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왠지’와 ‘웬(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이 ‘왠지’와 ‘웬(지)’의 구별법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발음도 비슷하다. 대학원에 다닐 때 한국어교육 담당한 교수께서 ‘외(대), 왜, 웨’를 발음해 보라고 한 시간이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나름대로 입술을 오무렸다 폈다 해 가면서 발음을 해 보았지만 세 가지 모두 발음이 비슷하게 들렸다. 그분의 말씀이 “한국이도 발음하기 어려운 것을 외국인들이 어찌 어렵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발음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셨다. 그 이후로 필자도 가능하면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충청도에 오래 살다 보니 거의 충청인이 다 된 덕(?)에 이곳 사투리가 더 자주 튀어나온다. 이제는 사람들과 얘기할 때도 “그류~~”하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으니 뭐라 변명할 것도 없다.

발음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데 ‘왠지’와 ‘웬지’의 경우도 거의 구분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한 때 방송에서 “오늘은 우엔~~~지……”하는 멘트가 유행했던 적도 있다. 이 두 가지의 구분이 어려운 관계로 이런 표현까지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우선 사전에는 ‘왠지’는 나오지만 ‘웬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웬지’를 찾으면 “왠지의 비표준어, 왠지(왜 그런지 모르게)”라고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웬지’는 일단 비표준어로 보아야 한다. 다만 ‘웬’을 찾으면 ‘부사’로 나타나 있다. 이제 각각의 예문을 보면서 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왠지’는 “왜 그런지 모르게”라고 나타나 있다. 우리말에 ‘놀토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등교나 출근을 하지 않고 쉬는 토요일이 되면 왠지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와 같이 ‘왜 그런지 모르게, 뚜렷한 이유도 없이’라는 의미로 쓰는 부사다. 예문을 보자.

그날따라 왠지 정답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태호가 오늘따라 왠지 더 멋있어 보인다.

소포를 받자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와 같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한편 ‘웬지’라는 용어는 비표준어이기 때문에 ‘웬’을 찾아야 한다. 사전에 의하면 “1. 어찌 된 2. 정체를 알 수 없는”이라고 나타나 있다. 바로 예문을 보자.

멋진 태호의 얼굴에 짙은 수심이 어리어 있음은 웬 까닭인가?

웬 놈이야, 수업 시간에 떠드는 놈이?

웬 떡이냐?

밤송이를 까라면 까지 웬 군소리가 그리 많아?

와 같이 쓸 수 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웬’은 ‘무슨(어떤)’과 관련이 있다. 이제 문장을 비교해 보면서 살펴보자.

오늘은 왠지 닭볶음탕이 먹고 싶구나.(o)

오늘은 웬지 닭볶음탕이 먹고 싶구나.(x)

오늘따라 왠지 술이 맛있어 보이네?(o)

오늘은 웬 영문, 당신이 설거지를 다 해?(o)

‘왜(까닭, 어째서, why)’와 관련이 있으면 ‘왠지’를 쓰고 ‘무엇(무슨, 어떤)’과 관련이 있으면 ‘웬’을 쓴다고 생각하면 기억하기 쉽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다 비슷한 것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다. 점 하나에 의미가 바뀐다는 노래처럼 작은 것에 충실하면 큰 것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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