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무차별 여성폭행 … 여성은 '때리고 싶고, 때릴 수 있는' 존재?

7일간 여성폭행 보도 사례만 13건 … "양형기준에 '혐오' 반영해야"

"이렇게 심한 폭력으로 이어질 상황이 아닌데 '적극적인 폭력 행위'로 나아간 경우들이 있다. 상대가 노인이라서, 장애인이라서, 혹은 여성이라서 더 적극적으로 행사된 폭력, 이것은 일종의 차별범죄다." -이은의 변호사

22일 서울고법 형사4-1부(장석조·배광국·김복형 부장판사)는 강제추행 및 살인미수 등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A 씨에게 징역 9년의 1심 판결을 그대로 선고했다. A 씨는 지난 2021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귀가 중인 여성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데 이어, 지난해 7월엔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하려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도주했다. "혼자 죽으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재판장에서 그가 밝히 범행 동기였다.

지난 7일 새벽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길거리에서 남성 B 씨가 일면식 없는 여성의 안면을 가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치 6주 부상을 입은 피해자는 얼굴뼈가 부러져 인공뼈 삽입 수술이 필요한 상태다. 사건 당시 가해자 측은 '피해자가 먼저 욕을 했다'는 등의 거짓 진술로 온라인상 2차 가해를 유발하기도 했다. 실상은 '연락처를 알려 달라'는 남성들의 요청을 피해자가 거절하자, 일행 중 한 명이었던 B 씨가 벌인 일이다.

지난 4월엔 부산 동구 초래동의 한 노래방에서 50대 남성 C 씨가 60대 여성 사장을 폭행해 전치 4주의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코와 갈비뼈가 부러지는 상해를 입었지만 가해자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부산에선 지난해 서면에서도 30대 남성이 귀가 중이던 여성을 쫓아가 폭행하고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로 이동해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묻지마 범죄 vs 혐오 범죄 … 규정조차 없는데 '혐오'는 아니다?

22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활용해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의 언론보도 사례를 살펴보니, 이 같은 여성폭행 사례가 지난 일주일 동안만 총 13건이 집계됐다. 이 중 6건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 등 수사·사법기관을 통해 다시 이슈가 된 지난해 사건이지만 7건은 올해 발생한 새로운 사건, 4건은 5월 내 발생한 사건이었다. 전체 사건 중 7건이 일면식도 없는 관계에서 발생해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보도됐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이 같은 무차별 범죄는 한국사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해석되지 않는' 위치에 놓여있다. 언론 등을 통해 묻지마 범죄로 불리던 범죄유형을 경찰이 '이상동기 범죄'로 이름 붙이고 통계분류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이 지난해 1월이다. 공식적인 성별통계나 범행 동기에 대한 분석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특정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혐오(증오)범죄냐 묻지마 범죄냐' 논란만 이어져왔다.

증오범죄 예방법·통계법 등으로 증오범죄를 법적으로 규정·방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범죄 동기나 유형에 따른 증오범죄를 정의하고 성별과 인종, 성 정체성 등에 따른 증오범죄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16년 당시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으로 '혐오범죄' 논란이 크게 번지며 관련 통계법이 발의됐지만, 반 기독교 법안이라는 보수 기독교계 반대에 부딪혀 좌초된 바 있다.

관련 법안도 사회적 논의도 부족한 상황에, 경찰은 대표적인 여성폭력 범죄로 꼽히는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과 2020년 서울역 여성 폭행 사건을 '혐오범죄가 아닌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린다. 여성폭력 범죄를 전문해 맡아온 이은의 변호사는 22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현재는 혐오범죄가 대체 무엇이고, 혐오범죄가 아니면 이를 대체할 용어는 무엇인지 (수사·사법기관의) 공식적인 입장조차 없는 상황 아닌가" 물으며 "혐오범죄에 대한 규정 자체가 미비한 상황에 경찰이 그러한 공식 판단을 내린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고 말했다.

▲17일 저녁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광장에서 개최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7주기 추모집회 '누구도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현장 모습. 2016년 당시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은 '혐오범죄'와 '여성폭력'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프레시안(한예섭)

여성은 '때리고 싶고, 때릴 수 있는' 존재?

유엔(UN)은 일반적인 '폭력'과 대비되는 '여성폭력' 범죄를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해온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표지"(1995)로 정의하고 있다. 약자집단에 대한 혐오 개념 또한 사회 내 권력관계를 전제한다. 여성 대상 무차별 폭력 범죄를 둘러싼 '혐오 대 묻지마'의 논쟁은, 결국 해당 범죄의 동기가 '권력관계'에서 비롯함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이 변호사는 범죄의 "이해할 수 없는 경위"가 "상대가 여성이기 때문에 성립한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 범죄의 경위를 살펴보면, 통상 폭력이 행사될 상황이 아님에도 "상대가 여성이기 때문에, 제압이 용이하고 때렸을 때 저항이나 반격을 받지 않을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폭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얼굴뼈를 함몰시킬 정도의 폭행을 가한 7일 압구정 여성폭행 사건, '눈을 마주쳤다'는 이유로 광대뼈가 부러질 정도의 폭행을 가한 2020년 서울역 여성폭행 사건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밑도 끝도 없이 때리는 사건부터 시작해서, 어떤 현장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그게 심한 폭력으로까지 나아갈 상황이 아니었던 사건, 혹은 시비 자체가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경멸 등 혐오정서에서 비롯된 사건 등이 많습니다. 여성을 비롯해 노인이나 장애인 등이 주로 그런 사건의 표적이 되죠. 범죄를 하고 싶은 대상, 범죄를 할 수 있는 대상이 따로 있다면 바로 그걸 차별범죄, 혐오범죄라고 부릅니다." -이은의 변호사

파편적으로나마 확인이 가능한 통계자료에서도 이 같은 경향성이 일부 드러난다. 대검찰청의 2013년 '묻지마 범죄 분석'에 따르면 2012년 이상동기 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이 많았고(58%) 특히 "길거리에서 발생한 범죄의 경우 주로 여성이 범죄의 표적"이 됐다. 일반적으로 가·피해자 비율 모두 남성이 많게 집계되는 전체 폭력범죄와는 다른 양상이다.

문제의 원인 '혐오' 인식하고, 양형기준에 '혐오동기' 반영해야

수사·사법기관은 여성 대상 무차별 폭력 사건을 이상동기 범죄 내의 일부 사건으로만 다루어왔다. 대검찰청은 '2013 묻지마 범죄 분석'에서 범죄 사례 내 여성 피해 경향성을 인지하면서도 범죄 발생원인을 가해자의 △경제적 궁핍 및 사회적 소외 △피해망상, 정신분열 등 정신질환 △범죄전력으로만 한정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러한 태도는 2016년 강남역 살해사건, 2020년 서울역 폭행사건 당시의 경찰 입장과도 이어졌다.

윤미영 서울여성회 사무처장은 "여성 당사자들은 나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걱정과 우려를 가지고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를 계속해서 묻지마 범죄라고만 규정하는 것은 사건 해결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며 "(해당 범죄 유형을) 묻지마 범죄가 아닌 혐오범죄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범죄자들이 피해자를 선정하는 메커니즘은 "단순히 성별에 따른 신체적 특성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유독 여성에 대해선 그런 범죄를 저질러도 더 문제가 되지 않는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게 윤 사무처장의 지적이다. 이 변호사 또한 "혐오성 범죄의 죄질을 평가해 양형의 기준을 세우는 노력이 필요한데, 현재는 입법부도 사법부도 그 노력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평했다.

지금도 살인이나 살인미수 등 흉악범죄의 경우 수사·사법기관이 범행 동기를 적극적으로 조명해 형량 구형 및 선고에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죽거나 불수가 되어야만, 혹은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되어야만 범죄의 동기를 심각하게 들여다보는 현재의 관행으로는 (혐오범죄를 저지르면) 엄벌을 받는다는 사회적 개념 자체가 탑재되기 어렵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지적이다. 부산에서 발생한 2022년 '서면 돌려차기 사건', 올 4월 발생한 '동구 노래방 폭행 사건'의 경우 모두 피해 여성이 가해자의 엄벌을 탄원하면서 화제가 된 사건들이다. 

▲지난해 9월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 추모공간에 헌화하고 있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당시 해당 사건을 두고서도 '여성혐오 범죄' 논란이 일었지만, 김 장관은 해당 사건을 '남녀문제로 바라보아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젠더관점 부재 논란에 휩싸였다. ⓒ연합뉴스

"'여자라서 죽었다'는 구호, 여전히 유효해"

"여자라서 죽었다." 2016년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 반 여성폭력 운동의 대표 구호다. 강남역 사건 이후 7년이 지났지만 강남역 사건과 유사한 방식의 '여성 대상' 범죄는 계속되고 있다. 여성들은 "여전히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성 대상 범죄들을 직접 신고하거나 공론화하고 있는 민간 여성주의 활동단체 팀 '화로'의 SNS 계정엔  최근 며칠 동안에만 부산 노래방 폭행 사건, 압구정 폭행 사건, 관악구 출근길 폭행 사건 등 여성 대상 폭행사건들이 여러 건 업로드됐다. "매일 반복되는 여성혐오 범죄"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이 단체의 활동가들은 23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여자라서 죽었고 남자라서 살아남았다"는 2016년의 구호를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말'로 다시 꺼냈다.

바로 지난해에 일어난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 '인하대 성폭력·사망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 여전히 "여성들의 삶은 공포와 두려움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여성폭력 사건. 즉, 페미사이드 사건임이 명백함에도 이를 한 개인의 일탈이라며 묻지마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행각"이라며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일상적인 공간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 되고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사무처장은 여전히 '분노한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는 2023년의 상황을 가리켜 "강남역 이후 이어져온 여성들의 행동은 강남역 사건 자체에 대한 추모와 규탄의 의미도 있지만, 결국 모든 여성들이 안전한 환경을 위한 대책을 요구하는 행동이었다"라며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정부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계속 내버려 둔다는 문제에 대해서 여성들이 굉장히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이 변호사는 여성 대상 폭력 사건에 대한 최근의 대처가 "(여성을) '이렇게 때려봐야 감옥은 안 가'라는 식의 의식을 갖게 하는 법 적용"에 머물고 있다며 "혐오범죄에 대한 양형의 기준을 세우는 노력이 있었어야 했는데 입법부도, 사법부도, 수사기관도 모두 어영부영 넘어가 현재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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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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