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식 역사 거꾸로 세우기, 이승만 숭배의 우회로 뚫기

[박세열 칼럼] 보수의 뿌리, YS도 아니고 이승만 택한 尹정부

북한의 주체사상은 역설적으로 주체 없음을 드러낸다. 주체가 없으니 우상화에 집착한다. 우상화는 우상 없음을 폭로한다. 외국인들 앞에서 기이한 제례를 당당히 보여주고, 누가 봐도 허구에 가까운 김일성 신화를 자랑스레 보여주고 거기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 앞에서 북한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당당하다. 주체와 자존심을 거대한 국가 사상(상징) 체계로 만든 그들의 위업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이승만을 띄우려 한다. 역설적으로 보수 정통성의 허약함을 보여준다. 서울 남산의 이승만 동상은 평양 만경대 김일성 동상보다 더 먼저 건립됐다. 이승만 생일 80주년을 맞이해 추진한 이승만 동상은 1956년 서울 종로 탑골공원과 남산 조선신궁 터에 세워진다. 최소한 우상화는 남한이 한발 앞서 나갔다. 이승만 동상은 1960년 4.19로,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졌다. 지금은 머리만 남아 서울 어딘가에 쓸쓸하게 모셔져 있다.

국가보훈처는 460억 원을 들여 이승만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한다. 기념 시설로는 노무현의 네 배, 박정희의 두 배다. 이승만기념관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에 근거해 추진하는 게 아니라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에 따라 추진된다. 이승만의 독재를 우회하는 방식을 찾아 낸 게 '독립운동가' 신화인 셈이다. '독립운동가' 이승만 평가에 대한 반박거리도 시중엔 차고 넘친다. 그러면 '한미동맹을 이승만이 만들었다'고 다른 우회로를 뚫는다. 게으른 독립운동과 독재에 대한 비판을 우회해 신화화 한 것은 '한미동맹의 창시자'라는 서사다. 한미동맹 자체를 신성화, 종교화하고 이를 숭상하는 것이다.   

주체사상이나 한미동맹의 신화나, 주체 없는 주체, 자주성 없는 서사는 남북 양측이 사이좋게 공유하는 어떤 것이다.

원래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을 주축으로 하는 보수 세력의 정치적 상징은 약 20여년 간 박정희였다. 그 박정희 신화는 박근혜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박정희 마케팅'은 이제 특정 지역 외의 곳에선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게다가 이른바 MZ세대는 박정희에 대한 빚도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본격화된 박정희 신화는 조갑제 등 보수 논객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치권력은 그걸 적극적으로 띄웠다. 박정희의 인기가 올라갔다. 이명박은 청계천이나 4대강에 '박정희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는 걸 즐겼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박정희 신화가 각광을 받을 때엔 이승만의 자리같은 건 없었다. 존경할만한 독립운동가는 많았고, 이승만은 독재를 하다 쫓겨난 인물이었다. 그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린 건 박정희였다. '혁명 군인' 박정희에게 이승만이란 '앙시앙 레짐'은 철거 대상이어야 했다. 박정희는 '혁명 재판'으로 이승만 정권 실세들을 처단했다. 그런 연유로 박정희 신화와 이승만 신화와 양립할 수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다. 이승만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찬밥 신세였던 이유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문재인 정부를 지나 다시 보수 정부인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박정희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갑자기 이승만을 찾기 시작한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이승만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번영의 근간이 한미동맹이라며 "지난 70년의 우리 역사는 이승만 대통령님의 혜안이 옳고 또 옳았음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만의 '업적'이라는 한미동맹 신화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출마 선언문에서 "이 (문재인) 정권은 (…)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자유'를 빼내려 합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자유민주주의와 이승만(과 그 추종자들)의 자유민주주의의 의미는 같지 않다.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냉전 시절 '멸공'의 기치 아래 언어의 해석을 독점한 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오염시켰다. 정치 초보인 윤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과거 독재정권 식 반공 '자유민주주의'와 뒤섞어 버린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떼어 놓고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두 글자가 결합되면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의 독점을 발생시킨다. 반공의 상징이자 북한 공산주의의 대항어로서, 북진 통일의 뉘앙스가 진하게 배어있다.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해석을 독점한 자들이 전유한 냉전 대결적 의미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는 냉전적 보수주의의 산물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보이는 가치관에서 혼란을 느낄 때가 많은데, 주로 단어의 맥락을 제거하고 자신이 해석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때 그렇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자유, 민주당이 주장하는 자유와, 정의당이 주장하는 자유, 우파의 자유와 좌파의 자유도 그 의미는 모두 다르다. 존 로크의 자유와 애덤 스미스의 자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 볼테르의 자유, 밀턴 프리드만의 자유도 모두 차이가 있다. 영국의 자유와 미국의 자유, 프랑스의 자유, 독일의 자유가 다 다르다. 지금 윤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는 정부의 권력 한계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승만식의 반공적 자유민주주의로 흐르고 있다. '멸콩 챌린지' 같은 유치한 이벤트는 그 징후였다. 이걸 뭉뚱그려 '자유'의 해석과 권위를 독점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반자유주의자'라고 윽박지른다. 자유를 해석할 자유를, 자유를 위해 박탈하는, 그것은 자유인가.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를 이어주는 것이 '한미동맹'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는 '한미동맹' 하나다. 한미동맹이 중요하긴 해도 이건 '가치'라고 보기에도, '철학'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국가간의 계약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신성을 부여하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인 게 되어 버린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견인했던 강제동원 해법도 한미동맹을 위해 두 세 스텝 앞서서 포석을 둔 것으로 정부 스스로 내린 해석을 교시하고 있다. 미국과 외교를 위해 일본 외교 난맥을 뚫고, 일본 외교 난맥을 뚫기 위해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을 무력화했다. 절규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는 먼 한미동맹 앞에서, 가까운 외교 전쟁 앞에서 '콜레트럴 데미지'일 뿐이다.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의 '도청'마저 "악의가 없다"고 포장하는 이 강력한 의지는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연이은 정치 실패 속에서 지지층마저 흔들리는 가운데 찾아낸 것이 이승만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지금 대통령은 역사를 새로 쓰려 하고 있는 것 같다. 강제동원 해법의 '고독한 결단'에서도 엿보인다. 이미 평가가 끝난 이승만에 한미동맹의 신화를 덧씌워 대한민국의 뿌리를 새로 쓰려 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승만기념관건립은 역설적으로 이 정권의 허약성을 보여주는 징후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않는 걸 윤석열 정부는 하고 있다. 왜 역대 대통령들이 이승만 평가에 박했는지 한번 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도 존경한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이승만의 과를 명확히 했다. YS의 차남 김현철 씨는 2015년 '교과서 국정화' 파동 때 국정교과서 추진 세력들을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를 미화시키기 위해 기를 쓰는 현정권과 관제언론들, 보수의 탈을 쓴 수구세력들"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승만기념관 건립은 역사 거꾸로 세우기다. 

윤석열 정부가 떠들썩하게 홍보하고 있듯이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이다. '미래로 가자'는 구호가 난무하지만, 동시에 올해는 한반도 분단 70주년이기도 하다. '한미동맹의 신화화'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의 폐허를 만들어왔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잘 짜여진 질서들에 의해서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영부인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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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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