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부추기는 행보에 맞서

[인권으로 읽는 세상] 정전 70년,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행동으로

집중호우가 휩쓸고 있을 때 나토정상회의에 이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소식이 전해졌다. 무너진 집과 폐허가 된 거리, 전사자의 사진이 가득한 추모의 벽을 둘러보고 70년째 정전상태인 한국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은 과거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며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함께 싸워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말했다. 현재진행형인 전쟁의 참담한 흔적을 확인한 것임에도 전쟁을 끝내기 위한 고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7월 27일 정전협정 70년을 맞는다. 2019년 이후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불씨가 되길 바라며, 한국전쟁 70년이었던 2020년 시민사회는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을 시작했다. 정전협정 70년을 맞는 2023년,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가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전쟁을 부추기는 선동 속에서 평화는 더욱 멀어지고 소리 없는 총성은 계속되고 있다.

달라지지 않고 공고해진 적대 구조

지난 6월 말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발언이 논란이 됐다. 지난 시간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왔다고 추켜세우며, 종전선언 추진은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평화 주장"이었다고 비난했다. 전쟁을 끝내자는 목소리를 반국가적이라 하며 힘으로 맞서자는 윤석열 정부다. 이와는 다르지만, 종전선언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이름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 왔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2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며 한반도의 봄을 기대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중적 행태라 비판한 것처럼, 남북이 첫 번째 합의로 선언한 단계적 군축을 문재인 정부는 이행한 적 없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이유로 잠시 중단된 한미연합훈련은 바로 재개됐고, 역대 정부 중 가장 크게 군비를 증강했다. 말과 행동을 달리 하며 변화의 기회를 스스로 닫은 셈이다.

이후 북한과 관계가 단절된 시간이 이어지고 국제질서의 변화와 함께 한반도 전쟁위기는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냉전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국가 간 갈등과 공조를 오가며 위기를 관리해온 국제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 속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은 자유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을 나누며 동맹세력을 구축하고, 이러한 대립이 실질적인 충돌로 가시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1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중이다. '신냉전'이라 불리는 시대, 적대를 노골화하고 군사력 경쟁 속에서 방위산업은 성장 가도를 달린다. 그 한복판에서 북한이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는 핵무력 능력을 더욱 고도화하며 내보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선제타격'을 주장하고 "주적은 북한"이라던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한미연합훈련이 확대되고, 중단됐던 한미일간 군사훈련도 다시 이루어졌다. 동시에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도 지난 2022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강대강 구도 속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적대만 키우는 담대한 정부

대북관계 로드맵으로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담대한 구상'은 북한과의 적대를 키우는 담대함만이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 후보로 '북한 체제 파괴'를 말하고 북핵에 대응하려면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극우인사 김영호 씨를 지명했다. 부적절한 인사라는 비판에 대통령실은 통일부의 역할이 더 이상 '대북지원부'가 아니라며 일축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하면 그때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겠다는 것이다. 안보를 내려놓으면 경제를 내주겠다는 제안에 북한은 강하게 비판하며 거부했다. 한편 국방 목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국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하며 다시 주적 개념이 등장했다. 이러한 틀 안에서 외교안보전략은 북한과 대적할 '우리 편'을 만드는 것뿐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제일로 삼으면서 미국 무기만 출범 1년 만에 18조 원 넘게 사들였고, 일본과는 다시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를 재개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북한 비핵화'로 바뀌었다.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동선언> 채택 이후 역대 정권을 막론하고 남북관계의 주요과제로 한반도 비핵화를 이야기해왔다. 지난 30년 갈등과 충돌의 국면 속에서도 남북이 공동의 지향으로 확인해온 기조였다. 이를 폐기하며 대체한 북한 비핵화는 비핵화의 주체를 북한으로 규정하고, 비핵화가 남과 북 그리고 미국 등 한반도 주변국가를 포괄하는 과제가 아님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의 변화는 한반도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질 모습의 변화를 예고한다. 문제로 규정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데 어떤 수단과 방법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창설한 한미 핵협의그룹 첫 회의가 7월 18일 열렸다. 정례적으로 미국 핵 전략자산을 한국에 전개해간다는 계획과 함께 현재 부산에 미국의 전략핵잠수함이 입항해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다음날 미국 전략핵잠수함에 오른 윤석열 대통령은 "확장억제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한 한미 양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한 도발시 정권의 종말"을 경고했다. 문제는 북한이고, 모든 군사적 행위는 북핵 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전략이자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어태세를 갖추는 것인 양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떠한 군사적 행위도 실제 이루어질 때 방어와 공격이 구별되지 않으며, 예상하기 어려운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핵에 핵으로 맞서자는 것은 모두가 절멸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가치동맹'에 이어 '행동하는 동맹'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안보 성과라 자찬하는 것이 결코 평화를 보증하지 않으며, 오히려 평화의 대척점에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환호에 손들어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떤 일상을 살아가느냐의 문제

국가안보를 우선시하며 외교나 대북의 이름으로 실행되는 정책들은 저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좌우한다. '전쟁도 불사'한다며 적대를 키우는데 여념 없는 윤석열 정부가 국가적 차원의 불안정과 위협을 심화하는 문제는 곧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일상을 뒤바꾸는 문제로 연결된다.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고 어떤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지가 달라지는 것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 곳곳을 군사기지화 하며 전쟁 훈련이 진행되고 이를 위한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에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이 드나들고, 성주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배치하는 것에 이어, 사실상 공군기지로 쓰일 새만금신공항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5월 31일 새벽 긴급대피를 하라며 울렸던 재난문자는 전쟁위기가 그저 뉴스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흔들리며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난데없던 문자소동이 아닌, 언제든 대피경보가 울려도 자연스러운 상황이 지금 한국사회가 놓인 조건이다. 재난문자 오발령 소식 이후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사전에 대피소 정보를 확인하고 평상시 비상대비 물자 준비를 해놓자는 대처방안이 소개됐다. 각자 살아남을 방법을 아는 것이 우리가 요구할 전부일 수 없다. 지난 70년 이어온 정전체제조차 뒤흔들리는 위태로운 시간이 펼쳐지는 지금, 적대구조를 공고히 하는 윤석열 정부를 멈추게 할 목소리와 행동이 절실하다.

정전 70년, 평화를 이야기하자

강력하고 압도적인 힘을 가져야 '진짜 평화'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침없는 군사적 행보가 북한을 도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가속화 하는 불안정과 위협 속에 우리의 삶과 미래가 흔들리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적대관계를 완화할 수 있는 한 걸음을 떼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하나씩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통일부 장관 지명을 철회시키고, 북한보다 이미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춘 상황에서 더 이상의 군비 증강을 막아내고, 그렇게 정부의 행보를 비판하고 반대하며, 개입하고 통제하는 시민의 목소리와 행동이 중요한 때다.

정전 70년, 이제 전쟁을 끝내자며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것이 아득한 날들이다. 그럴수록 평화가 결과로서 어느 날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끊임없이 요구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함께 기억하고 싶다. 전쟁을 부추기는 말들에 단호히 맞서며, 우리가 살고 있고 지키고 싶은 일상과 삶으로서 더욱 평화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그렇게 정전 70년을 우리가 함께 맞이하고 만들어가자.

2020년 시작한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이 2023년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으로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한반도 전쟁 반대 평화 실현 100만 서명 활동, 한미연합군사연습과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 촉구 활동, 전 세계 300곳 평화행동과 7.22 평화대회 등 다양한 활동으로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목소리를 모아 시민의 힘으로 평화의 길을 열어내고자 합니다. (☞홈페이지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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