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괴롭힘 수준… "무릎 꿇고 벌 서"

괴롭힘금지법 무용지물…직장인 3명중 1명, 직장내 괴롭힘 피해 시달려

"사장이 혀로 입천장 소리를 내면서 개를 부르는듯한 제스쳐로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회식장소에서도 계속 바보라고 부르며 '야', '니' 호칭을 쓰며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강요하고, 손을 세게 비틀어 꽉 쥔다거나, 과자를 억지로 입에 직접 넣어주려고 해서 어쩔수 없이 받아먹기도 했습니다. 어깨나 등을 손으로 친다거나 장난으로 '죽여버릴까? 죽고 싶어?' 이런 말을 합니다. 모든 여직원이 보고 들었어요." (23년 7월 직장갑질119 오픈카톡 상담방)

'직장 갑질'을 막는 법 시행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직장인 3명 가운데 1명이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피해자 10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

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근로기준법 제76조(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4년을 맞아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333명(33.3%)이 최근 1년 사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음을 알렸다고 밝혔다.

법 시행 전인 2019년 6월 해당 조사 결과 당시 응답률 44.5%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감소했지만, 여전히 직장인 3명 중 1명 꼴로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었다.

언어 폭력은 물론, 체벌이 가해지는 등의 엽기적인 괴롭힘도 있었다.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오픈카톡 상담방 상담 내용 중에는 "사장이 입천장 소리를 내며 개를 부르듯 부릅니다", "니가 여기서 학벌이 제일 낮으니 나대지 말라고 합니다", "상사가 퇴근 후 술을 마시고 저희 집에 찾아와 억지로 자고 갑니다", "사장이 낸 업무 관련 문제를 틀리면 20분간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합니다", "괴롭힘 신고 후 다른 직원들에게 저와 말하지 말라는 회사 지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는 등의 고충을 호소하는 내용이 있었다.

ⓒpixabay

30대·비정규직·비사무직·저임금 노동자일수록 피해 多

응답자를 연령별로 나눠 보면 30대 괴롭힘 피해자가 43.8%로 가장 높았다. 30대의 괴롭힘 경험률은 20대(25.5%)보다 무려 18.3%포인트 높았다. 40대(32.9%)에 비해서도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취업난으로 인해 30대 신입사원이 늘어난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괴롭힘 피해 가능성도 컸다. 주 52시간 이하 근무자는 10명 중 2~3명이 괴롭힘을 경험했지만 52시간 초과 근무자는 48.5%가 괴롭힘 피해를 경험했다. 두 명 중 한 명 꼴이다.

괴롭힘 유형으로는 모욕·명예훼손(22.2%), 부당지시(20.8%), 폭행·폭언(17.2%), 업무외 강요(16.1%), 따돌림·차별(15.4%)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52시간 초과 근무자 3명 중 1명(36.8%)은 모욕·명예훼손을 경험했고, 4명 중 1명(24.3%)은 부당지시를 경험했다.

괴롭힘 경험 응답자 333명 중 48.0%가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답했다(심각 39.6%, 매우 심각 4.8%). 직장갑질119는 여성, 낮은 직급, 소규모 직장, 저임금, 불안정 고용, 비사무직일수록 심각한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 52.9%, 비사무직 51.6%, 5인 미만 민간기업 56.5%, 급여 150만 원 미만 60.0%가 심각한 괴롭힘에 시달렸다.

특히 임금 수준에 따라 괴롭힘 경험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 월급 150만 원 미만인 응답자는 60.0%가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반면, 500만 원 이상인 응답자는 그 절반인 32.4%만이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주된 가해자는 '임원이 아닌 상급자'였다. 괴롭힘 경험자의 40.5%가 임원이 아닌 상급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이어 사용자(대표, 임원, 경영진) 24.3%, 비슷한 직급 동료 20.4%, 고객·민원인·거래처직원 5.4%, 원청업체 관리자·직원 3.6%, 사용자 친인척 3.0%, 하급자 2.7% 순이었다.

여성·2030은 피해자가 직장 떠나

괴롭힘 피해자 10명 중 1명(9.3%)은 지난 1년간 자해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했다. 연령별로는 30대가(15.2%), 고용형태로는 비정규직(10.9%)이 정규직(8.2%)보다, 비사무직(10.3%)이 사무직(8.4%)보다 상대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컸다.

괴롭힘을 당한 이후 직장을 떠나고 싶었다는 응답은 여성(62.1%)이 남성(37.2%)보다, 20대(60%)와 30대(53.3%)가 40대 이상보다 훨씬 많았다.

괴롭힘은 피해자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괴롭힘을 경험한 이후 신체적 건강이 나빠졌다는 응답률은 20.1%였고 정신적 건강이 악화되어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겪었다는 응답은 37.8%에 달했다.

하지만 진료나 상담을 받았다고 답한 비율은 7.5%에 그쳤다. 응답자 3명 중 1명(36.6%)은 진료나 상담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진료나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응답은 정규직(58.5%)이 비정규직(52.2%)보다,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61.3%)가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51.8%)보다 높게 나타났다.

괴롭힘 피해자는 그저 참으면서 괴롭힘을 견뎌냈다.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 방법'을 물어본 결과,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가 65.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다'(27.9%),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23.7%) 순이었다(중복응답).

용기를 내 괴롭힘을 신고한 이는 피해자 333명 중 28명에 불과했다. 이들의 60.7%는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이후 지체 없이 객관적 조사, 피해자 보호 등 회사의 조사·조치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응답자 비율이 64.3%에 달했다. 심지어 4명 중 1명 이상(28.6%)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당했다.

괴롭힘으로 인해 피해자가 직장을 그만두는 경향은 여성(45.2%)이 남성(22.3%)의 두 배 수준이었다. 비정규직(37%)은 정규직(21.5%)보다, 비사무직(32.9%)은 사무직(32.9%)보다, 20대(40%)는 50대(20%)보다 회사를 더 많이 그만뒀다.

다만 노동조합 조합원은 단 한 명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반면 노동조합 비조합원 31.7%는 괴롭힘 경험 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음에도 신고하지 않은 이유. ⓒ직장갑질119

신고해도 개선 기대 안 해…약자는 희망도 없다

괴롭힘을 신고하지 않은 315명은 미신고 이유로 10명 중 7명(69.5%)이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역시 여성,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가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 신고를 포기했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 정규직, 고임금 노동자는 '향후 인사 불이익'을 신고 포기 이유로 꼽았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어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로 "법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는 점을 꼽았다. 직장갑질119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간접고용,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은 애초 법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관련해 직장갑질119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해야 하는지를 묻자 응답자 94%가 '적용해야 한다' 답했다. 간접,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도 94.9%에 달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더 열심히 보호해야 할 일터 약자들은 이런 법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상대적으로 더 모르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9일부터 15일까지 온라인 조사로 실시됐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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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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