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본질은 '승부조작'이 아니라 대한축구협회!

[정희준의 어퍼컷] 대한축구협회의 '대국민 사기극'

지난 3월 28일 대한축구협회는 저녁 7시 징계 중인 축구인 100인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31일 철회했다. 한국축구의 명예가 시궁창에 처박힌 사건이다. 이번 '기습사면 스캔들'에서 드러난 대한축구협회의 문제는 다양하면서도 매우 심각하다. 우선 협회의 의도가 매우 저급하다. 이사회를 상암경기장 회의실에서 열고 경기 한 시간 전에 사면을 발표했다. 축구열기에 묻어가자는 것이다. 사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안 좋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정교하게 꾸민 것이다.

또 이미 언론에서 드러났듯 협회는 이번 결정을 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였다. 사실 외부 의견을 구하긴 했다. 연초에 협회는 2011년 승부조작 징계 당사자인 프로축구연맹에 의견을 구했다. 연맹은 반대했다. 한국축구가 아직 승부조작으로부터 청정지역이 아니고 올해 중국 프로축구가 제때 개막을 못하는 이유도 승부조작에 70여명의 선수가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을 사면해주는 나라도 없다며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했다. (28일 이사회에서도 연맹의 조연상 사무총장만 반대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는 이 의견을 무시했다.

결국 이번에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은 협회 운영의 폐쇄성이다. 이는 전임 정몽준 회장 때부터 지적되어 온 것인데 현 정몽규 회장에 이르러서도 변화의 조짐이 없다. 특히 28일 이사회에서 연맹 측 조연상 이사 외 그 누구도 반대 의견을 피력하지 않고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이영표, 이동국 부회장 등 젊은 선수출신 임원들도 묵인, 동조했다. 젊은 회장단들이 사실상 '거수기'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논란이 예상되는 이사회 주요 안건에 대해 찬반 의견도 묻지 않고 통과시킨 것은 협회의 '현재 상태'가 어떠한 수준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선수들'이 아니라 '부패·비리 축구인 구하기' 밀실 프로젝트

이미 많은 축구팬들은 의심하고 있다. 협회가 협회와 가까운 축구인들을 구제해주기 위해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선수들을 '끼워넣기' 한 것 아니냐고. 설마 그럴 리가.

사면과 관련하여 협회는 "오랜 고민 끝에 이들이 이미 국가의 처벌을 받았으며, 긴 시간 동안 징계를 받으며 많은 반성을 했다고 판단... 이들에게 한국축구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다시 한번 주기로 한 결정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배경을 설명하며 승부조작에 대한 사면임을 밝혔다.

정몽규 회장도 사면 철회 입장문에서 "10년 이상 충분히 반성했고 죗값도 치렀으니 이제 관용을 베푸는 게 어떠냐는 일부 축구인의 건의를 2년 전부터 받아왔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사려 깊지 못하였습니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축구인과 팬들이 받았던 그 엄청난 충격과 마음의 상처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해 사면이 승부조작 징계 선수들을 구제해주자는 취지임을 밝혔다.

아니었다. 우리가 속은 것이다. 협회와 정 회장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하태경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사면대상자 목록>을 보면 그 사면이 과연 승부조작 선수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나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우선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선수 수가 48명인데 승부조작 아닌 비리, 폭력으로 징계 받았다가 이번 명단에 포함된 사람은 그보다 많은 52명이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제명(17명)'과 '무기한 자격정지(14명)'를 받은 사람이 모두 31명인데 죄질도 아주 나쁘다. '금전 비리 행위,' '선수, 심판에 대한 폭력,' '실기테스트 부정'이 주를 이룬다. 선수들이 저지를 비리가 아니다. 그 외 자격정지 사유들을 보면 '부정선수 출전,' '등록증 위변조,' '고의 경기지연' 등 모조리 지도자, 심판, 단체 임원등 중견 축구인들의 비리행위들이다. 나는 이번 사면의 핵심은 바로 제명과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처분을 받은 저 31명이라고 판단한다. 이를 위해 승부조작 선수들을 끼워 넣은 것이고.

"10년 넘게 반성했다"고!?

또 하나. 명단을 살펴보면 이무런 기준도 없이, 온갖 '빽'이 난무하는 가운데 힘있는 자들이 자기 사람들 밀어넣기에 바빴음을 짐작케 한다. <사면대상자 목록>을 보면 80번부터는 2019년 이후 징계받은 자들이다. 86번은 '금전 비리 행위'로 2020년 자격정지 3년을 받은 자로 아직 3년도 채 되지 않았던지, 아니면 징계가 이미 끝났을 텐데 굳이 그를 왜 포함시켰는가? 특히 2022년 징계받은 자들이 무려 9명이다. 작년에 자격정지 6개월, 8개월, 1년 처분을 받은 자들이 도대체 왜 사면 명단에 올라가 있는가? "10년 넘게 반성했다"고?

결국 겉으로는 '승부조작 대사면'을 내걸고는 횡령, 뇌물수수, 폭력으로 징계받은 축구계 부패, 비리 인사들을 구제하는 것이 이번 사면 스캔들의 본질임을 알게 해준다. 이영표, 이동국 같은 젊은 부회장이나 축구인 출신 이사들에겐 동료, 선배님, 은사님의 문제였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가다가 같이 망한다.

불통의 '현대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몽준 전 회장에 이어 정 회장은 3연임하면서 무려 30여년에 걸쳐 한국축구를 현대가의 '패밀리 비즈니스'로 만들어 놓았다.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이곳 '현대축구협회'에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오래 전 사라졌다.

협회는 지금 쇄신안을 만들고 있는가. 사면 철회로 대충 넘어가려는 것 아닌가 싶다. 축구팬과 국민을 기만하고 모욕했던 이번 스캔들은 한국축구협회가 얼마나 조직답지 않은 조직인지, 그 추한 실체를 여지없이 드러내보였다.

사면대상자 목록을 분석해 보면 금전 비리로 징계를 받은 사람이 24명이고 선수, 심판에 대한 폭력 행위자가 15명이다. 이런 자들을 사면해주겠다고 나선 축구협회도 '제 정신인가?' 싶지만, 왜 축구엔 이렇게 금전 비리와 폭력 지도자가 많은지 그에 대한 반성과 대안 마련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승부조작, 금품 비리, 폭력을 근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속적인 캠페인,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상벌시스템이다.

협회는 이 스캔들의 여파로 정 회장을 제외한 전 임원이 공석이다. 회장 지인, 저명인사, 이름값만 높은 구색맞추기 인사는 더 이상 지양해야 한다. 축구행정과 협회운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실력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물들로 자리를 채워야 한다. 그리고 협회 안팎에서 '불통'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다. 축구협회에서 축구인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수십년 된 이야기다. 편가르기 없이 다양한 목소리에 경청해야 한다. 이번 스캔들의 원인도 결국 불통 아니었나?

▲하태경 의원실이 공개한 사면 대상자 목록 현황.ⓒ 하태경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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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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