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성폭력 피해자를 되레 가해자라며 감옥에 보냈습니다"

국가를 대상으로 한 '미투', 최말자 할머니의 마지막 외침

"대한민국의 검사는 헌법을 토대로 남녀의 평등과 인간 존엄을 근본으로 삼아 죄를 구별하고 그에 대한 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사건에서 검사는 엄연한 성폭력 피해자를 과잉 저항이라고 오히려 가해자를 만들어 감옥에 보냈습니다."

'강간범의 혀를 깨물었다는 죄'로 옥살이를 한 56년 만의 미투 당사자 최말자 할머니가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최 씨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59년 전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을 촉구하는 '마지막 1인 시위'를 마치고 최 씨 본인과 가족·지인 등 20명이 작성한 자필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최 씨의 사건은 이른바 '56년 만의 미투'라 불린다.

지난 1964년, 당시 18세였던 최 씨는 자신을 강간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6개월간의 옥살이 끝에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2018년 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을 보고 용기를 낸 최 씨는 2020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라며 재심을 거부했다. (관련기사 ☞ 강간범 혀 깨물고 '가해자' 된 여성, 법원은 "어쩔 수 없었다" 재심 거부)

올해로 77세를 맞은 최 씨는 "너무 긴 세월을 고통 속에 살았다"라며 지난 2일부터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42명의 시민 지원자들이 이에 연대하여 지난 30일까지 약 한 달간 법원 앞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해왔다.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마지막 1인 시위를 진행한 최말자 할머니가 연대자들과 함께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이날 최 씨는 릴레이 1인 시위의 마지막 순서로 다시 나서 피켓 시위를 진행한 후 본인과 가족·지인 등 20명이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 및 시민 참여 서명지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최 씨 사건의 재심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지에는 이날까지만 1만 5685명이 참여해 연대의 뜻을 밝혔다.

최 씨는 이날 법원에 제출한 자필 탄원서에 "국가로부터 받은 폭력은 제 삶을 평생 죄인이라는 꼬리표로 저를 따라 다녔습니다"라며 "국가는 나의 인권에 대한 책임을 보상해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최 씨의 재심 청구 사유 핵심은 적법절차를 무시한 수사 남용에 있다. 1964년 당시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성폭행 미수 건을 자의적으로 배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심 청구 당시 최 씨는 △영장 없는 구속 △진술 거부권, 변호인 선임권 미보장 등 위법수사 정황을 주장한 바 있다.

다만 재심 청구를 접수받은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지난 2021년 "(사건 당시) 공판절차에서 이루어진 검증의 방법, 감정의 내용, 법관의 언행 등이 상당히 부적절하고 피해자의 인격을 침해했을 우려가 있었다"면서도 이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고 말하며 최 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최 씨 측 대리인단 단장을 맡고 있는 김수정 변호사는 지난 2일 재심 촉구 기자회견에서 "(변호인단은) 당시 재판이 적법절차를 어김으로써 위법한 판단을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라며 "이 사건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무죄가 되는 사건이 아니라 그 당시도 무죄고 지금도 무죄인 사건"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날 최 씨는 "이 사건은 단지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부끄러운 변명이 아니"라며 "억울한 판결로 한 사람의 인생이 뒤집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정의로운 판단으로 책임져야 합니다"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서명으로 연대를 표한 시민들 또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인정해주세요", "반드시 재심 개시하여 공정한 판결을 할 것을 요청합니다", "과거의 재판부의 잘못을 현재의 재판부가 바로잡아야 합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은 말이 안되는 핑계입니다", "어떤 시대이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라는 등의 의견을 더했다.

▲최말자 할머니가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최말자 할머니가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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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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