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칠십 평생에 이렇게 비가 많이 쏟아진 것은 처음이여, 아직도 100mm 이상 더 온다는디, 큰일이여…."
전북 익산시 춘포면 학연마을의 한종열 이장(72)이 14일 오후 5시께 대뜸 걱정스러운 말투로 하늘을 바라봤다.
학연마을 주민 20여 명은 이날 오후 4시 익산시의 대피명령 발령에 따라 부랴부랴 간단한 세면도구만 챙겨 인근의 천서초등학교 대강당으로 대피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우는 하루 종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부었고, 축구장 대여섯 배 크기의 인근 저지대 논밭은 이미 거대한 물탱크처럼 변해 있었다.
이재민들이 모인 초등학교 대강당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30여 농가 50여 명이 사는 마을 뒷편에는 익산천이 흘렀다. 앞을 못 볼 정도로 쏟아진 폭우에 폭 20여m의 익산천에는 너무 많은 비가 유입됐고, 급기야 입석교 옆 제방은 1m 정도만 남기고 만수위를 보였다.
익산시는 이날 급히 고위 관계자를 현장에 급파, 상황을 둘러본 후 대피명령을 내렸다.
"일기 예보에 따르면 앞으로 익산시에 100~150mm가량 폭우가 더 쏟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칫 범람 우려가 80%까지 높아져 미리 대피해야 할 것 같아 결단을 내렸지요."
익산시 직원 10여 명은 이날 학연마을 주민들의 대피를 도왔다. 주민의 상당수가 대피소로 모였고, 나머지는 친인척집 등으로 옮겨가는 등 느닷없이 생이별을 하게 됐다.
대피소에는 구급박스와 비상용 라면, 물, 음료수, 소독물품, 전자모기향 등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보급품들이 잘 정비돼 있었다. 익산시는 이날 저녁 이재민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가구별 텐트를 치는 등 불편이 없도록 했다.
발령 3년 차의 K주무관은 "이재민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접하다 보니 집에 있는 아내와 어린 자녀에 대한 걱정이 덜 된다"며 "어르신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80대의 한 주민은 "처음 당해보는 일이지만 대피허기(하기) 잘 혔어(했어). 제방이 넘치면 대피할 곳도 없을 텐 데…"라며 "이제 비가 그만 내렸으면 좋겄어"라고 말했다.
익산시에는 이날 일부 지역에서 최고 400mm 이상의 물 폭탄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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