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삶을 편견으로부터 해방하려면

[복지국가SOCIETY] 정신장애인의 해방일지

지난 9월 우리나라는 유엔장애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를 채택했다. 점자를 한글과 동일한 지위임을 규정한 ‘점자법’ 채택, 점과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로드맵 채택 등이 긍정적인 측면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장애등급제를 포함해서 장애에 대한 의학적 모델이 여전히 만연하여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적절한 서비스와 지원에 접근을 제한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는 가슴이 답답한 대목이다.(출처 : 비마이너)

그중에서도 필자는 정신장애와 관련된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개개인의 복지서비스 필요가 서비스 제공의 기준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엔장애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장애인 복지가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장애인복지서비스'라고 지적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장애인복지법 15조가 폐지된 이후 많은 정신장애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등록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다. 특히 학령기와 청소년기에 발병하는 경우 제도적 지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의 특성상 정신장애로 등록하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대안을 찾기 위한 현장의 고민은 깊다.

또한 유엔장애권리위원회는 정신장애인의 의사를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대신하는 방식의 성년후견제와 정신장애인 강제입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수용 위주의 치료가 아닌 지역사회 중심의 치료와 재활에 대한 국제적인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의 삶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 이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논의가 활발한 지금 정신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어떠한가? 먼저 취업에 대해서 살펴보자.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고용률은 61.3%, 장애인 고용률은 36.9%로 나타났다.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15.7%로 일반 장애인 평균에 비해서도 저조하다.

부산에 위치한 송국클럽하우스는 50명이 이용하는 정신재활시설이다. 2022년 12월말 기준 76명(실인원 38명)의 정신장애인이 자판기관리, 병원 중앙공급실 관리, 은행 사무보조원까지 부산 전역의 취업장에서 일하였다. 최근에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정신장애인 직업재활은 정신재활시설의 본연의 업무이다. 더 많은 정신장애인이 취업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정신재활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온 국민 마음건강 종합대책(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이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해 지역사회 기반 재활 프로그램 및 인프라 개선을 언급하고 있으나, 기초지자체 226개 중 104개소에 정신재활시설이 미설치되어 있다. 부산시에서는 16개 구군 중 5개 구가 이러한 상황이다. 정신장애인들이 정신재활시설에서 충분한 직업재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힘을 써야 한다. 이것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제27조 근로 및 고용에 정신장애인들이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올해 4월 초 <신성한, 이혼>이라는 JTBC 드라마가 조현병 아내의 이혼소송을 다룬 적이 있다. 이 방송은 조현병을 숨긴 아내와 딸의 존재를 숨긴 남편의 이혼과정을 그렸다. 그렇다. 아직까지 조현병은 숨겨야 할 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9년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실시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및 태도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3.2%는 '누구나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반면, '정신질환자 이용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와도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39.0%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6개 주요 언론사가 지난 10년간(2009.1.1.~2018.12.31.) '조현병, 정신분열증, 정신질환, 정신병, 정신병원, 정신장애, 정신장애인' 등의 키워드를 사용한 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그 군집 키워드로 '병원, 입원, 치료, 증상, 정신질환, 정신병원, 의사, 진단, 정신건강, 퇴원, 약물, 진단'과 같은 치료적 관점의 단어와 '경찰, 여성, 흉기, 혐의, 살인, 범행' 등 범죄적 관점의 단어의 사용 빈도가 잦았다. 하지만 '생활, 인권, 사회복지, 국가인권위원회, 정신건강복지법, 상담, 지역'과 같은 정신장애인의 권리와 관련된 키워드는 상대적으로 하위 그룹에 속했다. 국내 기사에 등장하는 정신장애인의 이미지가 치료받아야 할 대상, 또는 범죄 가능성이 큰 집단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컸던 셈이다. 대중이 언론으로부터 주로 접하는 정신장애인의 이미지가 부정적임을 보여준다.(2021 정신장애인 인권보고서 요약발췌)

2020년 2월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코로나19로 인해 필자가 근무하는 송국클럽하우스의 실습생들이 실습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우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제작한 영상을 활용해 정신장애인을 향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 수준을 살펴보기 위한 비대면, 소그룹 연구 실습을 진행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정신장애인 영상접촉 후의 변화된 경험으로 자신의 선입견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대중이 매스미디어에서 접하는 정신장애인 관련 보도는 자극적이다. 정신장애인의 공격적인 면을 부각한다. 그러니 대중은 정신장애인을 피하게 되고, 그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우리가 제작한 정신장애인 영상은 이처럼 대중이 내제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2022. 유숙·심경순 '영상접촉을 통한 정신장애인 편견개선에 관한 질적 사례연구'). 독자들도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신질환 관련된 뉴스를 여러 번 접해보셨을 것이니 더 깊은 설명은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연구 참여자들은 이전에는 정신장애인을 병을 가진 환자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영상접촉 이후 그들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경험하고 서로 도움을 주는 현실을 인식했으니 사회통합적 인식으로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아닌가. 다시 현장에서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일할 이유를 찾는다.

재난 상황 속에서 정신장애인의 삶

온 국민 마음건강 종합대책(2021)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인해 기존 건강한 사람도 우울, 불안을 겪고 있으며, 이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거리두기가 정신건강 관리에 긍정적인 사회적 교류와 지지망을 약화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사회적 관계망이 약한 정신장애인에게 이 시간은 지역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간이었다.

요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이전 세대들이 살던 세상이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환경에 속도를 맞추려면 숨이 차다. 이제는 기존의 대면서비스를 넘어서 IT정보통신 기술을 융합한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고립과 외로움을 경험하는 정신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다. 특히 대면 서비스에 제약이 많았던 코로나19 기간에 정신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우리는 2020년 4월 9일 학교 개학일에 맞춰서 온라인 송국클럽하우스를 개관했다. 재난 상황에서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기관 운영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온라인 공동체를 구축하고 심리·생활방역 지원단을 꾸리고 1년간 830회의 찾아가는 동료지원 활동을 이행하는 등 정신장애인의 일상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비대면 서비스를 확산해 서비스 지속성을 확보하고 정신장애인의 심리적 안정을 지원했다. ZOOM·카카오톡·네이버밴드·유튜브를 활용한 화상회의, 일상지원 회의 및 프로그램 운영, 영상제작 및 업로드, 라이브 방송(유튜브 채널 '송TV'구독자 682명, 연 평균 영상제작 및 업로드 50건 이상)을 통해 정신장애인이 고립되지 않게끔 공동체 유지를 위해 애썼다. 코로나19 기간에 휴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20~22년 전체 이용회원 91명 중 22명(24%)이 확진되었다. 질병관리청 집계 우리나라 누적 확진자 58%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이다. 또한 신규취업회원 25명(28%)을 달성하며 긴 터널을 함께 지나올 수 있었다.

▲정신장애인 청년 운동자조모임 주말 농구 경기 중. ⓒ송국클럽하우스

정신장애인 해방일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교육현장과 일터에서 인권교육과 장애인식개선 의무교육이 시행되는 등 정신장애인을 향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 가고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다. 사회복지환경에도 지각변동이 시작되었다. 최근 들어 장애인활동보조사업 확대, 바우처 제도 실시, 사회적 협동조합을 통한 복지서비스 제공 등 정부의 장애인 서비스 예산 지원 방향이 시설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정신장애인 관련 분야를 살펴보면 보건복지부는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조기중재센터 6개소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와 별개로 송국클럽하우스는 지난 2년간 진행한 청년정신장애인의 관계 및 사회참여를 통한 청년권익향상 프로그램 '청정당당하게!'(2022년 지역사회 정신건강 우수프로그램 보건복지부 장관표창)를 보급할 계획이 있다. 청정당당하게!는 제목 그대로 청년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에서 당당하게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자리, 주거, 정책 활동을 지원하며 그들을 응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청정당당하게 '나혼자 산다'의 한장면. ⓒ송국클럽하우스

한편 그동안은 발달장애인 영역에서 장애인예술단을 창립하여 일자리로 연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신장애인 쪽에서도 문화예술형 일자리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난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부산직업능력개발원 담당자와 미팅했다. 우리도 장애인 예술단을 만들까? '아르브뤼(Art Brut)' 작가를 추천할까? 고용창출이 가능하도록 정신재활시설과 공단이 머리를 모아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즐거운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장애인 작가들은 아르브뤼 작가로 불린다. '아르브뤼(Art Brut)'는 '날것 그대로'를 뜻하는 프랑스어 'Brut'에서 따온 것으로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한 미술'을 지칭한다.

▲워드 크라우드/ 송국클럽하우스 아카이브 분석 내부자료.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지역에서 여러 행사가 열렸다. 운이 좋게 필자도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정신장애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동안 여러 차례 언론 매체를 통해 전달해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번 기회에 지난 5년간 '송국클럽하우스'라는 키워드로 언론매체에 보도된 내용을 분석해 보았다. 정신장애인, 사람들, 조현병, 부산, 동료지원가 등의 단어가 눈에 띄었다. 앞으로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개선될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에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와 정신장애인의 삶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시민이 선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몇몇의 혐오 발언에 희석되기가 쉽다. 현대인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 정신장애인의 편을 들어달라고 요청하기도 쉽지 않다. 온·오프라인 세상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작은 관심과 잘못된 기사에 선플을 더해보자. 시민과 함께 연대하여 편견과 오해로 얼룩진 정신장애인의 삶에 해방일지가 기록되기를 소망한다.

*유숙 소장은 송국클럽하우스에서 근무하는 정신건강사회복지사이다. 송국클럽하우스는 국제 클럽하우스 모델로 인증 받은 기관으로, 회원(정신질환자)이 클럽하우스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회원과 직원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공동체 네트워크 형성 및 사회통합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 활동은 ①낮 프로그램 ②과도기적 취업프로그램 ③저녁·주말프로그램 ④주거지원 프로그램 ⑤Reach-out 프로그램 등이며, 클럽하우스 모델은 2016년 정신건강 종합대책에 정신질환자 직업재활 관련 해외사례로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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