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지난 1월 31일 흑산공항 예정부지를 국립공원에서 '해제'했다. 오로지 흑산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다.
정부가 대형시설물을 짓기 위해 국립공원 해제를 결정한 첫 사례로서, 참담하기 짝이 없다. 신안군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인접한 목포 시내 여기저기에는 신안군 무슨 무슨 단체 이름으로 '흑산공항 확정'을 경축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흑산공항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국립공원위원회의 결정을 호도하며 마치 공항이 확정된 것처럼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들도 15년 만에 숙원이 해결됐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냈다.
신안군이 추진하는 흑산공항은 총사업비 1833억 원을 투입해 흑산도 68만3천㎡ 면적에 길이 1.2km, 폭 30m의 활주로를 포함해 계류장, 터미널 등을 건설하는 사업으로 공항이 건설되면 50인승 소형 항공기의 이착륙이 가능해져 주민들의 이동편의 보장과 더 많은 관광객 유치가 가능할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2016년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심의 보류, 2018년에는 계속심의를 결정하여 공항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철새 보호 대책 강구, 조류 항공기 충돌 가능성, 항공기 사고 가능성 등의 문제들이 제기됐다. 흑산공항 전략환경평가 당시 한국환경정책평가원, 국립생태원, 국립환경과학원, 국립습지센터, 흑산도에 있는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 등 환경부 산하 연구기관들도 모두 '반대' 입장을 냈다. 그런데 다른 부처도 아니고, 생태계 보전과 국립공원 관리를 책임지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국립공원 해제라는 꼼수를 부려 공항 건설의 길을 터주겠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안전성, 경제성 없고 이동권 신장과 무관
애당초 흑산공항 건설 계획은 그 자체가 무리수였다. 지난 10년 동안 논의가 이어져 왔음에도 국립공원위원회의 국립공원 해제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사업이 비현실적이며, 대다수 위원들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전성, 경제성, 환경성,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먼저 안전성 문제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50명 정도가 타는 프로펠러 소형항공기인 ATR 기종은 기상에 취약한 비행기로, 우리나라에는 3대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네팔에서 사고가 나 승객이 전원 사망했던 기종으로 외국에서는 빈민국가에서 오지를 오가거나 화물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관광객을 태우겠다는 것이다. 또 ATR은 물과 만나면 미끄러지기 쉬운, 이른바 오버런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는흑산도에는 적합하지 않은 비행기로 알려져 있다. 또 흑산도 예리항 인근의 방풍림 역할을 하던 산을 깎아내고 공항이 들어서면서 태풍 등 피항으로 활용되는 예리항이 강풍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주민들이 태풍 피해를 직격으로 받을 수도 있다. 새떼는 경비행기 안전에 중요한 요소인데 공항 예정지가 철새 이동경로와 겹치면서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항공기 운항 안전은 치명적일 수 있다.
다음으로, 경제적이지도 않다. 총사업비가 1833억 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의 금리인상분, 항공기 구매비용 등까지 따지면 5000억 원이 들어갈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온다.
이처럼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을 만큼 경제적 타당성이 있을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연간 60만 명'이라는 이용객 예측치도 신뢰할 수 없다. 인근 무안공항의 경우 국토부는 이용객 예측지로 2012년 253만9천 명을 제시했지만 실제 이용객 수는 9만60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지난 5년간 지방공항 중 김포, 김해, 제주, 대구를 제외한 10개의 지방 공항 누적 손실이 4823억 원에 이르며 상위 4개 공항 수익으로 나머지 공항의 적자를 메우는 구조다. 코로나19로 공항 이용률이 떨어진 사실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업을 추진하려고 할 때 수요를 과도하게 부풀려 예측하여 크게 짓기 때문이다. 최근 MBC가 보도한 환경부가 작성한 미공개 문건에 따르면, 공항건설로 훼손되는 생태가치가 30년간 1조 7000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 흑산공항 사업에서 경제성을 찾기란 헛수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 주민들의 이동권 보장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여객선이 결항되어 육지로 또는 섬으로 이동할 수 없고, 응급환자 발생 시 문제점 등 많은 고충이 있다. 그러나 강풍과 안개 때문에 배가 못 뜨면, 50인승 경비행기도 뜰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때문에 지금처럼 열악한 목포-흑산 간 여객선이 웬만한 바람과 파도에서도 오갈 수 있도록 더 큰 선박과 더 많은 배편 등 선박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공항 건설에 들어갈 돈의 일부만 사용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최악의 반환경, 반생태 사업
흑산공항 건설은 반환경적인 사업이다. 생태자연 1등급 지역이 28%에 달하는 대봉산 일대 68만3000㎡에 길이 1200m, 너비 30m 규모의 활주로를 건설한다는 내용도 문제지만, 공항시설법시행규칙과 국토부 고시 '조류 및 야생동물 충돌 위험 감소에 관한 기준'에도 어긋난다. 섬 대부분이 공항 반경 8㎞에 들어가는 흑산도는 공항 예정지 일대가 400여 종의 철새 이동로이다. 흑산공항 건설이 반환경적일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이유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자연생태계와 자연·문화 경관의 보전을 전제로 지속가능한 이용을 도모하고자 환경부 장관이 지정,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보존지역인 국립공원을 대규모 개발사업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아주 나쁜 선례이자, 탄소중립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흑산공항과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허가로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지금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있다. 1872년 미국의 옐로스톤이 세계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며 국립공원 제도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현대에 와서 파괴되어가는 자연생태계와 환경, 문화, 역사 유산의 보전을 목적으로 공원의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7년 지리산이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현재 22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되었지만, 우리 국토 대비 4%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마저도 지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이곳의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할 수 있었고,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자원을 보유한 셈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공항과 케이블카를 허가해줬으니, 이제 다른 자자체들도 자기 지역의 국립공원 개발을 허가해달라고 아우성칠 게 분명하다.
지금 세계적인 추세는 항공기 탄소배출 때문에 공항증설계획을 연기, 또는 중단하거나, 항공기 운항에 대한 규제도 만들고 있다.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1km 이동시 탄소배출량은 항공기(88명 탑승기준)가 기차(156명 탑승)의 20배에 달한다고 한다. 영국 히드로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프랑스 드골공항의 확장 계획들이 연기되거나 폐기되었다. 스웨덴은 단거리 노선이 많다는 이유로 스톡홀롬의 브롬마 공항을 폐쇄했다. 프랑스 하원은 철도로 2시간 30분 거리 이내 국내선 항공을 중단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오스트리아는 항공업계에 지원금을 주는 대신, 철도로 3시간 이내 비행기 운항 중단을 요구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속도와 편리함만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이다.
흑산도는 보존가치가 높은 국립공원으로서 인간 위주의 편협한 판단은 용납되지 않는다.
수만 km를 날아와 쉬며, 먹이 공급을 받는 철새들의 중간기착지이자 우리나라 최고의 철새 교육 장소인 흑산도를 토건 세력들의 이기적 판단과 무모한 행동에 맡겨 둘 수 없다.
사람이 먼저이지 새가 먼저냐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새들도 살지 못하고 떠나는 곳에 사람은 과연 살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자연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후재앙시대에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흑산도에 공항 건설과 항공기 구입 대신 더 크고 안전한 여객선을 띄워 결항률도 낮추고 관광객들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안전성, 경제성, 환경성, 주민들의 이동권 신장에 어느 하나 유익이 없다. 오직 공항 건설만을 위한 억지와 무리수가 펼쳐지고 있다. 국립공원 흑산공항 건설은 설악산 케이블카, 제주 제2공항 등 생태계 보전과 기후위기 대응에 일련의 반환경사업들과 함께 우리 국토생태의 지속가능성을 질식시키는 사업이다. 막아야 한다. 시민사회 전체가 국립공원을 지키는 생태전선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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