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야 하는 그날? 안전도 숨길 건가요?

[함께 사는 길] "누구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권리가 있다"

여성들이 매년 65일 동안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월경이다. 약 두 달에 걸쳐 이루어지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리현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월경을 부정적으로 여기며 금기시하는 월경 터부가 전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월경은 정확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생리현상을 뜻하는 '생리', '그날', '마법'과 같은 은어로 불리고 있다. 이렇듯 월경을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일로 여기는 월경 터부를 걷어내기 위해 5일 동안 28일마다 하는 평균적인 월경 주기를 뜻하는 5월 28일이 세계 월경의 날로 제정되었다.

2017년, 여성환경연대는 광화문 광장에서 5.28 세계 월경의 날을 맞이해 생리대 유해화학물질 규제, 생리대 전성분표시제 시행 등을 요구한 바 있다. 같은 해, 3000여 명의 여성들이 생리대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 피해를 제보했다. 이에 여성환경연대와 시민들은 “내 몸이 증거다”라고 외치며 생리대 부작용에 대한 명확한 조사를 요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10월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환경부와 공동으로 '일회용 생리대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생리대와 부작용 간의 상관성을 인정했다. 건강영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회용 생리대 사용자는 면생리대·생리컵 사용자에 비해 생리통, 외음부 가려움증 등 모든 생리 관련 증상의 발생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는 구체적인 생리대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여전히 무책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 5.28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여성환경연대와 소속단체 회원들은 지난 5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생리대 안전관리 기준 강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여성환경연대

유기농 생리대 사용 시 28.56% 더 비싸

일회용 생리대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지 몇 년이 지났다. 그러나 정부의 책임회피로 인해 여성들은 매월 찾아오는 월경 기간을 안심하고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여성환경연대는 여성들이 어떻게 월경 기간을 보내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90%가 넘는 이들이 사용하는 월경용품인 일회용 생리대를 조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2일부터 10일 동안 국내에서 판매 중인 생리대 462팩 및 해외 11개국의 생리대 66팩의 가격 및 생리대 31팩의 광고 문구, 인증마크 사용실태를 모니터링하고 정부의 관리 현황을 조사하였다.

이번 조사에서 중형 생리대 가격은 낱개당 359원으로 밝혀졌다. 이는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평균 가격보다 24.4% 높은 가격이다. 특히, 오버나이트형 생리대의 낱개당 평균 가격은 667원, 팬티형 생리대는 1,542원으로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또한, 해외 11개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생리대 값이 39% 비쌌다. 오버나이트, 팬티형, 탐폰과 같은 삽입형 생리대의 경우에는 한국이 국외보다 200원 이상 비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편 정부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자, 기업은 여성들의 불안을 파고들어 각종 시험성적서와 인증마크, 유기농 순면 커버를 강조하는 광고를 내걸고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인증마크가 붙은 유기농 생리대는 비유기농 생리대보다 28.5%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값비싼 생리대라고 해서 전체가 유기농으로 제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피부와 맞닿는 커버, 탑시트만 유기농으로 제작되는 제품이지만 유기농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여성들은 매달 찾아오는 월경 기간마다 안전과 비용 절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있다. 기업들이 각종 시험성적서와 인증마크 등을 내걸며 불안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데에는 '일회용생리대 건강영향조사' 결과 공개 이후에도 구체적인 생리대 안전 관리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의 탓이 크다.

"숨겨야 하는 그날"? 월경혐오 조장하는 광고

생리대 광고 역시 나아지지 않았다. 광고에서 월경은 '생리로 인한 불편함', '민감한 그날', '예민한 그날', '번거롭고 힘든 월경'과 같은 문구로 묘사되고 있었다. 또한 생리대를 사용시 맞닿게 되는 신체 부위는 사타구니, 외음부 등으로 정확하게 지칭되지 않고 피부, 그곳, Y존 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민감'하고 '예민'한, '지켜줘야 할' 신체 부위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여성의 몸을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수동적인 존재로 인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또한, 월경을 일상을 방해하는 상태로 인식하게 하는 등 월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긍정적인 변화도 일부 포착되었다. 12개의 광고에서는 월경혈을 붉은색 혹은 검붉은색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파란색 액체로 월경혈을 대체해 보여주는 생리대 광고들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월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만큼 월경을 불필요한 과정으로, 월경혈을 '처리'해야 하는 불결한 대상으로, 월경하는 몸을 보호가 필요한 수동적인 신체로 묘사하는 광고는 시대착오적이다. 2017년 부작용 피해 제보와 월경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통해 일회용 생리대 전성분표시제가 도입되고 건강영향조사가 진행되었듯이, 여성들의 적극적인 월경 말하기가 월경에 대한 인식, 문화, 제도를 바꾸고 있다. 이제는 생리대 광고에서도 '그날'이 아니라, 월경이라고 말하며 월경 터부를 깨나가는 모습을 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권리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이후, 6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다. 왜 여성들은 매달 불안 속에서 지갑을 열지 말지, 선택을 강요당해야 할까.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자신의 경험을 제보하고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등 생리대 안전관리 정책 변화를 요구한 것은 누구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현혹하는 광고 문구를 달고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는 특정 제품을 구매해야만 안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생리대를 사용해도 안심하고 월경할 수 있어야 한다.

2017년,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당시 식약처는 '일회용 생리대에 화학물질이 미량 포함되었더라도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으므로 평생 써도 안전하다'고 발표해 부작용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의 고통을 부정했다. 이는 개별물질의 독성 기준만을 산술적으로 평가했기에 벌어진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생리대 노출·독성평가를 시행하고 복합적인 화학물질 위해성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안전을 시장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나서 여성 건강을 위한 중장기 대책 발표와 생리대 안전관리 기준 강화를 통해 책무를 다해야 한다.

일회용 생리대와 같은 월경용품은 사용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없는 생활필수품이다. 월경용품의 가격대가 높게 형성될수록 사회적 소수자는 월경을 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몸이 불편하거나 장애가 있는 여성, 야외·이동 노동자 및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이 생리대 교체가 어렵거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인 사람 등 개인이 처한 사회·문화·정치·경제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다른 월경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여성환경연대는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도,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권리, 월경권 보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해 나가고자 한다.

▲ 여성환경연대 소속 단체 회원들은 비싼 값을 주고 인증마크가 부착된 생리대를 판매하는 기업과 '안전'을 방관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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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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