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핵관' 이동관이 돌아온다…'매운맛' 버전 'MB시즌2' 예고편

[박세열 칼럼] 윤 대통령은 언론판에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려 한다

이명박 정부(2008~2012) 초기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을 지낸 이동관은 '핵관'이란 말을 처음으로 유행(?) 시켰다. 이동관 전 수석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비실명 보도를 요청하며 자신을 '핵심 관계자'로 칭해달라 하곤 했다. 그러면 각 기자들은 소속사에 '이핵관'이라는 레테르를 붙여 정보보고를 올렸다. 이동관과 '핵심관계자'의 줄임말 '핵관'을 활용한 작명이었다. 이 전 수석이 비실명 보도를 요청하는 경우의 상당수는 '청와대' 이름으로 '국회'를 비판할 때가 많았다. '정치 불신'을 틈을 공략해 대통령이 된 'CEO 대통령' MB의 '여의도 때리기'는 잘 먹히는 '전략'이었다. 

청와대가 국회를 직접 비판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어서, "청와대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청와대발 국회 비판 보도가 일제히 쏟아질 때면 여의도 사람들은 "이동관인 것 다 아는데 왜 비실명 보도를 요청하는 거야"라며 툴툴거렸다. 

'이핵관'이라는 말에서 재미있는 점은 첫째, 1급 비서관 수준인 대변인이 국회 비판 논평을 비실명으로 했다는 점, 둘째, 실장과 수석급들을 제치고 스스로를 '핵심 관계자'로 지칭했다는 점 등이었는데, 진성 '친이명박계'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MB 측근 자리를 꿰찼다는 점에서 그의 '처세술'은 항상 화제거리였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동료 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사주가 편집국에 방문할 때 상황을 미리 알고 남들보다 먼저 뛰어 나가 완벽한 의전 태세를 취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MB의 'YSE맨'이었고, '강경파 참모'였다. 정치인 출신 수석들도 감히 못하는 '야당 비판', '친박 비판'을 '핵관'의 이름을 달고 스스럼 없이 기자들에게 늘어놓았다는 것은 'VIP의 의중을 읊는다'는 묘한 권위를 청와대 안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전 수석이 2008년 정권 출범때부터 대변인을 지내다 2009년 9월 차관급인 홍보수석으로 영전해 2010년 7월까지 직을 수행했을 시절 MB의 지지율은 참담했다. 2008년 한미쇠고기 수입 협정 파동(촛불집회)이 있었고, 그해 연말엔 여권 내부 권력 투쟁이 불거졌다. 

언론계만 보더라도 2009년 9월에는 손석희 전 앵커가 100분토론에서 하차했고, 2010년엔 방문진 김우룡 이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쪼인트' 까(이)고 매도 맞고 해서" MBC 인사가 이뤄졌다는 게 <신동아> 인터뷰를 통해 밝혀진다. 나중에 무죄가 나온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있었고, 그걸 토대로 그를 사장직에서 내쫓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족벌 언론의 방송 진출 밑그림이 그려졌고, 2009년 7월 22일 국회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이 주도한 희대의 '미디어법 날치기' 사건이 있었다. 

이것은 '언론 장악 시나리오'로 불렸고, 그 자욱한 포연 속에 '핵심부'에 그가 있었다. 언론 정책에 관여하는 홍보수석, 스스로 청와대 '핵심관계자'를 자처한 이동관 전 수석이 MB정부의 '언론 장악 시나리오'와 무관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교롭게도 2010년 7월 이동관 전 수석이 청와대를 딱 그만두자마자 국정 기조 전환이 이뤄진다. 2010년 8월 15일 8.15경축사에서 MB는 '친서민중도실용' 슬로건을 내세우고 국정 기조 전환을 선언했다. '이핵관'과 같은 강경파가 빠지면서 박형준(현 부산시장)과 같은 온건 실용주의자들이 청와대 주도권을 잡았다. 아니, 어쩌면 '이핵관'은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한 장기말이었을 것이다. '친서민중도실용' 내용이야 어찌됐든, MB는 국정 기조 전환으로 지지율 상승세를 타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윤 대통령은 '윤핵관'들의 활약이 못 미더웠는지 강경파 YES맨 '원조 핵관'을 장관급인 방송통신위원장에 기용하려 하고 있다. 방통위는 KBS, MBC 등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민영방송과 종편에도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당장 방송국 이사진 구성이나, YTN 민영화 등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쯤에서 또 떠오르는 추억이 이름이 있다. '방통대군'. MB의 멘토이자 미디어법의 산파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다. 요약하면 2008년 MB의 '이핵관'이 2023년 새로운 '방통대군'으로 영전하는 셈이다.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함의는, 윤석열 정부가 '언론'과 관련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할 수 있을 거란 예상이다. 

이 정부의 언론관을 엿볼 수 있는 사례들이 많다. 특히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한 장면이 동영상으로 찍혀 보도된 후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지난 2일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워크숍에 참석해 "저희들이 느끼기에는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집권 1년차 윤석열 정부 지지율이 낮은 이유가 언론  때문이라는 인식이다. MBC는 '국익'을 저해한 언론으로 찍혔고, '용산 시대의 상징'이라던 도어스테핑은 사라져서 지금껏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석열을 검색하면 비판 기사가 8페이지"라는 걸 근거로 언론에 문제가 있다 윽박지른다.

가뜩이나 인사 기용 면에서 MB 정부 시즌2라고 불리고 있는 가운데, 이번 인사는 MB정부 시즌2의 역주행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예 거꾸로 간다. MB가 '강온 전략'으로 국정 운영 안정화를 위해 강경파인 '이핵관'을 내렸다면, 윤 대통령은 '법 기술자' 강경파에 '언론 기술자' 강경파를 올리고 있다. 언론에 대한 불만이 소환된 '구원투수' 이동관의 등판은 윤석열 정부 언론정책이 방향성을 점지해 준다. 그들에게는 '매운맛' 스핀 닥터가 필요했고, '언론장악의 황금기'였던 MB정부의 인사 파일을 뒤져 그 적임자를 찾아냈다. 

대통령실은 "요즘 들여다보면 저희들이 대선 때 받았던 전국민의 지지를 다시 회복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자신감의 발로는 앞으로 윤 대통령의 인사 과정에서 구체화될 것이다. '인사 시즌 2'가, '청문회 정국'의 신호탄은 이동관 전 수석이 될 것이다. 그는 MB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냈지만 단 한번도 인사청문회를 거쳐본 일이 없다. 자녀의 학폭 문제부터 방송 장악 의혹까지, 쟁점들이 수두룩하다. '이핵관'은 인사 검증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까? 사법 리스크도 안고 있다.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의혹으로 면직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은 면직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을 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새로운 정국이 열릴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언론판에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바이든 날리면'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동관 전 홍보수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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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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