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가 백재권은 무엇을 보러 갔을까?

[정희준의 어퍼컷] '무속 국정' 논란 속 놓치고 있는 것

대학 시간강사 시절 이야기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여럿 딴 후배가 자양동에 있는 용한 보살님께 점을 보러 가는데 같이 가겠냐고 묻는다. 과거 올림픽 첫 출전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금메달을 자신이 딸 걸 맞춘 분이라며. 안 갈 수가 없었다. 궁금한 것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당시 내 관심사는 빨리 교수로 취직하는 것이었다. "내년 남쪽 바닷가로 간다"고 했다. '남쪽 바닷가'는 맞았다. 그러나 '내년'은 틀렸다. 그해 갔다. 나머지도 대충 틀렸지만 '남쪽 바닷가' 적중의 기억은 강렬했다. 일이년 뒤 다시 찾았다. 아무런 의미 없는 상담이었다.

모범적(?) 교수 생활과는 거리가 있었고 호기심도 많은 터라 명리학 상담도 몇 번 받아봤다. 아이 엄마가 가족 사주를 보기도 했고 아들 걱정에 어머니가 역술인을 찾기도 했다. 지난 십여 년 이러한 상담 내용들을 간단하게나마 기록으로 남겼다. 직장, 이사, 가족, 주식, 투자 등 흔히 궁금해하는 것들이다. 결론은? 첫째, 다 다르다. 둘째, 기가 막히게 다 틀렸다. 한 사람만 빼고.

역술, 믿어도 되나?

최근 풍수전문가 백재권의 육군참모총장 관사 방문이 논란이다. 여권에서는 풍수가 과학이라고 주장하지만 객관적 입증이나 반복적 증명이 불가능한 분야를 과학이라고 하지 않는다. 동양철학의 한 분야이니 학문이라고 칭하는 것엔 반대하지 않는다.

사실 저명한 학자들이 이 분야에 심취하기도 한다.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풍수를 세상에 알렸고 진보적 학자인 고미숙은 동양철학에 몰입했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명리학에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국가가 이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세종시 이전을 위해 만들어진 자문위원회 85명 중엔 2명의 풍수전문가가 포함되기도 했다.

그런데 제대로 공부한 이들은 이 터가 천하 명당이고, 저기는 삼대가 망할 터고, 어디로 이사 가야 자녀가 어느 대학 가고, 어떤 주식을 사야 돈을 번다는 식으로 답하지 않는다. 최창조 전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가까운 미래를 맞힌다고 해도 잘해봤자 70%를 넘기 어렵다"면서 명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편한 곳이 바로 명당이고, 그리고 명당은 찾는 게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친화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그는 부친의 묘를 쓸 때 전혀 풍수를 고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엔 파묘를 해서 두 분 함께 수목장을 했다. 자신과 형제들도 수목장을 하기로 했다. 풍수가 결국 자손과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것인데, 세상 떠나며 남은 이들에게 이롭기는 수목장만 한 게 없다는 것이다. (업계(?)가 그를 안 좋아하는 이유다.)

고미숙도 비슷한 맥락에서 말한다. 사람의 팔자는 60~70%는 사주에 정해져 있다고 하면서도 나머지는 인간의 몫이라고 한다. 동일한 연·월·일·시에 태어나고도 극과 극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듯이 개인의 운은 우선은 부모의 운, 배우자 운, 주변 친구나 동업자의 운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본인의 노력과 의지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물론 명리학 등은 훌륭한 삶의 지침이 된다. 대운과 해운(그해의 운)이 동반 상승할 때는 적극적인 변화 모색을 시도할 수 있고, 반대로 운이 하강세일 경우는 무리한 시도는 자제하며 자중하고 공부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정도만 해도 큰 도움이다. 그런데 세세한 것까지 역술인에게 의존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판단은 나의 처지와 필요에 따라, 내가 하는 것이다.

하나 더. '귀신처럼 맞힌다'는 무당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어봤을 것이다. 문제는 무당이 모시는 귀신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변호사나 의사가 다 똑같은 변호사, 의사가 아니듯이 귀신도 그 실력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귀신 자격도 없는 귀신도 있다. 그렇다면 용한 귀신은 다 맞힐까?

어머니가 신점을 봤다. 무당이 한 말을 전하며 어머니가 나에게 "맞니?" 묻는다. 소름이 돋았다. 계획 중인 내용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은 말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계획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사업이다. 문제는? 시작도 전에 엎어졌다. 용하다는 무당 수준이 그 정도다.

인터넷 사주·신점 카페에 들어가 보면 많은 이들이 후기를 적는다. 시간이 지나 그때의 상담 내용이 맞는지 공유하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예약이 1년 후에 가능할 정도로 유명한 역술인조차 상담 내용대로 됐다는 이는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 지나고 보니 몇 개는 "맞은 것 같아요" 정도다. 가장 반복되는 내용은? "과거랑 현재는 잘 맞추시는데 미래는 아닌 거 같아요."

네이버에 한 무당이 상담 요청 글을 올렸다. 찾아온 아내에게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고 했는데 남편에게 여자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 때문에 이혼하게 된 아내가 자기를 고소한다는데 어떡해야 하냐는 것이다. 여기에 한 변호사가 방법이 있을 것 같다며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권한다. 과거고 미래고 모르겠고 이들은 준비된 대사를 상황에 따라 던지는 것이다. 정말 재밌는 사실은 요즘 변호사들도 역학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세상은 돌고 도는 요지경인가.

최근 경제가 안 좋아지자 명리학이나 타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문제는 이들이 몇 달 대충 배우고 사업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업계 최고수조차 적중률은 절반에 이를까 말까인데 온갖 세상사를 묻고 답한다. '막상담' 수준이다. 한 역술인은 요즘 공부를 엉터리로 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유명하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최근 역술인들은 정치인들의 사주풀이나 인물평을 넘어 미국, 중국, 일본 등 외교 문제까지 거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들이 맞췄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틀린 것도 (어쩌면 더) 많고,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그 역술인은 "서울엔 별 희한한 사람들이 행세하는 곳이구나" 하며 어떻게 권력자들이 그런 이들에게 물어보러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그들이 장사하는 방법이 이렇다. 적중률은 당연히 매우 낮지만 몇 사람이라도 운 좋게 맞아떨어지면 그 사람들 통해 새로운 손님이 온다.

백재권 방문의 이유, '대한민국'인가 '그들'인가

결국 공적이냐 사적이냐 논란의 반복?

관상가이자 풍수가인 백재권의 육참총장 관사 방문은 여러 문제가 있다. 아직도 무속 논란이 있는 역술인이 과거 정부 때처럼 자문위원회 등 아무런 공적 절차 없이 국가 정책 과정에 개입했다는 것, 청와대에서 나오기로 한 결정 역시 역술인(들)의 권고 때문인가 하는 것, 민간인이 군사보안시설에 아무런 통제 없이 드나들었다는 것, 현직 국회의원이자 경호처장인 당시 대통령실 이전 TF 팀장과 부팀장에게 누가 그의 출입을 지시했냐는 것 등이다.

나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본다. 그들은 왜 백재권의 출입을 비밀에 붙였을까. 세종시 이전은 물론, 사패산과 천성산 터널 공사 때도 공식적으로 풍수가들의 자문을 구했는데 말이다.

과거 정부에서 풍수가에게 자문을 구한 사업들은 논쟁적 국가사업이었고 반대도 많았다. 당연히 정부는 그 사업이 국가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 성공적 사업이 될 것인가를 물었을 것이다. 논란이 된 대통령실 이전 역시 논쟁적이었고 반대가 많았다. 그렇다면 정부가 풍수가의 자문을 구할 수 있다. 공적으로 의견을 구하면 될 일이었다.

내가 의구심을 갖는 것은 이런 점이다. 우리가 역술인을 찾을 때 확실한 목적이 있다. 내 사주풀이를 원하는지 아니면 배우자나 자식의 사주풀이를 원하는지. 내가 궁금한 점에 맞춰서 묻는다. 그래서 '그 사람의 사주'를 알려주고 답을 듣는다.

그런데 이번 논란이 불거지고도 이를 비밀에 붙이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통령실 이전과 국가발전 차원에서 논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일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자문을 구하는 목적이 국가발전이나 대한민국의 안위가 아니었던 것 아닐까? 혹시 그들의 안위 때문 아니었을까? 결국 공적이냐 사적이냐의 문제인가? 그들은 이미 뭔가에 불안해진 것인가?

▲ 백재권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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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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