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찰이 저희 집회를 폭력적으로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경찰과 몸싸움을 하지 맙시다. 때리면 맞읍시다. 윤석열 정권의 하수인 경찰의 민낯을 온국민에게 보여줍시다"
경찰이 최루액의 일종인 '캡사이신 분사'를 활용한 시위 진압을 예고한 가운데 31일 민주노총 집회에선 비폭력 지침이 울려퍼졌다. 이날 경찰은 민주노총 연설자들의 발언 도중 10여 차례 이상의 마이크 테스트를 하며 집회를 방해했지만 별다른 충돌없이 집회는 종료됐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4시 20분 경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2만여명의 노동자(주최측 추산)가 참여한 민주노총 총력투쟁 대회를 열었다. 민주노총 각 산별노조는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앞, 서대문구 경찰청 앞, 고 양회동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안치된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 등 도심 곳곳에서 사전집회를 열고 세종대로 일대로 집결했다.
이번 집회에서 눈에 띄는 건 캡사이신 분사기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을 메고 있는 경찰들이었다. 현장 대기한 경찰들 주변에는 '예비캡사이신'이라는 글자가 적힌 가방들이 곳곳에 놓여져 있었다. 경찰은 이번 집회 시위 진압을 목적으로 8개 기동단 80개 중대(5000여명)를 배치했고, 최루액의 일종인 캡사이신 희석액과 분사기를 준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 2017년 3월 이후 현장에서 사라진 캡사이신을 부활시킨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기동복을 입고 대책회의에 참석했다. 윤 청장은 "(캡사이신 분사가) 강경 진압이란 말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거듭 캡사이신 활용을 강조하며 이날 집회 관리에 공적을 세운 경찰을 포상하겠다며 13명 특진을 내걸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노조 산별 위원장들이 발언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아아-', '치이이-', '마이크 테스트', '후후-' 등 한 시간동안 15차례 이상 마이크테스트를 이유로 한 소음을 내며 연설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연설 도중 "자꾸 자극하지 마시라"며 "경찰은 시험방송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오늘 경찰은 폭력을 유발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경찰청장이 나서서 특진을 내걸고 캡사이신을 쏘라고 날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공농성중인 노동자를 두들겨 패서 피투성이로 만들어 끌어내리고, 특진에 눈이 멀어 양회동 동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경찰이 폭력배고 가해자"라고 지적하며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평화롭게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날 새벽 포스코 고공농성 현장에서 경찰의 곤봉에 피흘리는 노동자의 모습을 보면서 막장으로 가는 반동의 시대가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며 "윤석열 검찰 독재는 역사의 수레를 32년전 군사독재 노태우 정권 시절로 돌려놓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금속노조의 5.31 총파업은) 양회동 열사를 죽이고 노동자들에 가하는 국가폭력에 대한 정당방위"라며 "민주주의 파괴에 맞선 정의로운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의 발언 중 경찰은 채증을 예고하며 해산을 요구하는 경고 방송을 했다. 17시 10분 경 경찰은 "17시가 지났다"며 "민주노총은 심각한 불법을 초래하고 있다"며 해산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집회는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20여분 늦게 시작해 종료에 지연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민주노총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무대에 올라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증을 찢는 마무리 의식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찰은 재차 해산 요구를 했다. 민주노총 산별노조 위원장들은 "오늘부터 우리는 더이상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윤 대통령의 당선증을 찢었고, 오후 5시 20분 경 집회는 종료됐다.
집회가 종료된 뒤 집회 사회자를 맡은 한성규 부위원장은 "쓰레기를 최대한 모아달라"며 "있었던 집회자리를 개끗이 정리하자"고 독려했다. 조합원들은 자신이 머물던 자리에 있던 쓰레기를 주워서 해산했다.
한편, 이날 오후 7시부터는 세종대로에서 '양회동 열사 투쟁 노동시민사회종교문화단체 공동행동'이 주최하는 추모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문화제가 끝난 뒤 1800여명이 경찰청까지 행진하는 계획이 마련돼 있다. 이날 민주노총 건설노조 집회 참석자들이 이 문화제에 참석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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