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외국인거리가 된 상업 중심지 '평택로 88번길', 그 이유는?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외국인과 다문화, 도시재생사업 자산으로 연결해야

경기도 평택시 평택역 인근 평택로 88번길 주변에 '외국음식거리'가 있다. 중국, 태국, 베트남, 인도, 네팔 등 다양한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 이주자들이 고국의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어느덧 이 길을 '외국음식거리'로 불리게 되었다. 음식점 뿐 아니라 여행사, 식료품점, 휴대폰 판매점, 노래방과 당구장 등 외국인 이주자들의 공간이 점차 형성되고 있다.

세계화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이주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에스닉 비즈니스 업체들을 도시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거리가 형성되는 것은 언뜻 보기에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느껴진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안산시 원곡동처럼 공단 주변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곳들은 이러한 변화를 겪어왔다.

그러나 평택로 88길 일대는 원곡동과 또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이 곳은 비교적 최근까지 평택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자 상업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원도심의 일부였다. 그러나 평택시의 중심 상권은 외국인 이주자의 공간으로 점차 변모하고 있다.

이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평택의 원도심의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원도심에는 무슨 일이 발생하였기에 외국인 이주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거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평택시의 변화를 둘러싼 경제지리의 역동성을 살펴보자.

인구 32만 명 '도농복합도시'에서 인구 58만 대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평택시

경기도 남부, 즉 수도권의 주변부에 자리한 평택시는 수도권의 광역화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평택시는 1995년 도농복합도시로 지정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도시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도농복합도시는 도시(동) 지역과 농촌(읍, 면) 지역이 통합된 형태의 시를 의미한다. 도농복합도시의 주요 목적은 도시와 농촌 지역을 하나의 행정단위로 통합시켜 도농균형발전을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평택의 경우 농촌보다 도시를 중심으로 지역의 발전과 성장이 이루어졌다. 평택시의 성장은 도시화율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평택시민신문>(2008)에 따르면 1999년 평택시의 도시화율은 75.4%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의 도시화율 87.6%에 비해 밑도는 수치였다. 2006년 평택의 도시화율은 86.3%로 증가하였고 우리나라 전체의 도시화율은 90.3%를 기록했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평택의 도시화율이 전국 평균에 비해 많이 상승한 것이며 동시에 전국 평균의 도시화 수준과 비슷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시화율의 상승은 농업에서 2,3차 산업으로의 변화를 수반한다. 실제로 같은 기간 동안 제조업 사업체의 수는 571개에서 1237개로 2.2배가 증가했고, 종사자수도 약 3만 명에서 6만 5000명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추세는 최근 더 뚜렷해지고 있어 이제 평택은 특례시의 기준인 인구 50만을 가뿐히 넘겼다. 제조업 종사자도 2021년 기준으로 9만 5000명을 상회하였고, 전체 산업의 종사자 수는 27만 명이 넘을 정도이다.

제조업체의 수와 종사자의 수의 급속한 증가는 곧 도시 공간에서의 주택 부족을 초래했다. 이에 평택시는 청북택지지구, 용이지구, 소사벌지구 및 고덕국제화지구 등의 신도시와 택지개발을 시도하여 도시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하였다.

그 결과 2010년대부터는 택지개발이 완료되고 신도시의 입주가 시작하면서 평택시 인구구성의 변화가 발생한다. 일찍부터 주택가와 상점 및 시장이 형성되었던 평택역 일대(행정동으로 통복동, 원평동 및 신평동의 일부)의 인구는 점차 감소한 것이다.

반대로 신도시와 택지개발이 이루어진 비전동, 용이동 및 고덕동 등의 일대에는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신도시 입주 초기에는 상권의 발달이 미약하여 평택역 일대의 상권도 유지되었다.

그러나 점차 신도시로의 입주가 성숙한 단계에 이르고, 상권이 발전하게 되면서 원도심의 상업기능은 신도시로 이동했다. 상가의 공실이 증가하여 건물 전체가 비어 있는 경우도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낙후된 시설은 점차 방치되면서 썰렁하고 침체된 도시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성장하는 평택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원도심의 모습이다.

원도심 초등학생 4800명에서 270명으로 줄어

원도심의 쇠퇴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는 초등학교 학생 수의 감소다. 평택 원도심에 위치한 '성동초등학교'는 1913년 개교 이래 1960년대까지 평택의 유일한 초등학교였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도시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초등교육의 수요가 급증하자 인근의 평택초등학교, 평일초등학교 등등으로 분리될 정도로 지역 초등교육의 뿌리로 기능한 곳이었다.

이 학교의 학생 수는 가장 많았을 때 4,800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으나, 2022년에는 3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입학생의 규모도 점차 줄고 있다. 6학년은 60명이지만 1학년은 37명에 불과하다.

반면 다문화학생의 수는 증가하고 있어, 이들을 위한 다문화학급이 신설되었다. 택지개발이 완료되고 인구가 급증하자 2016년에 개교한 비전동의 '평택이화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2022년 1000명이 넘는다는 점은 원도심과 신도시의 차이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사실 원도심의 쇠퇴는 평택시만 겪고 있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부산이나 대구와 같은 광역시에서도 원도심의 쇠퇴는 지속적인 문제로 지적됐으며, 대도시가 아니더라도 도시 기반 산업의 쇠퇴나 이전을 경험했거나 교외에 신도시가 건설된 도시들은 원도심의 쇠퇴를 겪고 있다. 물리적 노후화와 도심 기능이 쇠퇴한 원도심에서 나타나는 인구의 감소는 곧 지역사회의 사회·문화적 응집력을 저해하여 공동체의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원도심의 공실률 증가는 임대료와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려 지방정부의 지방세 수입을 감소시키고, 이는 사회기반시설의 투자 저하로 이어져 결국 원도심의 물리적 환경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쇠퇴를 더욱더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쇠퇴하는 원도심에서 나타나는 외국인 이주자의 공간 

원도심은 풍부한 역사·문화 자산을 갖고 있으며, 지역의 기반시설 등이 주로 집중된 곳으로 접근성이 좋은 특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쇠퇴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업무나 상업, 행정 및 문화 등의 기능이 집중되어 도시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과 매력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는 원도심의 활성화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원도심의 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평택시도 평택역 앞에 복합문화광장을 조성하여 원도심 활성화를 모색하는 정비방안을 마련했다. 신도시 지역과 원도심 간의 격차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평택역 중심의 원도심의 활성화는 도시의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사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평택역 원도심 마스터플랜은 시민 중심 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상권 활성화를 위한 주차장과 시민 편의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리고 성매매 집결지와 노후된 버스터미널을 민간 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도시의 공간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낙후된 원도심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모색된 방법들이다.

그런데 이 마스터플랜은 원도심 일대의 변화를 간과하고 있다. 바로 쇠퇴한 원도심에 들어와 새롭게 활력을 만들고 있는 외국인 주민들이다. 원도심 일대의 일부 지역에서 내국인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외국인의 증가가 확인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평택로 88길 일대에는 외국인 이주자들이 운영하는 에스닉 비즈니스 업체들이 생겨났고, 성동초등학교에는 다문화학급이 운영될 정도이다. 2021년 기준 평택시 전체 내국인 대비 외국인의 비율은 약 7%인데, 원도심 일대는 그 비율이 10%를 상회한다.

통복동의 경우는 면적이 매우 작고 주거지역이 협소하며, 내국인 인구 또한 절대적으로 적어서 생겨난 예외적 수치이긴 하지만 약 33%를 기록할 정도다. 반면 비전동은 외국인의 비율이 3%에 불과하여 원도심과 신도시의 차이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외국인 주민들은 신도시로 이동한 내국인의 빈 자리를 새롭게 채우고 있다. 원도심은 교통 편의성과 접근성이 좋고, 인근에 전통시장을 비롯한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다. 평택역 주변은 원도심이자 시외·고속버스 터미널이 함께 위치한 평택의 관문이다. 따라서 외국인 이주자들의 유입과 이동이 많을 수밖에 없다.

원도심의 인구감소, 물리적 환경의 낙후와 더불어 발생한 부동산 가치의 하락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동하고 있다. 평택역과 터미널을 중심으로 확보된 충분한 외국인 유동인구와 저렴해진 임대료는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린 결혼이주자나 이주노동자들을 사장님으로 변모시키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원도심 쇠퇴의 이면이자 원도심의 새로운 경제 활성화이다.

다문화공간, 원도심 도시재생의 자산이 될 수 있어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원도심과 신도시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될 것이며, 외국인이 증가하는 원도심은 점차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내국인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원도심의 도시재생은 이를 방지하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원도심 활성화 계획에 외국인 주민과 이들이 형성하는 다문화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쇠퇴하는 원도심에서 떠나는 내국인의 빈 자리를 외국인이 채우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내국인의 유출은 문제시되고, 외국인의 유입은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지역 유입은 곧 이들로 인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원도심의 쇠퇴 정도를 낮춘다는 점에서 외국인과 이들의 다문화는 도시재생사업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지자체에서 조성해 온 다문화 특구나 다문화 특화거리는 외국인 주민들이 형성해 온 다문화를 자산으로 파악하여 지역개발에 활용하고자 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무엇이 특화되었는지 불분명하고, 다른 거리와 비슷하거나 문화적 다양성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말 그대로 '다문화'없는 다문화거리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반대로 원도심은 다문화 자산이 형성되고 있지만, 이 자산이 도시재생사업과 도시발전의 자산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 지난 5월 14 평택시청 앞 광장에서 외국인주민, 다문화가족, 일반시민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6회 세계인의 날 행사’가 진행되었다. ⓒ평택시

미국의 도시계획가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으로 낡고 오래된 건물의 유지와 인구의 다양성을 제시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다문화거리가 아닌 원도심에서 형성되고 있는 다문화공간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다문화를 역동성과 활력의 원동력으로 생각하고 도시재생의 자산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만 다문화공간은 외국인 주민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국인과 외국인의 상호 이해와 소통이 뒷받침될 때 제대로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만의 분리된 공간이 아닌, 내외국인의 혼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소셜 믹스(social mix)가 도시재생에 반영될 수 있길 바란다.

■ 저자소개

고민경 교수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지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조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한국경제지리학회 특별위원회 상임이사 활동과 함께, 이주와 지역개발 등과 관련된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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