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딸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딸기를 통해 본 지방브랜드화

다양한 딸기를 즐길 수 있게 된 이유

요새 과일 코너에서 딸기만큼 고민이 필요한 과일이 없다. 설향, 죽향, 킹스베리 등 품종 이름을 내건 다양한 종류의 딸기들이 판매되고 있고, 각자 단단한 정도나 달콤한 정도, 모양, 심지어는 색깔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취향에 따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그냥 '딸기'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렇게 선택권이 늘어난 것은 소비자로서 즐거운 일이다. 그와 동시에 품종 대부분이 국내 농업기술원의 연구자들이 개발한 국산이라는 사실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딸기의 90% 이상이 일본 품종이었으나, 2005년 설향을 시작으로 죽향(2012년), 금실(2016년), 킹스베리(2016년), 아리향(2017년) 등이 차례로 개발되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산 딸기 품종 보급률은 96.3%에 육박한다고 한다.

심지어 매향과 금실 품종 등은 동남아 등지로 수출도 되어서 2021년 기준 수출액 64.7백만 달러를 기록했다. 단일 채소·과일로는 파프리카와 배 다음으로 높은 액수이다. 다양한 품종이 개발되다 보니 그중에서 과실이 단단해 오랜 배송 기간을 견딜 수 있는 품종도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품종 '자립'의 비결로 많은 이들이 정부 투자를 꼽는다. 지난 2006년 정부는 '종자산업발전 중장기 대책'의 일환으로 '딸기연구사업단'을 꾸렸고, 이후 3단계에 걸쳐 15년간 딸기 우량 품종 개발에 투자했다. 사업단은 종자를 개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농업인들과 협력해 재배법을 정교화하는 작업을 거침으로써 국산 품종이 더 잘 보급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국산 품종의 다양화를 단순히 투자의 성과만으로 보기엔 부족하다. 정부 투자를 받은 모든 농산물이 딸기처럼 품종 개발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 앞으로 다른 작물에 딸기와 유사한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딸기만큼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즉, 딸기 품종 개발이 성공한 데에는 다른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 딸기유전자지도 ⓒ농촌진흥청

지방자치제와 지역-품종 브랜드화

우선 각 품종이 특정 지역과 연계되어 재배 및 판매되고 있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킹스베리는 논산시, 죽향은 담양군, 금실은 진주시와 같이 특정 품종의 특산지 위상을 갖는 지역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우리나라 딸기의 독특한 품종 개발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1990년대 중후반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기존 농촌진흥청, 즉 중앙정부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농촌 연구 기능이 지자체로 이관되었다. 이후 각 도의 농업기술원은 자율적으로 지역 실정에 맞는 품종을 육성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품종을 지역 내 농업인들에게 우선 공급함에 따라 지역 특색이 가미된 딸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품종을 구매하기만 한다면 전국 어디서든 재배할 수 있지만, 이렇게 품종과 지역 간 연계성이 공고해지면 그 자체로 브랜드화되기 때문에 해당 지역이 프리미엄을 갖게 된다. 대표적으로 담양군에서 독자적으로 육성한 품종인 '죽향(竹香)'은 담양군 내에서 재배되었을 때 가장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이러한 프리미엄 효과를 누리기 위해 이제는 지역 농업인들이 직접 농업기술원에 찾아가 새로운 품종을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최적의 재배법을 찾고자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충청남도 딸기연구소에서 육종한 킹스베리 또한 재배가 까다로워 연구원들은 보급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지역 농업인들의 노력으로 상품화에 성공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지자체 기반의 품종 개발 시스템이 지역-품종 브랜드화로 고부가가치 효과를 거두자, 농업인들도 품종 개발 및 선별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일종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지방소멸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현 상황에서 하나의 타개책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자체 주도 품종 개발을 가능케 한 딸기 고유의 특성

그렇다면, 지자체 중심의 육종을 장려한다면 딸기의 성공을 다른 작물에서도 재현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공공 주도의 품종 개발이 가능한 작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공 주도의 육종이 이루어지는 작물은 크게 두 가지 경우이다. 쌀이나 감자와 같이 식량 안보 차원에서 국가적 보호가 필요한 작물이거나, 딸기나 마늘 등 민간 육종가 혹은 민간 종자 기업이 이익을 얻기가 어려운 경우다.

특히 딸기 품종 개발에서 수익이 발생하기 힘든 이유는 육종에 7~10년이라는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뿐만 아니라, 영양번식으로 인해 무단복제가 쉽다는 딸기 고유의 특성 때문이다. 딸기는 씨앗 없이 줄기 일부분만 있어도 새로운 개체가 복제될 수 있어서 씨앗 단위로 정량화되어 판매되는 타 작물보다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적다.

실제로 많은 수의 농가가 딸기 모종을 키워 판매하는 육묘업을 겸업하고 있어 종자 로열티를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크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딸기 농가 대부분이 비닐하우스 2~5개 동에서 소규모로 농사짓는 경우가 많으므로 기업으로서는 무단복제를 일일이 단속하기도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이에 따라 유명 종자 기업이 딸기 종자 개발에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반대로 공공부문에서 딸기 육종에 투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적 효과는 상당히 높음을 의미한다. 민간 부문과 직접 경쟁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필요한 기술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렴한 가격에 품종을 공급함으로써 농업인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전문 종자 기업이 딸기 종자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본 또한 한국과 비슷하게 지자체 중심의 육종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미국에서도 전문 종자 기업이 아닌 드리스콜(Driscoll's)같은 딸기를 재배하고 판매하는 기업과 공공 성격을 띠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가 가장 활발하게 종자를 개발하고 있다.

말하자면 딸기가 지닌 고유한 생물리학적 특성이 전문 종자 기업에 의한 완전한 사유화를 제한함에 따라, 국가가 그리고 최근에는 각 지자체가 육종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창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변화의 가능성

다만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던 지자체 중심의 시스템이 계속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수한 육종가들이 민간 종자 기업으로 이동해나가거나 새로운 기업을 설립할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는 농촌진흥청과 지자체 소속 육종가들이 공무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품종 개발에 상응하는 보상을 충분히 얻지 못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형태의 딸기 종자 개발 회사가 설립된다면 미국과 유사하게 사기업과 공공부문이 공존하는 형태가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점차 농업인들 사이에서도 품종 로열티 지급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어서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다.

줄리 거스만의 1930년대 미국 딸기 산업 분석에 따르면 당시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중심의 종자 개발이 민간 영역으로 이전 및 확장되는 과정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영양번식으로 인해 연구자들이 유전체들을 손쉽게 이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자체 중심의 시스템을 가능케 했던 바로 그 특성 말이다.

딸기 종자 산업 내 변화를 막기는 힘들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축적해온 국가 및 지자체 차원의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종자 개발 기술 그 자체뿐만 아니라 지역 농업인들과의 협력을 통해 구축한 종자 배급 시스템이나 재배 기술을 고도화하는 노하우 또한 중요한 자산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더욱 발전시킨다면 농가와 소비자가 다양한 딸기를 즐길 수 있는, 더욱 지속 가능한 딸기 산업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 필자소개

박소현 교수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국유화된 종자와 세계화된 토지: 한국 딸기 산업의 집약적 원예의 출현에 대한 분석' 연구로 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농촌 공간을 변화시키는 인간-환경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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