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하기 위해 정치하는 사람들

[정희준의 어퍼컷] 악마의 무한루프에 갇힌 민주당

2017년 탄핵사태 이후 민주당은 적폐청산을 내세우며 기세등등하게 집권당이 됐지만 실상 해낸 게 없다.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은 '개혁완수'를 외치는 민주당을 180석 거대 정당으로 만들어주기까지 했지만 0순위 개혁과제였던 검찰개혁은커녕 오히려 되치기를 당해 개혁 대상이었던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대권을 내주고 만다. '민주당 연출'의, 역사에 길이 남을 코미디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졌잘싸"란다.

청년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아직도 검찰개혁, 적폐청산, 친일잔재청산을 외치는 민주당 정치인들을 보며 청년들은 절망하는데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상임위, 청문회 석상에서 코인 거래를 하며 밤낮으로 돈벌이에 매진한다. 전당대회에서는 수십명 의원들에게 수백만원짜리 돈봉투를 뿌렸다고 한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밥값 정도," "관행"이란다. 오히려 "민주당의 도덕적 기준이 너무 높아서 문제"라며 적반하장이다.

지금 민주당은 공동의 가치도, 목표도 상실한 채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도 원인 중 하나겠으나 사실 민주당에서 리더십이 사라진지 오래 됐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이후 리더가 없었다. 오죽하면 십여 명의 초선 의원들로 구성된 '처럼회 주장이 민주당 의견'이라는 말까지 돌았을까.

최대 계파 686

그렇다면 민주당엔 왜 리더십이 없을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자들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바로 누구? 당내 다선 의원들이다. 386에서 시작해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686 의원들과, 있는지 없는지 도무지 잘 보이지는 않은데 때만 되면 나타나 세몰이에 나서는 민평련 의원들이다. 오늘은 효율적 글쓰기를 위해 686만 다루겠다.

686은 선거흥행을 고려한 YS와 DJ의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운동권 386'에서 '정치 386'으로 변신해 제도권에 화려하게 입성한다. 1996년 김민석이, 2000년 송영길, 우상호, 김영춘, 이인영, 임종석이 여의도 정치에 진출했다. 한때 이들은 가장 각광 받는 정치세력이었다. YS와 DJ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지역구를 선사했고 자금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수많은 언론을 통해 부잣집 도련님 대접 받으며 한국정치의 미래로 표상화되었다.

그러나 686은 파벌이나 계파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왜? 이들은 스스로 주축이 되어 정치세력을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각자 개인적으로 뿔뿔이 정계에 들어와 상도동계, 동교동계 선배들에게 잘 보이기 바빴다. 구심점도 없었고, 그러니 공통의 가치나 목표가 있을 리도 없다. 서울 강북과 경기도의 좋은 지역구를 차지하고선 호남 출신 유권자에 의존하며 선수를 쌓아가는 기득권이 된 지 오래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대외적으로는 개혁을 앞세우지만 당내에선 잇속을 챙기는 그룹'이 되어있었다. 이제는 당의 외연 확대에 걸림돌이 되어버린 '개혁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이들이 지금 당의 최대 분파가 되었다. 후속부대로 2004년 탄핵정국 때 운동권 출신 '탄돌이'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그래서 지금의 민주당은 '2004년 체제'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딱 20년 전 체제다.

또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초기 장차관 63%, 청와대 70%가 적어도 '생물학적 86'이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또 민주당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현재 민주당 의원 세대별 분포를 보면 30대는 4명(2.4%), 40대 14명(8.4%)으로 3040세대가 10.8%에 불과한 반면, 50대 80명(47.9%), 60대 65명(38.9%), 70대 4명(2.4%)으로 50대 이상이 무려 89.2%를 차지한다. 이들이 어찌 2030세대의 고민을 알겠는가!

핵심은 무능

이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지 생물학적 나이가 많아서도 아니고 정치를 오래 했기 때문도 아니다. 첫째, 무능하기 때문이다. 이들 686은 30년 가까운 세월 그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고사하고, 대통령 후보는커녕 대권주자 한 명 만들어내지 못한 정치집단이다. 지난 대선 때도 결국 혜성과 같이 나타난 기초단체장 출신 변방의 정치인 이재명이 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참고로, 이재명 다음으로 지지율 높은 686정치인 역시 (686운동권을 적대시하는) 안철수다.

수준을 좀 낮춰서 광역단체로 가볼까? 686 중 광역단체장을 한 사람은 이광재, 안희정, 송영길, 김경수 뿐이다. 이중 이, 안, 김은 노무현 때문에 나중에 정치에 뛰어든 사람들이다. 정작 '정통 운동권 386' 송영길은 당대표 시절부터 잦은 설화로 당대표 리스크를 선사하더니,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난데없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 참패하고, 지금은 돈봉투의 주인공이 되어, 지난 대선패배의 책임이 심상정에게 있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무능에 더해 도덕적이지도 않은 민주당

686이 민주당에 해로운 둘째 이유는 이들이 무능할 뿐 아니라 정의롭지도 않다는 점이다. 권위주의 정권 때 민주당은 도덕성의 깃발을 들고 선거를 치렀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나 민주당 계열 정당이나 '50보 100보'란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뒤집어져서 '100보 50보'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2020년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 의석수 합이 180석이었는데 합당을 한 지금 민주당 의석수는 167석이다. 왜 그런가 봤더니 (국회의장이 되면서 탈당한 김진표 의장 제외하고) 전체 무소속 의원 9명 중 비위혐의로 제명당하거나 자질 논란, 거짓해명 등 때문에 민주당에서 탈당한 의원이 무려 8명이다. 국민의힘 소속 단 1명을 제외하면 전원이 민주당 소속인 것이다.

김남국, 김홍걸, 박완주, 양정숙, 양향자, 윤관석, 윤미향, 이성만 의원이 그 주인공들이다. 현재 복역 중인 이상직 전 의원 빼고도 이렇다. 어쩌다 민주당이 이렇게 처참한 수준으로 추락했는가. 도대체 공천을 누가 했나? 국민의힘이 했나?

686을 위시해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툭하면 입에 올리는 게 '노무현 정신'이다. 노무현 정신에 걸맞게 행동한 민주당 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민주당에 의인 열명만 있어도 비판을 거두겠다. 아니, 한 명이라도 있나?

민주당 최고의 가치는 의리?

흔히 민주당 내 온정주의가 문제라고 한다. 이는 '온정주의'라는 언어에 대한 모욕이다. 민주당은 그냥 한때의 인연을 가지고 똘똘 뭉친, 불굴의 내로남불 정신으로 무장한, 의리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저잣거리 건달과 다를 바 없다. (실제 그들 스스로 '건달의 세계'라고 한다.)

민주당 내 특히 다선 의원 상당수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2020년 총선 후 김종민 의원은 또다시 '적폐청산'을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햇수로 4년이 되도록 검찰개혁이든, 언론개혁이든 그 어느 것도 해내지 못한 민주당 중진이 뚱딴지 같은 발언을 한다. 우원식 의원은 난데없이 '친일잔재청산'을 외친다. 모두 과거에 함몰되어 있다. 청산은 하지도 못하면서 주야장천 청산타령이다.

'독재'와 '청산'만 외치는 민주당, 그리고 스텔스 정치인

이들은 2030세대의 고민도, 지금의 글로벌 트렌드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식견이 없으니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과거만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독재'와 '청산'만 외친다. 이들은 도대체 왜 이럴까?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간단하게 설명한다. "아는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아예 보이지 않는 신기한 정치인도 있다. 686 황태자 중 한 사람인 이인영 의원. 우원식, 설훈, 인재근, 노영민 등과 함께 대표적 민평련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통일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데 장관 때부터 그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지금도 정치를 하는지 살아있는지 알 수가 없다. 스텔스 정치인이다.

지금 민주당엔 정치를 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하는 게 아니라, 국회의원을 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들의 특징은 매우 무능하다는 점이다. 아는 건 '독재'와 '청산' 밖에 없다. 이런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리이다. 초선 의원들은 다선 의원들에게서 이를 전수 받는다. 민주당은 지금 악마의 무한 루프에 갇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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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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