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협우를 처단하라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경주 지역 민간인 학살사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이협우를 처단하라

하늘은 왜 푸르기만 할까

소슬바람은 왜 이다지도 시원하랴

구름은 하염없이 흘러가건만

어찌 우리네는 피와 피로 얼룩져 있는가

1948년 6월 경찰보조조직 향보단(鄕保團)이 출범하더니

이듬해 민보단(民保團)으로 바뀌어 사람백정이 납시는구나

민보단 단장 경주의 염라대왕 이협우!

일제의 고등계 형사 출신이라는데

그는 고향 사람을 마구잡이 끌고 가는 저승사자구나

1949년 7월3일

내남면 이조리 최윤식이 8명의 민보단에 개머리판으로 맞고 끌려가니

이미 최영조, 최영득은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구나

민보단 사무실은 고춧가루 고문실이 되어 붉은 강이 흐르고

이들 최씨 일가에게 하달된 논 3두락(약 600평)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가져 올까 바다에서 건져 올까

사흘 지나 저녁 8시 여름의 뜨거운 지열이 불끈불끈하는

불교의 성지라는 경주 남산 용장리 뒷산에서

그 어떤 법치도 없이 학살되는데

이렇게 이협우의 야비한 웃음 속으로 사라진 영혼이 한둘이 아니구나

열일 곱 최윤식은 10월 항쟁 구경하다 고발당해

억울한 옥살이 3년 마치고 고향에 오니

이협우가 느닷없이 연행해 가족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네

어려운 시대, 준비된 재화가 어디 있으랴

소 팔고 집으로 가는 사람 돈 갈취 후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이런저런 핑계로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살인행위를 항의하는 일가족들을 불태워죽이지를 않나,

그렇게 무고한 사람을, 이웃들을, 학살해버리는데

죽은 사람들 열살도 안된 아이도 35명이나 된다는데

이놈, 이런 식으로 200여명을 죽였구나

아이구 원통해라!

이놈을 어쩐다냐

이놈을 어떻게 쳐 죽인다냐

그러고도 이놈,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해처묵고

잘도 살았고나

아, 근대사의 살인마!

이협우를 처단하라!

고향 사람 몰이 죽음 시킨 이협우를 처단하라!

부관참시(剖棺斬屍) 골백번이 대수랴

저승의 사자들이여!

저승의 자유주의자들이여!

저승의 민주주의자들이여!

그곳에서라도 시퍼런 칼날을 세워

쓱싹! 쓱싹! 숯돌의 기운을 듬뿍 담아 둥둥 북을 치며

단칼에 이협우의 목을 치시라!

이승의 설움설움 울컥울컥 칼날에 실어 내리치시라!

▲ 이협우가 당시 민보단 사무실로 사용한 지금의 내남파출소. 무지막지한 고문의 장소이다.ⓒ배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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