나를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내가 잘 대응하고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밀리면 이 공간 안에서 모든 게 다 밀려 무너질 수 있으므로 씩씩하게 잘 해야 한다. 변호인만 믿고 있는 의뢰인의 기본권과 방어권은 지켜내야 한다. 변호인이 의뢰인에게 해주어야 할 필요최소한이다. 자백하고 선처를 구할지, 무죄를 구하며 다부지게 다툴지는 그 다음 문제다.

▲ 서울중앙지밥법원(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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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하경

자전거와 수영과 강아지를 좋아하는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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