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은?

[유보통합을 말하다] 학부모가 바라는 영유아 중심의 유보통합

나는 지금 7살인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맞벌이 부모이기에 13개월부터 기관 생활을 시작한 아이는 영아 전담 민간어린이집과 가정어린이집을 거쳤고 지금은 사립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기관을 옮기는 일은 늘 전쟁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야 할 때 주변에서는 대기가 길어도 일단 국공립어린이집에 대기를 넣어보라고 이야기했다. 대기가 너무 길어 힘들다는 국공립어린이집, 여기저기 알아보던 나는 결국 대기라도 한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살던 지역에는 아이를 보낼 수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이 없었다. 또 아이가 유치원에 가야 할 시기가 되었을 때도 바로 집 앞 병설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었지만, 개설된 학급 연령이 만4-5세뿐이어서 만3세인 내 아이는 들어갈 수 없었다. 지역에 따라, 연령에 따라, 기관에 따라, 부모와 가정의 배경에 따라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기관과 그 조건은 천차만별인 상황이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면 교사, 급식, 교육, 시설의 질이 일정 수준 담보되어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보육, 교육기관을 원한다. 그렇기에 유보통합은 반드시 상향 평준화의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어떤 기관에 다니게 되더라도, 좋은 선생님과 안정적 환경에서 충분한 돌봄과 교육을 제공받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기관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일지 불안해하며 부모가 직접 여러 기관을 찾아 비교하고, 입소문을 확인하면서 선택의 그 순간까지 이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 망설이지 않을 수 있도록, '집에서 가까우면 됐지. 어디를 보내도 내 아이가 행복해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양육자들이 안심하고 보낼 수 있도록, 그런 결론이 나는 유보통합이 되어야 한다.

또한 유보통합의 추진 과정과 결과가 모두 성공적이려면 유보통합이라는 정책의 필요성과 추진 과정 등이 양육자들에게 잘 전달되어야 할 것이다. 유보통합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그리고 내 아이와 우리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 여전히 주변의 많은 양육자들은 유보통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오는 왜곡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작년 만5세 초등 취학 사태에서도 경험했듯이 어떠한 정책이든 정책 당사자인 교육 주체들의 공감과 지지 없이는 정책 추진에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유보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책 수혜의 당사자인 부모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며, 정확한 사실을 설명하여 부정확한 정보로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정책이 우리 아이의 행복과 이익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양육자들은 적극 환영하며 지지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유보통합을 통해 영유아가 행복한, 안정적인 보육·교육 체제를 만들어가야함과 동시에 현재 유아교육과 보육 현장에서 양육자와 아동이 처한 어려움들을 시급히 해결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사대 아동 비율의 문제다.

지금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며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은 선생님과의 소통이다. 맞벌이이기에 매일 등하원 시간에 소통이 어려워, 선생님께서 종종 따로 전화를 주시곤 한다. 오늘 아이에게 있었던 일, 어떤 친구와 어떤 영역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오늘 교사·친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등의 에피소드를 나눠주신다. 그리고 오늘 이런 일이 있었으니 가정에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거나, 아이의 감정이나 기분이 어떤지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이렇게 내 아이의 생활에 대해 선생님과 친밀하게 소통할 때, 영어·한글 같은 특별활동보다도 내 아이가 좋은 선생님께 사랑을 받으며 잘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그래서 '만약 학급당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적고, 선생님의 업무부담도 줄어든다면 어떨까? 지금보다 각각의 아이들에게 향하는 관심과 눈빛이 더 늘어날 것이고, 아이의 변화와 성장에 대해 부모들과 소통하며 아이를 함께 교육하고 키워가는 의미 있는 경험이 늘어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내 아이의 만5세 반은 3월 학기 시작 당시 25명을 꽉 채워 운영한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 혼자 25명의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 보조교사 선생님이 한 분 계시지만, 보조교사 선생님의 역할은 3개나 되는 만5세 학급을 왔다 갔다하며 부족한 일손을 돕는 정도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은 선생님에게는 업무부담으로 인한 피로감을 누적 시키고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이지 못한 교육환경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영유아 중심 유보통합’이라는 표현에 걸맞도록, 당장 우리 아이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매일의 일상에서 변화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중 가장 우선 순위는 한 교사가 감당할 영유아의 숫자를 반드시 줄어야 한다.

나는 만5세 무상교육·보육 제도가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 탓에 올해부터는 무상교육의 혜택으로 방과후 과정 비용만 부담하고 있다. 사실 당장의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도 경제적인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유아교육 현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무상교육이 아이들의 행복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무상교육이 시작되면서 맘카페에서 "특별활동까지 다 지원되는데, 어떤 기관 특별활동이 더 좋은가요?" "어떤 기관이 특별활동을 더 많이 하나요?" 등의 질문이 종종 올라왔다. 무상교육이 확대되면서 부모들의 입맛대로 더 많은 특별활동과 조기 인지교육을 하는 기관들이 늘어났고 무상교육의 확대가 오히려 아이들의 발달에 해로운 방향으로 교육과정 운영을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었다. 더불어 선생님들 입장에서도 무상 교육이 확대 되었지만 업무 부담 경감이나 교육환경 개선과 같은 긍정적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아동’을 중심에 두고, '아동'의 관점에서 무상교육을 다시 생각해 보니 아동의 기관 생활이나 환경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상교육으로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기관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좀 더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질 높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에 정책의 방점이 찍혀야 한다. 따라서 유보통합 정책의 우선 순위는 아이들의 발달에 비추어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기준으로 삼고, 아이들이 매일 생활하는 기관과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예산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든 아이들의 행복과 이익을 담보할 수 있도록 예산이 올바르게 잘 쓰여야 하는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향후 유보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작정 무상교육을 내세우기 보다는 모든 아이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유아교육과 보육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우선순위가 되어 부모의 입장보다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누구나 질 높은 보육과 유아교육을 누릴 수 있도록 유보통합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영유아 시기는,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에서 입시경쟁과 학업 부담에 눌려 소년기를 보내게 되는 아이들이, 유일하게 인생에 단 한 번 마음껏 놀이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 자유로운 일상과 질 높은 놀이와 활발한 상호작용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현장에서도 놀이중심, 유아중심 유아교육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초중고로 이어지는 입시경쟁, 대학 서열화 등의 문제로 인해 아직은 어린 영유아의 양육자들도 불안해 하고, 내 아이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길 원한다. 상위 단계의 경쟁을 끊어내고, 더불어 초중등 교육에서 책임교육을 통해 공교육만으로도 내 아이가 자신의 꿈을 꾸고 이뤄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 필요하다. 양육자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키울 수 있도록 교육 단계 전체를 일관성있게 접근해 가는 정책이 반드시 기본전제로 실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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