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존재' 여성, 누가 금기로 만들었나

[인터뷰] <피의 연대기>·<생리공감> 찍고 쓴 김보람 감독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이 세상에 태어나 나이를 먹어가고 의지와 상관없이 피 흘리는 존재로 자라난다. 한 달에 약 5일, 큰 숟가락 세 개 분량. 1년으로 치면 300밀리리터(㎖), 10년에 1.5리터(ℓ) 생수 두 병을 채우고 평생을 모두 합치면 10리터에 달하는 피."(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중)

여성이면 누구나 28일을 주기로 1년에 열두 번 생리를 한다. 평균적으로 12살에 시작해 50살 전후가 되면 끝이 난다. 생리를 하지 않는 임신 기간과 수유 기간 등 몇 개월을 빼도 여성이면 평생 400번 정도 피를 흘린다.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2018)와 탐구서 <생리 공감>(행성B 펴냄)은 바로 이 피에 대한 이야기다. 생리를 소재로 영화를 찍고 책을 쓴 김보람 감독을 지난 7일 만났다.

▲ 김보람 감독. ⓒ프레시안(최형락)

- 제목이 주는 느낌과 달리, <피의 연대기>는 유쾌한 영화다.

"관객 입장에서는 '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 제목 때문에 못 보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피의 연대기>는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영화다. 처음부터 남녀노소 모두가 즐겁게 보고 정보를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영화 앞부분에 '생일 축하합니다'를 개사한 '생리 축하합니다'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이 역시 제목 후보였다.

<피의 연대기>라는 제목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생리와 생리대의 역사를 다룬 연대기(年代記)이기도 하지만, '피 흘리는 존재'인 여성들의 연대(連帶記)이다. 이번에 영화를 제작하면서도 유투브나 블로그를 많이 참고했는데, 사회가 외면한 생리와 여성에 대한 정보가 개인의 노력과 연대 정신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 2018) 포스터.
실제 <피의 연대기>는 나이와 직업이 각각 다른 여성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엄마와 딸, 이모와 조카, 교사와 학생, 정치인과 전문가, 감독과 스텝, 그리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이 자신의 생리 경험을 말한다.

"핏덩어리가 쑤욱 나오"기도 한다는 생생한 이야기부터 다량의 생리혈이 사실은 다난성난소증후군 때문이었다는 슬픈 현실, 탐폰과 생리컵 시도가 오히려 아프기만 했다는 뼈아픈 실패담 등 '생리 말하기'는 나의 이야기인 듯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성의 몸은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생리를 한다. 인간의 뇌가 그 피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세시대 생리는 '이상하고' '불경하고'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성경>에는 "여자가 몸에서 피를 흘릴 때 그것이 여자의 몸에서 흐르는 월경이면 그 여자는 이레 동안 불경하다"(레위기 15장 19~21절)고 나온다. 동아시아 경전인 <혈분경(血分經)>은 여성이 생리와 출산 중 흘린 피로 강을 오염시켰기 때문에 <혈분경>을 읊고 용서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잘못된 인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 생리는 왜 '그런 게' 되었을까? 여성은 왜 '생리충'이 되었을까?

"한 여성이 지하철 의자에 핏자국을 남긴 채 도망간 사진이 SNS에 알려지면서 '생리 민폐녀' 논란이 일었다. 생리는 몸의 자연스러운 생명 활동인데 왜 우리는 생리를 감추기에 급급한 것일까. 행여 생리혈이 새기라도 하면, 여성은 비난의 대상을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되기 일수다.

섹스와 자위도 마찬가지다. 남성이 기록한 역사는 여성의 성욕을 마치 없는 일인 양 삭제했다. 그리고는 혼전 순결을 지키지 않는 여성은 음탕하고 문란하다고 비난한다. 낙태 문제도 혼전 섹스로 임신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나. 최근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런 시각은 지금도 모든 것에 내재되어 있다."

▲ <생리 공감>(김보람 지음, 행성B 펴냄) ⓒ행성B
부정당하고 삭제당한 생리는 흘러내리는 피를 막기 위한 선택지마저 좁혔다. '생리대 위해성' 논란에도 한국 여성 다수는 여전히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

김보람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는 지난 2년 동안 가능한 여러 종류의 생리용품을 구입해 직접 사용, 지금은 생리컵 사용자다. 하지만 몸이 아플 때는 탐폰을 쓰기도 한다. 그는 책 <생리 공감>에서 "세상은 넓고 질 안에 넣어 볼 것은 많다"(213쪽)고 했다.


- 시작부터 줄곧 일회용 생리대를 썼다. 그런데 갈수록 아프고 힘든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삽입형 생리대 사용은 주저하게 된다.

"<피의 연대기> 제작 전에는 마찬가지로 일회용 생리대를 썼다. 그러다 생리컵과 울탐폰 등 삽입형 생리대를 알게 되면서 바꾸었다. 처음에는 눈 질끈 감고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내 몸이야, 괜찮아'라는 마음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질 안으로 힘껏 밀어 넣어야 한다. 이물감을 걱정하지만, 제대로 들어가면 아무 느낌도 나지 않는다.

생리용품은 종류만 7~8가지가 된다. 그중 소프트탐폰과 소프트컵은 일회용으로, 착용 시 수영과 사우나는 물론 삽입 섹스도 가능하다. 일반적인 삽입형 생리대가 질관에 자리 잡는 것과 달리, 소프트탐폰과 소프트컵은 자궁경부 바로 아래에서 피를 막아낸다. 따라서 가장 멀리 보낼 수 있는 데까지 밀어 넣어야 한다."

질에 손가락을 넣고 길이를 재 자신에게 맞는 생리컵을 찾는 과정은 몸을 알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몸에 무언가를 넣을지 뺄지 결정하고, 그 물건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하면서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무엇보다 생리가 나오고 남성 성기가 삽입되는 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상대의 욕망과 주장에서 자신을 지키며 관계도 지켜야 하는 숱한 상황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 서지현 검사와 최영미 시인이 나서면서 #metoo 운동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과거의 일을 왜 지금 이야기하느냐며 저의를 의심한다.

"서지현 검사도 당시에는 무슨 일인지 판단이 잘 안 되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성추행/성폭행이 일어난 순간에는 막상 폭력인 줄 모른다. 몸가짐을 조심하라고만 했지,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행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관련 지식과 경험이 깊어지면서 그것이 폭력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가해자로 지목된 고은 시인은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접촉 없이도 격려나 위로는 가능하다. 본인이 상대를 만지고 싶어서 만진 의도적인 행위를 "격려"라며 숨기고 있다. 영화계도 문단 만큼이나 남성 중심적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피해를 당한다.

한국 사회는 누가 희생을 당한 후에야 비로소 움직이는데, #metoo가 늘고 있다고 해도 아직 부족하다. 그저 폭로로 끝날 뿐 속 시원하지가 않다. 피해자에게는 피해 사실을 폭로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인데, 누군가 계속 고통을 당하며 희생을 치러야 그나마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난다는 현실이 슬프다."


▲ <피의 연대기> 스틸컷. 김보람 감독이 자신의 할머니이자 가사은퇴노동자 여은주 씨에게 생리컵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 감독은 영화와 책 모두에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몸 교육을 통해 각자의 차이를 알아가며 이야기해야 사회 인식이 바뀐다는 것. 특히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여성주의(페미니즘)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생리 말하기'는 곧, 변화의 시작다.

여성들이여, 생리를 말하라! #metoo를 지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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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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