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경제정책, 그 대안을 이야기하자

[나원준의 좌회전 경제] 신자유주의 넘어야 위기 극복한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이후 세계경제의 위기적 상황은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팬데믹에 휩쓸려 손상된 글로벌 공급망은 경제회복 지연에 중미갈등이 더해지면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발발한 전쟁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로 신냉전의 서막이 오르면서 세계경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격랑 속으로 빠르게 휩쓸려 들어갔다.

시선을 한반도로 옮겨오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가치 동맹의 이름으로 미국 패권주의가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제해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형국이다. 미국에 이어 일본마저 상전으로 모시려는 윤석열 정권은 도탄에 빠진 민생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능한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아예 대놓고 부자와 재벌만 위하고 전 정권 탓만 한다. 미국의 이해관계에 예속된 경제정책으로 인해 한국경제는 방향을 상실하고 표류 중이다.

위기 속 표류하는 한국경제

위기는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진다. 가뜩이나 기술 수준에서조차 중국에 따라잡히는 마당에 미국과 윤석열 정권의 일방적 외교는 그간 한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해온 중국과의 남은 경제관계마저 위태롭게 한다. 그 결과가 무역수지 적자의 구조화로 나타나고 있다. 남한 자본주의는 지금 갈 길을 잃었다. 그러니 진짜 위기다. 그런 판국에 국내적으로는 자영업자 부채 부담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발 위기 우려마저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그동안 가계 빚을 늘리며 급등했던 주택가격은 깡통전세로 돌아와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을 덮친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진보정치로 향한다. 우리 자신은 어떤가. 노동 중심의 진보정치는 윤석열 정권과는 다른 어떤 경제운영 방식으로 민중의 삶을 지킬 수 있을까. 작금의 위기적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정책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진보정치의 경제정책 틀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진보정치의 대안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2021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해 채택된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인간 중심 회복의 지구적 요구"에 대한 제109차 총회 결의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총회 결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국가적 고용 대책으로 모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기회가 제공되는 일자리 중심적인 회복"이 요구되며 경제정책은 불평등을 타파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이 총회 결의를 보편적 기본권과 노동권을 최우선에 놓고 지구의 생태 한계를 존중하는 경제운영의 새로운 지배구조에 대한 것으로 적극 해석한다. 이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완전한 방향 전환이 요청되며 경제의 규칙을 다시 새로 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실 이 시대가 경험하고 있는 심각한 불평등 확대의 이면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이라는 정책적 요인이 작용해왔다. 거시경제정책의 목표가 과거에는 완전고용으로 집약되었다. 반면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에서는 물가안정을 목표로 독립된 외양의 중앙은행 전문가들이 결정하는 통화정책이 거시경제 관리에 있어 주인공 역할을 한다. 통화정책이든 재정정책이든 준칙을 미리 정해 재량의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도 신자유주의의 특징이었다.

그와 같은 정책 패러다임은 노동자들한테 불리했다. 이른바 물가안정목표제가 채택된 나라에서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자들의 몫)은 뚜렷이 하락했다. 그 과정에서 임금 격차 확대도 뒤따랐다. 경제 침체의 영향이 누구에게나 똑같지는 않아 대개 저임금 노동자들부터 임금이 깎이고 일자리가 없어지곤 해서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우리 사회 양극화의 근본 원인이다.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목표로 실업률 증가를 용인해 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불평등의 원인이다

특히 물가 상승이 주로 원자재가격 상승 등 공급 측 요인에 기인하는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은 경기의 진폭을 의도적으로 키우는 나쁜 방식을 택했다. 최근 경제상황처럼 공급 측 요인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부진에 빠지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려 대응한다. 이는 경제가 침체하면 이자율을 올려 경제를 더 가라앉게 만드는 것이므로 결국 경기의 진폭을 키우는 셈이다.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

물가를 잡기 위해서라면 고용은 어느 정도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가를 잡아야 자산가들이 보유한 막대한 금융자산 가치를 지켜줄 수 있어서일까. 중앙은행은 물가가 오를 것 같으면 재빨리 이자율부터 올린다. 그래야 금융자산 가치 하락을 이자수입 증가로 메울 수 있다. 그러니 오늘 정책 당국자들은 실업자를 얼마나 늘려야 물가상승률을 원하는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지 계산하는 게 일이다. 실업자가 목표만큼 늘지 않으면 걱정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관심을 재정정책으로 옮기면, 신자유주의는 감세와 긴축의 소극적 재정 운영의 수호자로 나선다. 그러면서 재정적자를 줄이고 국가채무비율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딱 그 모양새다. 그들은 왜 재정준칙을 밀어붙이려고 할까. 그 이유는 이 정권이 재벌과 부자들만 위하는 정권이라서다. 부자들 세금 안 내게 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재정을 쓰기 시작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니 재정준칙을 만들어서 애초에 재정 쓰는 것부터 막겠다는 의도다. 그러니 남한의 재벌과 졸부들은 재정준칙이 얼마나 고맙겠는가. 그래서 그들이 이번에도 근로장려금부터, 무주택 근로자 주택자금 특별공제 같은 서민 복지 예산부터 기획재정부 조세특례 심층평가 대상에 올려 깎자는 것 아닌가.

좁고 험한,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길

진보정치의 경제정책은 이런 신자유주의에 맞서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진보정치는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노동 중심 진보정치만의 경제정책 비전을 준비해 시민 앞에 제안하자. 진보적 거시경제운영 원리를 당당히 설명하자. 그 과정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도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 길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민중의 경제적 존엄을 지켜내며 신자유주의를 전복하는 제대로 된 길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좁고 험하더라도 그 길을 피해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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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준

나원준 경북대학교 교수는 거시경제학과 화폐금융론 등을 가르치며 진보적인 관점의 경제발전 모형과 대안적 경제정책 체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경제학>, <MMT 논쟁> 등 저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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