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 "美정부·언론은 '문건유출 사실'이라는데 韓만 '위조'?"

연일 김태효·대통령실 비판…"당당하고 현명하게 대응해야"

미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 파문과 관련, 미국 주방위군 소속 현역군인이 해당 내용이 담긴 기밀문서 유출 용의자로 지목돼 체포되면서 '문건 상당수가 위조된 것이고 대통령실 도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라는 한국 대통령실 입장이 궁색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여당 내에서조차 이같은 상황에 대한 쓴소리가 나왔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낸 국민의힘 중진 윤상현 의원은 14일 SNS에 쓴 글에서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 국방부 기밀문건의 유출 용의자가 체포되며 수사가 본격화됐다. 21세의 미국 현역군인"이라며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이 미 국방부 보고서이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고, 빌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유감을 표명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미국 정부와 언론이 문건 유출을 사실이라고 결론짓고 유출 경위를 밝히고 있는데도, 국가안보실 1차장은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 '악의적 도청 정황은 없다'는 발언으로 조기 진화에 나섰다"고 김태효 1차장과 대통령실의 대응을 비판했다.

윤 의원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문건의 위조 여부'가 아닌 '동맹에 대한 불법감청 여부'"라며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문건 진위 여부'로 본말이 전도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공식적으로라도 끝까지 사건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면서 "유출된 문건의 정보를 요구·확인하고, 사실이라면 미국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받아내 전략적 레버리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의원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대통령 국빈방문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이 시험대 위에 놓였다"며 "한국과 미국은 주종관계가 아닌 대등한 동맹으로서 논의하지 못할 것이 없다. 당당하고 현명하게 대한민국의 국익을 챙길 순서"라고 했다.

윤 의원과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은 국민의힘 내에서도 이번 도청 파문에 대한 대통령실 대응을 지속 비판해 왔다. (☞관련 기사 : 김태효 '악의적 도청 없다' 해명에 윤상현 "말이 안돼"…안철수·유승민도 대통령실 대응 비판)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자료사진). ⓒ연합뉴스

앞서 미 연방수사국(FBI)은 13일(현지시간) 동맹국 도청 등의 정황이 담긴 미군 기밀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주방위군 공군 일병인 잭 테세이라(21)를 체포했다. 이에 따라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고 한 지난 11일 대통령실 공식 입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 등 외교안보 부문 고위공직자들의 대화 내용을 미국이 신호정보(시긴트)로 파악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미 현역군인이 유출한 '진본'이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방미 중인 김태효 1차장은 앞서 기자들과 만나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했었다. 그는 방미 직전 인천공항에서는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대해서 한미의 평가가 일치한다"면서 '미국 측에 어떤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전달)할 게 없다. 왜냐하면 누군가 위조를 한 것이니까"라고까지 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13일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판단한 바에 의하면 미국이 우리에게 도감청을 했다고 확정할 만한 단서가 없다"며 "현재까지 (미국의) 악의적인 행동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한다"고 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 고위당국자는 특히 테세이라 일병의 체포로 한국 정부가 밝힌 '상당수 위조' 입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많은 부분은 시간이 걸려서 미국이 알아내야 할 과정"이라거나 "한미관계와 관련한 분량이 많지 않지만 사실관계와 다른 부분이 많고 시간상으로도 꽤 흘러 현재 한미관계와 관계가 없는 주제"라고 사실상 답변을 피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면서도 이번 문건 유출 파문과 관련해 미국 측 인사들의 반응에 대해 "제가 만난 상대방은 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굉장히 곤혹스러워하고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며 "그들은 최선을 다해 중간중간에 공유하겠다고 했고, 동맹으로서 자기들이 큰 누를 범한 것 같은데 오해가 없길 바란다는 성의 있는 말을 해왔다"고 전하고 "저는 '고맙다'고 하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미국은 악의적 행동을 하지도, 도감청을 하지도 않았는데 미국 측 인사들이 한국 고위당국자에게 곤혹스러워하고 미안해하며 '큰 누를 범했다'고 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예상된다. 게다가 이에 대해 한국 고위당국자가 '고맙다'고 했다는 것은 또다른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이 당국자는 '미국이 먼저 곤혹스러워한다는 것은 도감청을 인정한 것 아니냐'고 하자 "사실관계를 떠나 동맹이 훼손될 수 있는 여러 오해가 난무하고 그들이 우리 대통령을 국빈초청했는데 왈가왈부가 있으니 그게 곤혹스럽다는 것"이라며 "문건 관련 내용은 그들도 확정 못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작 이날 서울에서는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가 "정보 유출이 된 것은 맞는 것 같다. 미국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유출자 신원도 파악되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상당수 위조' 입장에서 변화를 시사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전체적인 실상이 파악되지는 않은 것 같다"며 "파악이 끝나면 미국에 정확한 설명과 필요할 경우 합당한 해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이날 아침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내용 자체도 도청을 해서 나온 대화 내용이 아니라 개인적 대화"라며 "그 안(대통령실)에서 뚫렸다고 보기에도 어렵고 어느 상황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기존 대통령실 입장에 보조를 맞췄다.

반면 민주당은 권칠승 수석대변인 논평에서 "우리 정부 고위당국자도 미국 측이 '곤혹스러워하고 미안한 기색도 역력하다', '동맹에 큰 누를 범한 것 같다'고 전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대체 무슨 근거로 미국의 도청 의혹을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강변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에 '한미동맹을 흔드는 자해행위이자 국익 침해 행위', '반미 선동', '이적단체' 운운하며 매도한 데 대해 사과하라"며 "무엇보다 중대한 주권 침해를 당하고도 미국 측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미리 '위조'로 결론내리고 항의할 기회조차 포기한 이유가 무엇인지 해명하라"고 촉구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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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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